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앙츠(莊子, 369?-289 B. C.)의 관계철학
전한(前漢)시대 뿐만 아니라 동양 최고의 역사가의 한 명으로 꼽히어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칭송되는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이 흉노족(匈奴族 또는 훈족?)에게 투항한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제7대 황제인 무제(武帝, BC 156-BC 87, 재위 BC 141-BC 87)의 노여움을 사서, 태사령(太史令)의 직책에서 파면을 당하고 BC 98년에 투옥되어 이듬해 나이 48세에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친 역시 무제의 홀대를 참지 못해 분하게 여기다가 병이 나서 죽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생전부터 편찬하던 역사서의 편찬을 완료해 줄 것을 부탁한 부친의 유언을 실현하려고, 곧 사서 편찬의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자각적 사명의식의 계승을 완수하려고 죽간(竹簡)에 기록한‘기전체’(紀傳體)의 통사(通史)인 ’사기’(史記)의 ‘열전’(列傳)에 의하면, 주앙츠(莊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the age of civil wars) 송(宋)나라 몽지(蒙地: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산동 山東 조현 曹縣) 사람으로 멍쯔(孟子)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다고 한다.
주앙츠(莊子)는 라오츠(老子)의 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사상가(이것에 대해선 다양한 이견이 있음)로 물(物)의 시비(是非), 선악(善惡), 미추(美醜), 빈부(貧富), 화복(禍福) 등을 구분 짓는 일이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고, 만물은 결국 하나의 세계로 귀결된다고 하여 중국의 선(禪)불교, 특히 9세기 당대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의 사상에 심오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당나라 현종(玄宗)에게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존칭을 받아 그의 저서‘장자’(莊子)는‘남화진경’(南華眞經) 이라고도 불리며, 주역(周易), 노자(老子)와 함께 삼현(三玄)에 속하고,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중국 진대(晋代)의 사상가 곽상(郭象, 252?-312)이 산수(刪修: 쓸데없는 글자나 구절을 깎고 다듬어서 글을 잘 정리함)한 33편(內篇:7, 外篇: 15, 雜篇: 11)이다. 이 저서의 내편(內編), 제 1편 소요유(逍遙游)의‘대붕이야기’, 외편(外編), 제 10편 추수(秋水)의 ‘북해의 신, 약(若)’에서 보여주듯이, 그는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하는 인위적인 규범이나 관습을 비판하며, 공쯔(孔子)와 멍쯔(孟子)의 사상을 거부하고, 모든 행위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며‘완전한 자유의 경지’를 동경한 인물이다.
‘장자’(莊子)의 외편(外編), 제10편 추수(秋水)의 일화는 주앙츠(莊子)에게 있어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하며 가치 있는 가를 보여준다. 그 내용은 이렇다. 주앙츠(莊子)가 복수라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나라 왕이 보낸 두 사신이 다가와 그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낚시대를 쥔 채 말한다. "초나라에는 신령한 거북이가 있는데 죽은 지 삼천년이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왕께서는 그것을 헝겊에 싸서 묘당 위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데, 그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랬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랬을까요?" 두 신하가 대답하길 "그야 당연히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랬을테지요." 그러자 주앙츠(莊子)가 "돌아가십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라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한다.
그리고 ‘장자’(莊子)엔 동식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를 미루어볼 때 그는 천지자연을 벗 삼아 정신을 교류하며 유유자적하는 삶, 곧 대자유인으로 살다 간 사상가라 할 수 있다.
최근엔 주앙츠(莊子)의 소통철학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많이 나왔기에, 필자는 대자유인 주앙츠(莊子)의‘장자’(莊子)의 글을 통해 그의 관계철학에 대해서 살펴볼까 한다.
I. 송(宋)나라 상인의 교훈
송(宋)나라 상인의 교훈은 주앙츠(莊子)의‘장자’(莊子) 내편(內編) 제 1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이야기다.
송(宋)나라 상인이 예식용 모자를 잔뜩 가지고 월(越)나라에 팔러 갔지만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모자가 필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일반적으로 모자를 팔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며, 월나라 사람 역시 모자를 쓸 것이라 선입견이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보지만, 21세기 마케팅전략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여 물건을 파는 역발상(逆發想)전략을 수립한다. 월나라 사람들이 짧은 머리에 문신까지 하고 있다면 모자 색깔을 다양하게 하여 새로운 패션을 창출할 수 있다. 거기에다 의복과 신발의 색까지 고려하면 모자는 물론 의복과 신발까지 팔 수 있는 최고의 시장이다. 21세기에서의 ‘패션은 권력’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주앙츠(莊子)의 사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진리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필자는 그의 사상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開陳, statement)하고자 한다.
서양의 근대는 이원론이지만, 21세기의 사회는 이원론보다 상대주의적 및 다원주의적 세계관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세계다. 그런데 19세기, 20세기 초의 구미열강의 근대는 이런 견해를 부정하고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히브리어 מרטין בובר, 영어 Martin Buber, 1878-1965)의‘나와 그것(Ich-Es)의 관계'(I-It relationship)의 견해를 따랐다. 그러면 미국역사를 통해 타자(他者)를 진정한 인격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경쟁관계에 있거나 이용가치의 대상인 그것(Es), 곧 도구적 존재, 수단적 존재로 여기는, 겉 사람과 겉 사람의 피상적인 만남에 대해서 살펴보자.
영국의 월터 로리경은 영국을 극빈국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시킨 엘리자베스1세(Elizabeth I, 1533-1603, 재위 1558-1603)의 명령에 의해 1585년 이래 두 번이나 아메리카를 원정하여, 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State of South Carolina)를‘처녀여왕’(The Virgin Queen) 엘리자베스1세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처녀의 땅’(버지니아, Virginia)으로 바친다. 미국은 1607년 돈을 벌고 보다 잘 살기 위해 ‘버지니아’(Virginia)주 체사피크만의 제임스타운(James Town)에 닺을 내렸던 첫 정착민들(105명)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역사를 슬그머니 감추고, 1620년 9월 16일 102명의 청교도들(퓨리턴들, Puritans)이 180t 목선 메이플라워(Mayflower II)를 타고 동년 11월 21일 매사추세츠 주(State of Massachusetts)에 성공적으로 착륙하게 되었는데, 자신들이 떠난 영국항구이름을 따서 플리머스(Plymouth) 이라고 칭하고 이것을 자기들의 기원으로 삼는다.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 규례(May Flower Compact)를 제정하고 서명하여 투표를 거쳐 자신들의 지사를 뽑고, 12월 21일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12월 21일이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상륙한 날(Forefather's Day)로 정해진다. 영국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한 당시 청교도들을 ‘필그림 파더즈’(The Pilgrim Fathers)라고 부른다. 이들은 지금미국 상류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색슨계의 백인 신교도들)에게 미국의 시조, 곧 개척자 조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에서의 정착촌건설이 구대륙의 종교탄압과 신분차별을 없애고 자유화 번영의 신세계를 연 미국사의 출발점이라고 공식적으로 해석하는데, 이런 역사의 내면엔 청교도의 잔악사, 배신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1621년 봄이 왔을 때 거의 절반인 청교도의 44명이 질병과 추위로 목숨을 잃었고, 타고 온 배 메이플라워호는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단 한 명도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굶주림과 추위로 죽은 이들 이름은 필그림 추모기념관 비석에 모두 새겨져 있다. 청교도들은 콜럼버스 이래 미개한 민족이라고 여기며 짓밟았던 인디언들과 친하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옥수수경작방법과 물고기 잡는 방법을 배워 첫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특히 페마퀴드족 사모셋(Samoset)이란 인디언 추장의 도움이 컸다. 청교도들은 1621년 가을 첫 수확의 농작물과 생선과 과일을 차려놓고, 고기가 없어 들에 나가 야생터키(Wild Turkey) 네 마리를 잡아다가 식탁에 요리를 하여 내놓고, 이웃의 왐파나그(Wampanoag)족의 메사소이트(Massasoit)추장과 그의 종족을 초청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 유래다. 1623년 영국총독 윌리엄 브랫포드(William Bradford 1588-1657)가 추수감사절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그런데 청교도와 원주민간의 평화는 곧 깨지게 된다. 청교도들이 먼저 인디언추장 매사소이트를 살해하자, 두 종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고, 청교도들은 마침내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뒤 아이러니컬하게 메이플라워호가 처음 닻을 내린 케이프코드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인디언추장 매사소이트의 동상을 세운다. 매사추세츠 주 어원은 바로 매사소이트 추장의 이름에서 기원한다.
미국 제28대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재임 1913.03-1921.03)은 1918년 1월 8일에 민족자결주의(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배제)와 국제연맹창설제안을 담은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하고, 1919년 노벨평화상을 받지만, 그는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옹호자다. 목사인 부친과 목사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신봉자였지만, 남부 출신이어서인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의식은 심했다.
프린스턴대학총장시절(1902-1910) 그는 흑인을 대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대통령재임시절 각료회의에서‘검둥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쓴 백인최상주의자이다. 그는 공식적으로 흑인공무원들을 해고할 뿐만 아니라 정부 소유건물도 흑백분리 원리에 따라 짓도록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병력이 모자라 흑인들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흑인은 장교가 될 수 없도록 하여 흑인 부대도 백인이 지휘하도록 했고, 흑인병사들이 위험하거나 힘든 일을 하도록 조치를 취함은 물론 막사도 백인과 흑인의 분리정책을 펼쳤다. 그는 심지어‘미국인의 역사’라는 책에서 흑인을 살해하고 폭행하는 일을 일삼던 백인 극우단체 ‘쿠클럭스클랜’(Ku Klux Klan)을 “남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려는 숭고한 단체”로 찬양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단체는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반(反)로마 가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 근본주의, 동성애 반대 등을 표방하는 미국의 극우 비밀 결사 단체다. 그 단체명은 ‘원’(circle)의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키클로스’(Κuκλος, kyklos)와‘부족’(clan)의 의미를 지닌 게일어(현재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방언의 기본이 된 켈트어에 속하는 고대 아일랜드의 언어)의 ‘클랜’(clann)에서 나온 '클랜'(Klan)의 합성어 ‘Ku Klux Klan’의 약자를 따서 ‘KKK’라고 부른다.
1932년 초 미남부의 앨라배마 주(State of Alabama)의 터스키지 대학 의학 연구실은 미보건당국과의 협조아래 가난한 문맹 흑인 농부 600명에게 음식과 교통편과 치료비를 무료 제공하면서‘터스키지 실험’으로 불리는 인종차별적인 매독실험인 생체 의학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종목은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전까지 최악의 질병으로 불리던 성병 매독균을 집어넣은 뒤, 어떻게 반응하고 언제까지 생존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600명 중 399명이 매독에 감염됐다. 더욱 잔인하고 끔직스러운 것은 페니실린발견 등 매독치료제가 속속 개발됐지만‘매독균 감염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실험목적을 달성키 위해 적절한 치료조차 해주지 않은 채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실험이 1972년 AP통신이 이 사실을 보도하고, 여론이 들끓게 될 때 까지 40년이나 계속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백인의료진들은 흑인 실험대상자들에게 현재의 질병은 나쁜 혈통 탓이라고 했다.
그 후 25년의 세월이 지난다. 1997년 5월 16일 클린턴(Bill Clinton, 1946-) 미 대통령과 앨 고어(Albert Arnold Gore, Jr, 1948-) 부통령은 65년 만에 ‘흑인대상 매독실험사건’에 대한 사과 공식기자회견을 가지며,“정부의 수치스런 짓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사과하면서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행위”라고 규정한다. 90대를 넘어선 4명의 흑인노인들은 지난 세월의 아픔도 잊은 듯, 눈물을 글썽이며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를 앨라배마에 세워주도록 요청해 클린턴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낸다. 그런데 ‘미국판 마루타’사건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부시(George W. Bush, 1946-)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 때 천문학적인 달러를 쏟아 붓고, 그 재정적자를 고스란히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 정부에게 떠넘긴다. 오바마 정부는 역대의 대한민국정부와는 달리 이전의 부시정부를 비난하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재정적자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라는 불명예의 수난의 길을 겨우 모면했는데,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올 8월 6일 유례없이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강등 조치한다. 이것은 흑인계 대통령의 재임을 막기 위한 백인들의 비토(veto)행사다.
이렇듯 지난 세기 구미열강은 존재철학의 이원론에 근거하여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라는 단어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고, 자기들과 다른 유색인종이나 사상을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가장하여 지배약탈하고 전쟁도 불사(不辭)했다.
이제 우리는 주앙츠(莊子)의 ‘송(宋)나라 상인의 이야기의 교훈’을 통해서 타자의 다양성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앙츠(莊子)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소설가, 중국 고전 번역가, 산문가, 문예비평가, 언어학자, 문명비평가인 린위탕(林語堂, 1895-1976)도 주앙츠(莊子)를 중국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라고 부른다.
II. 바닷새(海鳥)를 죽인 노(魯)나라 임금의 교훈
바닷새(海鳥)를 죽인 노(魯)나라 임금의 교훈은 주앙츠(莊子)의‘장자’(莊子) 외편(外編), 제 11편 ‘지락’(至樂)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어느 날 바닷새가 노(魯)나라 서울 근교에 날아와 앉는다. 노나라 임금은 이를 기쁘게 여겨 이 새를 궁궐 안으로 데려와 음주가무가 곁들여진 향연을 매일 베풀며 극진하게 대해준다. 그런데 이 새는 어리둥절해 하고 슬퍼할 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시름시름 앓다가 사흘 만에 죽고 만다. 이는 소통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나라 임금은 새와 사람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여,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기르지 않고, 자신이 즐기는 술. 음악. 음식을 바닷새 역시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해,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길러서 그 새를 죽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우라도 상대방의 욕구(needs)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효율적인 소통이란 완고, 고집, 아집 등의 자기중심적인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그 중심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인내의 결과인 조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가야 함을 교훈한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것을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그것에 비위맞추며 대화 나누거나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이며, 마지못해 추진하는 일이 과연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타인의 요구에 맞추다보면 주체성이 사라지고 타인의 노예로 전락하는데, 서비스와 굴종, 진심과 아첨의 차이는 무엇인가? 타인의 잘못되거나 비합리적인 요구를 위한 충언이나 권면이나 상담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무엇보다도 청소년은 어른이 된 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의 행동이나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청소년의 생각이나 행동에 맡겨야 하는가? 그리고 어른의 지도 없이 어린아이는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 이렇듯 주앙츠(莊子)의 사상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의 입장에서 말하고자 한다.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에 보면 이런 내용의 가사가 나온다.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은...“에서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봐’를 한자로 표현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다. 주앙츠(莊子)의‘새를 죽인 노나라 임금 이야기’는 ‘역지사지’의 교훈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린 어떤 사건을 만나면 우리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 위주로 그 사건을 다루거나 해결하려고 한다.
다음의 유머는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현대인을 풍자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세핀이 홀로 승용차를 몰고 달리다 다른 승용차와 부딪혀 교통사고를 낸다. 너무 엄청난 사고여서 두 승용차는 완전히 망가졌지만 두 운전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망가진 차에서 기어 나온 후 조세핀은 말한다.“오 남자분이셨군요. 여성인 저로선 정말 흥미로운 일인데요. 와, 우리의 차들을 보세요. 남은 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 우린 말짱하잖아요. 아무래도 이 사고는 신이 우리를 만나게 해서 영원히 함께 살라고 보낸 신호인 가 봐요.” 기분이 좋아진 탐은 대답한다. “그래요. 맞아요. 당신 말씀이 완전 옳아요!”조세핀은 계속 말한다.“신이 보낸 신호가 맞아요. 그리고 이걸 보세요. 여기 또 다른 기적이 있어요. 내 차는 완전히 망가졌는데 이 와인병은 전혀 깨지지 않았어요. 신이 우리에게 이 이 와인을 마시며 만남을 축하라라고 보낸 신호임에 틀림없어요.” 탐이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조세핀이 내민 와인병을 받아 마개를 열어 병의 반가량을 마신 후 다시 조세핀에게 내민다. 조세핀은 병마개를 병에 끼우고선 남자에게 되돌려준다. 탐이 묻는다. “당신은 마시지 않나요?" 조세핀은 대답한다. ”마시다니요? 이젠 경찰이 도착하길 기다려야지요.“
이와 같이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거나 상생을 고려하지 않는 승자독식의 시장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약화, 중소기업의 경쟁력 하락, 투자 및 고용부진 등으로 끝나기 때문에, 시장역량을 갖춘 대기업과 혁신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상호협력과 경쟁을 통해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계가 대기업에서 1, 2, 3차 중소 하도급 업체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먹이사슬로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도 먹이사슬의 고리에 얽혀 있다. 정규직이 누리는 처우 속엔 비정규직 희생의 대가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정규직의 협조와 양보를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계급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발전하여 한반도의 국운을 가로막을 수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Mother Teresa, 1910-1997)은 생전에 “가난한 자를 섬기는 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자들을 무조건 게으르고 무능력해서 그렇다고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눈길로 보아야함을 교훈한다. 우리도 가난한 자들을 비롯해서 소외된 자들을 형제자매로 대우하여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통합시켜 승리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국가도 시장제도와 복지제도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공동번역 마태오7:12)
III.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교훈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교훈은 주앙츠(莊子)의‘장자’(莊子) 내편(內編), 제 2편 ‘제물론’(齊物論)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줄여서 호접몽(胡蝶夢) 이라고 하며, 이것은 오랑캐 ‘호’(蝴), 나비 ‘접’(蝶), 어조사 ‘지’(之), 꿈 ‘몽’(夢)으로 이루어져서, '나비의 꿈' 이라 일컫는다.
주앙츠(莊子)는 나비가 된 꿈을 꾸고는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주앙츠(莊子)가 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는데, 보통 이를 두고 물아일체의 경지, 인생무상, 일장춘몽, 만물제동사상(평등사상) , 주관과 객관의 차이,‘‘무 ’(無), ‘공’(空) 등으로 해석하지만, 필자는 생각하길 주앙츠(莊子)가 전하는 이야기는 나비처럼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니는 ‘대자유의 향유(享有) ’를 말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의‘莊子로부터 배우는 소통의 지혜’(2010. 3. 25)에 의하면 주앙츠(莊子)가 꿈속에서 나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이 나비가 되는, 곧 주체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본다. 타자는 주체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물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주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체는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주체로 변화(變化), 곧 ‘패러다임전환’(Paradigm shift)을 해야 한다. 아집, 편견, 자기중심주의, 일방적 단견, 오만 등에서 벗어나 상대와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프랑스나 그 나라 문화나 관습을 특히 높이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린 그를 친불파(Francophile)라고 부르거나 영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면 친영파(Anglophile)라고 부른다. 이들은 ‘호접몽‘의 교훈을 실현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세기 한반도에서 우후죽순 자라고 있었던 일제의 시다바리(시타바타라키, したばたらき)들은 친일파(Japanophile)라기 보다는 진심으로 일본인이 되기를 원했던, 체질적으로 국가관이나 정의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쭉정이들이었다. 이처럼 자신과 가문의 편리나 이익을 위해서 타국가에 종속되거나 국가의 이익보다 타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는 무리들은 ’호접몽’의 교훈에 적용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패러다임전환’(Paradigm shift)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선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의 청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 그리고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내 세운다. 청국은 서구의 기술에만 관심을 갖고 정신적 개혁을 이루지 못해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하고, 조선은 정신과 과학기술 둘 다 혁명을 일으키지 못해 가장 먼저 서양의 정신과 기술을 접목시켜, 곧 ‘호접몽‘의 교훈을 실천하여 성공한 일본의 밥이 된다.
이런 실례가 19세기말 시계에 대한 반응에서도 나타난다. 한반도는 우뇌형답게 대원군 때 시계소리를 괴이하게 여겨 귀신이 붙은 것이라고 하여 굿판을 열었고, 일본열도는 좌뇌형답게 자기네들의 시간 단위에 맞도록 뜯어고쳐서 실생활에 이용하여 화시계(和詩計)라는 일본시계를 만들어내 경제부를 창출했으며, 중국대륙은 황제의 장난감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한반도와 중국대륙이 일본열도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를 대변한다.
그리스인들은 나라 이름을 '그리스'(Greece)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이는 로마의 지배를 받을 때 로마인들이 자신들을 ‘그레코’(Graecia)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호접몽‘의 교훈을 거부하며 '헬라스'(Έλλάς, Hellas)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일제의 36년의 노예생활을 근대화라고 씨부렁거리는 자존감 없는 대한민국의 일본의 시다바리들은 ’호접몽’의 교훈을 문자 그대로 철저하게 준수한다. 그래서 올 8월 미국이 이런 대한민국지배층의 사상의 풍조를 깨닫고, 여전히 한국을 일본의 노예국가로 얕잡아보며 국제기구에 우리 영해인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자는 의견을 공식 제출했고, 영국도 미국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한 열기가 확산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올 처음으로 창간된 K팝 관련 잡지(8월호)가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 표시된 지도를 포함시켰다고 한다.
152㎝키에 58㎏에 불과한 왜소한 몸에다가 두 차례의 실각(失脚)에도 쓰러지지 않아 세기의 부도옹(不倒翁, 오뚝이)이라 불리던 작은 거인 덩샤오핑(登小平, 1904-1997)이 1964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정부는 그에게 도쿄-오사카를 3시간 남짓 달리는 초쾌속 신칸센(新幹線)설비를 자랑하려고 보여주었다. 일본수상은 찬사를 기대하면서“어떻습니까?”하고 감상을 묻자, 덩은 뜻밖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우리 넓은 중국 땅에서도 이렇게 빠른 전차가 없는데, 일본처럼 좁은 나라에서 이렇게 빨리 달리는 전차가 무슨 필요 있습니까?” 중국의 대국의식과 ‘만만디라이바’(천천히 합시다) 민족성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중국의 정신세계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오늘날 중국은 진보하는 기술력과 팽창하는 국부를 자랑하기 위해 고속전철사업을 간판사업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최근 고속철 탈선 사고로 고속전철사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앙츠(莊子)의 ‘호접몽’의 교훈을 적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시기를 구분하지 못한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운명은 식민지로 전락했고, 그 시기를 적절하게 적용하며 활용한 일본열도는 세계경제대국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IV. 주앙츠(莊子)의 죽음
주앙츠(莊子)의 죽음은 주앙츠(莊子)의‘장자’(莊子) 잡편(雜編), 제 10편 ‘열어구’(列御寇)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주앙츠(莊子)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제자들이 장례를 성대히 치르려 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하늘과 땅을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시신의 입에 넣는 한 쌍의 옥으로 삼고, 별을 시신을 장식하는 구슬로 삼고, 만물을 시신에 넣어주는 부장품(副葬品)으로 삼을 것이다. 내 장례는 이미 모든 것이 갖추어져 모자람이 없거늘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이에 제자들이 깜짝 놀라 “아무렇게나 매장하면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주검을 파먹을까 두렵습니다.”고 말한다. 주앙츠(莊子)는 “지상에 두면 까마귀나 솔개가 먹을 것이고, 땅 속에 묻으면 땅강아지나 개미가 먹을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나 솔개의 것을 빼앗아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하고 반문한다. 이것은 죽음으로써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겠다는 주앙츠(莊子)의 호방한 생사관을 보여준다.
그런데 고대의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조화로운 혈연공동체를 구현하며, 이를 토대로 각종 사회적 관계가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는 구실을 하는데, 이것을 거부했다는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다. 오늘날도 비록 관례는 없어졌지만, 혼례, 상례, 제례는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해주고 동물과의 차이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에선 실버산업과 장례서비스산업이 부를 창출하는 장례문화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주앙츠(莊子)와 같은 사상을 가졌다면,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저항 받을 것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1787; Critique of Pure Reason) B75에서 이렇게 말한다.“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주앙츠(莊子)사상을 이렇게 패러디(parody) 할 수 있다.“내용 없는 형식은 위선적이고 형식 없는 내용은 조야(粗野)하다. ”인간의 삶엔 형식과 내용의 균형이 중요하다.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앙츠(莊子)의 생사관을 생태학적인 면에서 긍정적으로 상고할까 한다. 이는 주앙츠(莊子)가 생태계자체를 삶과 죽음을 연결해주는 고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글과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문맹이나 컴맹이라고 하는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한민국엔 이런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안다. 그런데 문명의 기계에 의존하다보니 자연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난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자연과 교감을 나누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감방법을 잊어버린 ‘생태맹환자’다.
유태인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 1900-1980)은 유대교의 안식일은 인간과 자연사이의 평화의 날이라고 해석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건설적이든 파괴적이든 노동을 통해서 자연계에 대해 간섭하고 있고, 인간이 자연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휴식이야 말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되먹임 사슬’(feed-back system)의 법칙에 따라 모든 생명체는 서로 자기를 밥으로 제공해주면서 더 큰 하나의 영원한 생명을 창조적으로 이뤄간다. 나눔이 생명의 제1원리이며 창조의 원리이고, 독점과 독식과 독재는 죽음의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이전에 우리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했다. 주검이 매장되면 크고 작은 균들이 번식하여 수많은 분해반응을 일으킨다. 오랫동안 생화학반응으로 분해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시체가 분해되어 나온 영양분으로 주변의 잔디나 풀은 잘 자랄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고 자연의 생명순환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우리민족은 인간이 죽으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즈음 화장보다 수목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1827년부터 약 180여 년 간 이어져온 첼시플라워쇼(RHS Chelsea Flower Show 2011)는 영국 왕립 원예협회 주관으로 런던의 템스 강변에서 매년 봄마다 열리는 ‘세계최대정원원예’ 축제다. 전남 순천시는 올 7월 24일(한국시간) 개막해 28일까지 열리는 영국 첼시플라워쇼의 공식 전시작품으로 곡성 출신 정원디자이너(서양화가) 황지해씨(광주환경미술가그룹 뮴 대표)의 ‘해우소 가는 길’을 선정해 출품시켜, 아티즌가든 부문 최고상(Best)과 금메달을 수상했다. 한국의 토종 식재를 이용해 가로 4m, 세로 5m 크기로 제작된 이 작품은 순천 선암사‘해우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의 전통 화장실이 지닌‘생명의 환원과 비움’이란 철학적 함의를 정원 디자인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씨는 고개를 숙여 출입하도록 해우소의 문을 1.2m 높이로 낮춰 설계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겸양의 의미를 알게 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Telegraph)는 한국의 전통적인 믿음에 따르면 화장실에 가는 것은 몸을 비우는 동시에 마음을 정화하는 것과 같다며 이 작품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그리고 2013년 대한민국 순천에서 처음으로 정원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정원박람회에서 수세식화장실은 자연환경을 해치지만, 한반도의 해우소는, 인분은 땅을 기름지게 하고, 땅은 인간을 기름지게 한다는 생태계사상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조선인의 성산관(聖山觀)을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 조상들이 산에 들어갈 때 반드시 대소변을 받아올 그릇을 갖고 행여나 신성한 몸뚱이를 더럽힐까 조심하고, 산신령을 놀라게 할까봐 산중에서 큰 소리로 지껄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옛말에는 감히 산에 오른다하지 못하고 반드시 산에 든다 했습니다. 하물며 숨이 턱에 닿아 어느 한 봉우리에 발을 좀 붙였기로 뭣이 산의 정복이 되겠습니까.”이처럼 우리민족은 산을 자신들의 안녕과 운수를 관장하는 신령이 있는 성스러운 신체(神体)로 본 것이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동방견문록’(Il Milione 또는 세계의 記述 Divisament dou monde)에 의하면 오아시스를 오염시킨 자는 참형(斬刑)에 처했음을 말하고 있다. BC 200-AD 200년경에 만들어진 인도고대의 백과전서적인 종교성전(聖典)인‘마누(Manu: 인류의 시조를 뜻하며, 일체의 법에 관한 최고의 권위로 숭앙받는 존재)법전’에도 냇물이나 연못이나 샘에 소변보는 것을 강도나 간통과 같은 죄질로 단죄(斷罪)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만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되어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에 근거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와 하트숀(Charles Hartshorne)의 과정철학이 주창한 유기체철학(philosophy of Organism)의 생태학적 세계관(ecological world view)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은 양자역학은 물론 불교의 불이사상(不二思想), 화엄사상(華嚴思想), 공사상(空思想), 라오츠(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25장의 ‘스스로 그러함의 철학’(philosophy of what -is-so-of-itself),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 ‘원시림의 성자’,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박사가‘문화철학’(Kulturphilosophie, 1923)에서 주장한‘생명외경사상’(生命畏敬思想, The thought of respect for life) 그리고 독일출신유대계미국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Hans Jonas, 1903-1993)의 생태학적 휴머니즘의 책임의 윤리와 관련되어 있다.
V. 나가는 말
중국은 송나라 때 주자학, 명나라 때 양명학, 청나라 때 고증학이 대두되어서 그나마 구미열강의 반식민지상태를 유지했는데, 조선왕조는 거의 5백 여 년 간 달랑 단 하나의 성리학에 올인하다가 다양한 구미열강의 선진사상의 기초위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룩한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런 외골수적인 풍조가 현재 대한민국에 만연돼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미선진국에겐 통하지 않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짝퉁 좌우파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국력이 낭비되고 있다.
대한민국엔 구미선진국처럼 진정한 좌파와 우파가 없다. 우리의 형제자매의 인권을 짓밟는 마피아 집단, 조폭 김정일체제를 무조건 추종하는 자들, 미국과 야합(野合)하여 국가기밀을 넘기고 쩐을 챙기면서 애국자인양 술수(術數)를 부리는 전 고위공직자들, 일본과 사통(私通)하며 시다바리 노릇하여 쩐쟁기며 독도마저 일본에게 넘길 뿐만 아니라 일제의 36년의 노예생활을 근대화라고 주장하며, 3.1독립운동과 1919년부터 45년까지 중국 땅에 있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Republic of Korea)와 4. 19정신을 부정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인권유린에 앞장 선 군사정권을 찬양하는 쭉정이들, 쩐에 굶주려 과학기술을 타국에 넘기는 매국노들만이 있다.
이런 자들은 스파이들이다. 모두 발본색원(拔本塞源, to eradicate sources of evil)하여 간첩죄를 적용하고 영구히 섬에 가두어 고립시켜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주앙츠(莊子)의 상대주의적 및 다원주의적 세계관이 활짝 꽃 피워 상호간의 존중과 배려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번영이 물결치는 한반도가 형성되고 세계를 리드하는 위대한 통일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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