영국의 사상가 J.J.클라크(J. J. Clarke)의‘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Oriental Enlightenment: The encounter between Asian and Western thought)와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영문학자, 비교문학자, 문학평론가, 문명비판론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의‘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New York: Patheon Book , 1978)을 근거하여 대한제국쇠망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J.J.클라크는 자신의 저서‘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정의가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서양의 지식과 권력이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성립되었다고 본다. 곧 동양이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에 초점을 맞춘 사상과 문화의 교류사입장을 대변한다.
반면,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 동양의 이미지가 서구인들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권력과 지식의 관계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서구제국주의의 지배담론을 통하여 구성된 오리엔탈리즘의 허상을 폭로하고, 이러한 담론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권력의지를 파헤친다. 이러한‘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지리적 확장과 식민지주의, 인종차별주의(반셈주의), 자민족중심주의와 결부되어 지배의 양식으로 대두되며, 2O세기의 영국 및 프랑스에 의한 식민지 지배로부터 현대 미국의 아시아, 남미, 이프리카 등의 세계정책에 이른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15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인들은 동양을 문화수준이 높은 곳으로 흠모하며 칭송한다. 문학과 철학 등 사상 면에서 유럽은 동양에 열광한다. 17,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들의 관심대상은 중국이었고,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관심은 인도였다. 그 이유는 유학이 프랑스 계몽철학자들에게 합리주의와 이신론적 철학의 패턴을 제공해주고, 우파니샤드의 힌두교와 불교는 관념론자들의 사상과 공명하는 형이상학적체계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이러한 현상은 대상화된 타자(동양)를 통하여 자신들이 잃어버린 황금시대를 동경하는 낭만주의 백일몽, 집단 환각, 관음증적 자위행위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17세기에 소개된 신유학의‘리(理)적 세계관은 교회권력과 절대왕권에 대항하는 계몽주의자들에게 세계는‘신의 질서’가 아니라‘이성적 질서’,‘자연법적 질서’로 이루어져있고, 이성이 계시에 의한 신앙보다 합리적이라고 가르쳐준다. 이들은 유교의 실천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정치의 이념에 입각해 왕도(王道), 인정(仁政), 덕치(德治)를 펼치는 유교군주가 이상적인 계몽군주이며, 유교문명은 덕성(德性)문명이라고 예찬한다.
볼테르(Francois Marie Arouet, Voltaire 1694-1778)는 계몽주의 시대의 최고의 중국예찬론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동양에는 가장 오래된 문명과 가장 오래된 종교형식, 그리고 모든 예술의 요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서양의 모든 것은 동양에서 비롯된 것이다.’‘중국 고아’(L'Orphelin de la Chine) 같은 희곡,‘자디그’(Zadig) 등 철학소설에서 동양을 통해 유럽인들의 관습을 비판한다. 그는 유교이념을 통해 앙시앙 레짐의 폭정을 고발하고 민중의 미신에 맞서 싸웠을 뿐 아니라 관용(仁)이 없는 가톨릭교회를 공격한다. 그는 독단도 없고 성직자도 없는 자비로운 종교의 꽃을 유교에서 발견한다. 볼테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는 인도문화이고, 일신론(一神論)의 뿌리가 인도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1716)는 우주의 모든 양상은 타자와 더불어 조화롭게 작용한다는 자신의 단자론(單子論)이 자연의 모든 부분들은 서로 밀접하게 자발적으로 협력한다는 중국인들의 상호연관적인 사고체계와 비슷하다고 여기며 호감을 갖는다. 특히 그는 수비학(數秘學)에 관심을 가진 예수회 수도사 부베로부터 ‘주역’을 소개받고, 그것이 단순히 점을 치는 매뉴얼이 아니라 모든 상징적 체계를 푸는 열쇠이며, 보편과학의 토대라는 사실을 알고, 주역에서 이진법 개념을 따온다. 그의 이진법 산술체계는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문명의 기초가 된다.
계몽주의 시기 서구 사상가들에게 유교가 관심의 주요 대상이라면,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인도의 문명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활약했던 서구의 위대한 사상가들, 즉 헤르더와 괴테에서 출발하여 헤겔과 셸링을 거쳐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이르는 낭만주의자들은 인도의 종교와 사상에서 번쩍이는 영감을 받았고, 이를 통해 당시 유럽 문명이 안고 있는 한계를 교정하고자 한다.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인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은 힌두교의 직관주의와 범신론에 매료되어 ‘인도의 성스러운 경전이 성경보다 우수하다’고 예찬한다. 쉴레겔(Friedrich Schlegel)은 독일문화와 언어의 기원을 고대인도로 소급함으로써 독일문화에 편재해 있는 유태인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독일문화의 순수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는 20세기 최대의 사건은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이라고 했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프로이센 제국의 국가철학자였던 헤겔의 정신철학에 반대하여 ‘의지의 형이상학’을 주창하였다.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의 제자인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로부터 뒤페롱이 번역한 ‘우파니샤드’를 소개받아 읽음으로써 인도철학의 세례를 받게 된다. 그는 인도를 ‘가장 고대적이고 원시적인 지혜의 땅’이라고 보면서 브라만주의와 불교가 유럽에 들어와 기독교로 각색되었다고 믿는다. 우파니샤드와 불교에 심해 말년엔 서재에 불상 안치하기까지 한다. 그는 동고(同苦 Mitleid)사상을 주장하며, 고통을 벗어나려면 삶을 포기해야한다고 주장해 극단적인 염세주의 한계를 드러낸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Antichrist, The Antichrist 1888)에서 기독교의 퇴폐성과 기만성을 폭로하기 위해 불교를 이용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동양의 비표현적(non-representation) 양식에 경도되어, 스즈키의 선에 관한 책을 접하고서 이렇게 말한다. ‘그의 책은 내가 모든 저술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중국인 학자와 함께 ‘도덕경’을 번역하기도 했다.‘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동양철학자들과의 대화’라고 말한다.‘유럽에는 유럽식 불교가 필요하며 나는 유럽의 부처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현대 과학의 요구에 부합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곧 불교가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와 하트숀(Charles Hartshorne)철학에 기초하여 생긴 신학사상인 과정신학은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양자역학의 세계나 상대성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데, 불교적 우주관과 흡사하다.
독일 출신의 영국 동양학자 막스 뮐러(Friedrich Max Muler 1823-1900)는 인도 연구에 관한 학문 분야를 서양에서 창시한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학문적 생애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산스크리트 언어학자이자 근대 종교학의 창시자이다. 뮐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870년부터 시작한 동방성서 시리즈의 편찬 작업이다.‘동방성서’50권 가운데 인도고대종교 관련 문헌이 20권이며 불교문헌은 10권이다. 그 외에 조로아스터교, 유교, 도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 경전 등이 약간씩 수록되어 있다.
그는 오래된 동전이나 비석에 수백 년이 지난 녹이 다 털어내면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광채를 드러낼 수 있듯이 모든 종교 안에 숨겨진 비문을 읽을 수가 있다면 모든 종교의 동일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하나의 종교만을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he who knows only one, knows none). 곧 하나의 종교밖에 모르면 사실 그 종교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종교다원주의와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톤(James Hilton 1990-1945)의 ‘잃어버린 지평선’(失去的地平線 The lost Horizon 1933)소설에서 나오는 샹그리라( 香格里拉 Shangri-La)의 말뜻은 티베트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히말라야산맥 너머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곳, 아름다운 만년설과 푸른 하늘, 싱그러운 초원, 몇 백 살이 넘는 사람들이 미움과 다툼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고, 오염되지 않아 영생할 수 있어 자연과 신이 공존할 만한 평화스러운 파라다이스다.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찌든 서양인들에게 낙원의 꿈을 불러일으킨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메릴랜드에 있는 대통령 휴양지를 ‘샹그리라’고 명명할 정도다. 히틀러도 샹그리라를 찾기 위해 탐사대를 파견한다. 중국정부는 중디안(中甸)을 샹그리라로 이름 바꾸고 불국정토, 피안의 세계, 이상향으로 탈바꿈한다. 티베트인들은 완벽한 피라미드모형의 수정산인 카일라스(Kaillash)성산을 샹그리라고 여긴다. 카일라스산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 천 년 동안 신화에서 재현되어온 성지다. 힌두교도들은 시바신이 이 산에 있다고 믿고 있고, 불교도들은 서방정토인 수미산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샹그리라는 지역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19세기 초반 이후 중국이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서양의 독주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동양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황색인종의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된다. 그것은 영국의 산업혁명의 자본주의와 입헌군주제의 민주주의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동양의 모든 것이 낙후됨이 판명된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동양을 '수수께끼 같은 알 수 없는 동방'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하며, 동양에 대한 폄하가 이루어지고, 스승의 모델에서 식민지배대상으로 바뀐다.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앵글로색슨-아리아-슬라브-황인-흑인' 순의 인종 우열 관계를 주창한 인물이다.
프로이센왕국(영어 Prussia, 독어 Preuβen)의 철학자, 변증법이라는 철학 및 역사학 이론을 만든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역사의 발전단계를 동양의 세계는 유년기, 그리스세계는 청년기, 로마시대는 성년기, 게르만시대(유럽시대)는 노년기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헤겔은 프로이센왕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자신의 철학과 조화시켜 프로이센이야말로 절대정신이 잘 실현된 보편국가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역사의 종말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헤겔 이후 많은 사상가들이 헤겔의 관점을 따른다. 어느 예수회 선교사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른 것도 사실 헤겔의 관점과 일치한다. 조선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조용한 아침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부터인가 이 말이 평화의 나라를 뜻하는 긍정적인 말로 변한다.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사상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오리엔탈리즘'의 맨 첫 페이지에 기록된 말로서 알 수 있다.‘동양인들은 자기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고, 재현되어져야 한다.’동양인들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서양인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아시아인들은 수동적이며, 능동적인 변혁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능동적인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위해 혁명을 일으켜주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유럽 주도의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말이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명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에서 그는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요인을 근면과 검약을 중시하는 청교도 윤리라고 주장한다. 베버는 '유교와 도교'라는 저서에서 중국이 자본주의를 발달시키지 못하고 전근대로 남은 이유를 유교와 도교로 지목한다.
베버의 사상은 뒷날 제국주의를 옹호하는데 이용된다. 선교사들은 아시아 식민지에서 ‘아시아가 지배받는 것은 전근대적이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근대화되려면 기독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선교만 한게 아니라 근대적 교육도 보급하고, 이에 따라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그 이유로 기독교를 따르게 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전 미국 대통령은 ‘태프트-가쓰라밀약’(THE TAFT-KATSURA AGREEMENT)을 맺고 필리핀을 얻는 대신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인정한 인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망언한다.‘조선인은 미개하기 때문에 타민족의 지배를 받아 근대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미 근대화를 경험한 만큼 조선을 잘 지도할 수 있다.’1906년 러일전쟁의 종식되자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강화조약을 주선하여 일본의 조선식민지배를 인증한 대가로 미국인 중에서 최초이자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1898년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나자 루스벨트는 해군 차관보 자리를 내친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다. 눈이 나쁜 그는 안경을 10개나 갖고 전장에 나간다. 비정규군 중령으로 자원병을 이끌고 싸운다. 당시 40세다. 전장에서 그의 구호는 뒤에서 소리지르는 ‘돌격’(charge)이 아니다. ‘나를 따르라’(follow me)고 외친다. 미국은 열광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수를 맛본 것이다. 그리고 루스벨트얼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미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 노예 해방의 링컨 등과 함께 미국 중서부 러슈모어 산의 암벽에 새겨진다.
쪽바리도 구미열강의 과학기술, 자본주의, 의회민주주의를 모방해 근대국가를 건설한 후, 미국과 영국의 협조로 짱깨 성리학사상에 사로잡혀있는 대한제국을 삼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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