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와 푸른 신록의 6월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붉은 장미의 계절답게 여러분의 미래가 장미 빛으로 물들고, 여러분의 비전은 초록 숲처럼 푸르름으로 가득차길 기원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천주교세력과 천주교세력이 운영하며 지원하는 모든 언론과 방송이 조작하여 만든 여론에 부화뇌동한 정치세력들이 합작해 이루어 놓은 대사기극이다.
무엇보다도 천주교도 마르첼리노 손석희와 스타니슬라오 한선교의 역할은 눈부시도록 화려했다.
천주교도 1985년생 안드레아 이준석의 국민의 힘 대표 선출도 천주교 측에서 세대교체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여론을 조작해 만들어 놓은 비극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여야를 넘나들며 천주교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천주교도 알렉산드르 김종인의 비서실장을 지낸 더불어 민주당 천주교도 1971년생 베드로 박용진을 더불어 민주당 차기 대통령후보로 만들기 위한 예비 작업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거의 모두 천주교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천주교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주교도 대건 안드레아의 송영길 대표는 같은 전라도출신 박용진 의원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청와대 천주교도 실세들이 이를 주시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은 거의 천주교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면 현재의 청와대를 비롯해 더불어 민주당 등의 범 천주교세력들을 단죄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선 국민의 힘에서 당차게 활동하고 있는 천주교도 몇 사람만 소개하겠다.
스테파노 오세훈 서울시장, 베드로 심재철, 아셀라 나경원, 사비오 정진석, 로사리아 김은혜 등을 들 수 있다. 과연 이자들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공직자의 길을 걷고 있는 가 그렇지 않으면 오컬트 바티칸과 천주교의 노예노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깊은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민의당 천주교도 하상 바오로 안철수는 과연 대한민국사람인가 아니면 오컬트 바티칸의 하수인가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비오11세는 과거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모든 천주교교도들의 공직자 입문을 금하는 동시에 모든 공직에서 내려 올 것을 명한다.
1. 신성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대제(그리스어 Κωνσταντῖνος ὁ Μέγας Konstantinos ho Megas; 라틴어 Constantinus Magnus; 영어 Constantine The Great, 재위 306-337, 274-337)는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o or Milan)을 공포하여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는데, 이것은 공식적으로 기독교의 자유를 선포한 최초의 선언이어서, 관용의 칙령(The Edict of Toleration)이라고 부른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그리스어 Βυζάντιον Byzántion; 라틴어, 영어 Byzantium)을 ‘새로운 로마’(라틴어 Roma Nova; 영어 New Rome)로 공표하고, 330년 동방의 비잔티움으로 천도한다. 그가 죽자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콘스탄티노폴리스’(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Konstantinoupolis; 라틴어 Constantinopolis; 영어 Constantinople; Byzantium->Constantinople->Istanbul로 개명)로 개명된다.
테오도시우스 1세(테오도시우스 대제; 라틴어 Theodosius I or Theodosius I Magnus; 그리스어 Θεοδόσιος A ὁ Μέγας=God의 θεός theós+give의 δίδωμιdidómi or gift, bonus, boon의 δώροdó̱ro =하나님이 내린 사람; 영어 Theodosius the Great, 379-395, 347-395)는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393년 올림피아경기대회를 폐지하는 법률을 원로원으로 하여금 공표케 한다.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장남 아르카디우스 황제(Flavius Arcadius, 395-408, 377/378-408)로 시작되는 동로마 제국(395-1453: 1453년 21세의 오스만제국 메흐메트 2세; II Mehmet, 1444-1446, 1451-1481, 1432-1481의 침략 때까지 1100년가량 존재)과 차남 호노리우스(Flavius Honorius, 재위 395-423, 384-423)로 시작되는 서로마제국(395-476: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또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 아우구스툴루스란 ‘어린 아우구스투스Little Augustus’라는 뜻. 재위 475.10.31-476.9.4, 460-511이 476년 아리우스파 오도아케르Flavius Odoacer; 그리스어 ὈδόακροςOdóakros, 초대 이탈리아왕 재위 480-493, 433-493에 의해 강제로 퇴위됨)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의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두 대제는 서로마의 멸망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 후에 게르만족이 이탈리아 왕국을 세우는데, 게르만족 가운데 프랑크족 만 제외하고 모두 카파도키아(Cappadocia: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 출신의 주교이자 성경 번역가인 울필라스(Ulfilas, Ulphilas, Orphila, Little Wolf의미의 Wulfila, 311-383) 선교로 아리우스파를 신봉한다. 이것 때문에 정통 기독교옹호자 동로마황제와 불화가 조성된다.
훈족과 스키타이족(그리스어Σκὐθαι, Σκύθης; 영어 Scythia)의 피가 반씩 섞인 오도아케르는 동로마 제국의 섭정이 되어 파트리키(라틴어 patrícĭi: 고대 로마를 다스리던 귀족 계급/플레브스; 라틴어plebs는 고대 로마의 평민계급)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서로마를 직접 통치하는 이탈리아왕이 되지만, 오도아케르가 동로마황제 제논(Flavius zeno; 그리스어 ΖήνωνZénōn; 474.2.9-475.1.9, 476.8-491.4.9, 425-491)의 폐위의 모의에 가담하자, 488년 제논 황제는 동로마 제국 내에 로마의 포이데라티(foederati: 로마 시민권을 보유하지도, 로마의 지배를 받지도 않지만 전시에는 병력을 제공할 것이 요구되는 조건으로 로마 제국 내에 거주하는 이민족)로 거주하고 있는 동고트 왕국의 초대 국왕인 테오도리쿠스(라틴어 Theodoricus; 그리스어 ΘευδέριχοςTheuderichos; Theodoric the Great, 동고트의 왕king of the Ostrogoths 재위 471-526, 이탈리아 왕 재위 493-526, 454-526)와 협약을 맺어 오도도아케르를 쫓아내면 그 영지를 동고트족에게 주기로 약속하자, 테오도리쿠스가 오도아케르를 직접 죽이고 493년에 전 이탈리아를 지배하에 넣으며, 라벤나(Ravenna)를 수도로 삼아 동고트왕국(The Ostrogothic Kingdom, officially the Kingdom of Italy; 라틴어 Regnum Italiae, 493-553)을 세우나, 그 나라가 정통기독교신앙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테오도리쿠스 사후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터키어 Ayasofya; 그리스어 Αγία ΣοφίαHagia Sophia-sacred, holy의 ἅγιος, ία, ον+wisdom의 σοφίαsofía; 라틴어 Sancta Sophia, 532~537년에 비잔틴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에 설립. 537-1453 동안 콘스탄티노플 대성당cathedral of Constantinople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역할, 1453-1931 회교사원mosque모스크. 1935-2020 박물관, 2020년 7월 10일 모스크’로 변경) 532-537년에 콘스탄티노플에 건축할 정도로 기독교신앙에 투철한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라틴어 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그리스어: Ιουστινιανός Α', 영어 JustinianI or Justinian the Great, 재위 527-565, 482-565)에 의해 553년에 멸망당한다.
그런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사후 3년에 아리우스파 랑고바르드족(롬바르드족; 라틴어 Langobardī; 이탈리아어 Longobardi 롱고바르디; 영어 The Lombards)이 랑고바르드 왕국(롬바르드 왕국; 라틴어 Regnum Langobardorum; 영어 Kingdom of the Lombards, 568-774)을 세우고, 다행스럽게 774년 기독교정통신앙을 견지한 프랑크 왕국(라틴어 Regnum Francorum; 프랑스어 Royaumes francs; 이탈리아어 Regno franco; 독어 Fränkisches Reich; 영어 the Kingdom of the Franks, Francia kingdom)이 랑고바르드 왕국을 멸망시킨다.
프랑크왕국은 기독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세력을 확장한다. 그 당시 기독교는 동로마황제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 역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800년 성탄절 50세 레오 3세(Leo PP. III; 이탈리아어 Papa Leone III; 영어 Pope Leo III, 재위 795-816, 750-816)는 자신보다 8세 연상인 58세 샤를마뉴(프랑스어 Charlemagne; 라틴어 Carolus Magnus; 독어 Karl der Große; 영어 Charles the Great; 프랑크 국왕 768-814, 서로마황제 800.12.25-814.1.28, 742?-814)에게 세례를 베풀며 서로마제국황제로 임명한다. 샤를마뉴는 아들 형제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는 고대 게르만법인 ‘살리카(살리계 프랑크족)법’(라틴어 Lex Salica; Salic Law: 작위와 영지는 세트이다. 여성이 결혼할 경우 영토나 작위가 뒤죽박죽되기 때문에 여성의 왕위를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중세에 영주의 외동딸이 결혼할 경우, 결혼지참금 명목으로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시집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의 기원 가운데 하나임)을 근거하여 영토를 분배하려고 하지만, 아들들이 모두 요절해 겨우 살아남은 여섯 째 아들(배다른 형 곱사등이 피핀, 형 피핀 카를로만 또는 피피노<771-810, 이탈리아의 왕>형 요절, 청년왕 샤를772-811, 쌍둥이 형 로타르는 태어나자마자 죽음) 루이 1세 경건왕(라틴어 Ludovicus I Pius; 프랑스어 Louis le Pieux; 독어 Ludwig der Fromme; 영어 Louis the Pious or the Fair 프랑크 국왕 814-840, 서로마황제 813–840, 778-840)이 자신의 후계자가 된다. 루이 1세는 아버지의 사후 ‘살리카법’을 제쳐두고 장자 상속제를 실시하려다 실패한다.
루이 1세 사후 아들 간에 영토분쟁이 일어나, 843년 프랑스 베르됭에서 영토를 각각 삼분한다는 베르됭 조약(프랑스어 Traité de Verdun; 영어 Treaty of Verdun)이 체결되어 장남 로타르 1세(이탈리아어 Lotario I; 라틴어 Lotharius; 독어 Lothar 1; 프랑스 Lothaire 1; 영어 Lothair I or Lothar I, 중프랑크 왕 843-855, 795-855)는 중프랑크(라틴어 Francia media; middle Francia; 로타링기아, 알사스, 프로방스, 이탈리아 반도 북쪽 등), 셋째 아들 루트비히 2세(영어 Louis the German, Louis II; 독어 Ludwig der Deutsche, 동프랑크 왕 843-876, 804-876)는 동프랑크(the East Francia= the kingdom of Germany, German Kingdom=독일), 이복형제 샤를마뉴 2세(Charles the Bald. 태어났을 때부터 이복형들이 왕위를 다 차지해서‘자신이 쓸 왕관이 없는 자’라는 뜻으로 붙은 별명, 서프랑크 왕 843–877, 823-877)는 서프랑크(the West Francia프랑스)를 차지한다.
855년 로타르 1세는 장남 루이 2세(Louis II,the Younger, 825-875)에게 이탈리아왕국을 물려주고, 황제칭호를 수여하고, 차남 로타르 2세(Lothair II, 재위 855-869, 835-869))에겐 ‘로타링기아 왕국’(Lotharingia, Lotharii Regnum, 로타르의 나라 라는 뜻. 수도는 로렌)을, 막내 프로방스의 샤를(Charles of Provence, 840/845?-864) 또는 샤를 2세(Charles II)에겐 프로방스(Provence)와 부부르고뉴(Bourgogne)를 물려준다.
869년에 ‘로타링기아 왕국’의 국왕 로타르 2세가 사생아 아들들과 세 딸을 낳고 후사 없이 사망하자 서프랑크의 국왕 샤를마뉴 2세가 ‘로타링기아 왕국’을 병합한다. 동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는 이에 반발하여 양국 간에 전쟁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으나, 870년에 네덜란드의 메르센에서 ‘로타링기아 왕국’을 동서로 분리하여 동서프랑크 왕국에서 나누어 가지는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870년 메르센 조약(프랑스어 Traité de Meerssen; 독어 Vertrag von Meerssen; 영어 The Treaty of Mersen or Meerssen: 메르센은 현재의 네덜란드 남부 림뷔르흐주Limburg에 있는 도시)이라고 부르며 이를 통하여 프랑크 왕국의 분할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고,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국경의 경계의 지리적 기초가 성립된다.
그런데 843년 베르됭 조약, 870년 메르센 조약을 통하여 프랑크 왕국이 동과 서로 분할을 거치며 911년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4세 유아왕(독어 Ludwig IV, das Kind; 영어 Louis the Child, 재위 899-911, 893-911)이 18세에 사망하면서 독일계 카롤링거왕조(Carolingian dynasty, 751-843)가 단절된다. 카롤링거 가문이 끊기면서 동 프랑크의 왕 선출 방식은 지역 귀족들의 투표로 바뀌고(선제후選帝侯; 라틴어 Princeps Elector; 독어 Kurfürst, pl. Kurfürsten; 영어 The Prince-electors: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정하는 역할을 하였던 신성로마제국의 선거인단), 이때부터 오토가문왕조(the Ottonian dynasty)가 등장하여 독일 왕국이라 불린다.
선제후에 대해 살펴보자.
룩셈부르크 왕가 출신 신성로마황제 카를 4세(Karl IV, 재위 1355-1378, 1316-1378)는 1356년 1월 10일 뉘른베르크 및 동년 12월 메츠의 제국의회(帝國議會)에서 총 31장으로 구성된 신성 로마 제국의 법률인 금인칙서(金印勅書; 라틴어 bulla aurea; 독어 Goldene Bulle; 영어Golden Bull: 당시 주로 서신에 인장을 찍을 때 밀랍이나 실 대신 황금의 인새印璽-옥새-를 사용한데서 이르는 말로 금인헌장金印憲章 또는 황금문서黃金文書라고 도 부름)를 공포하면서, 서임권 투쟁 이후에 전개된 교황의 간섭 없이 7명의 선제후, 곧 마인츠(Mainz), 트리어(Trier), 쾰른(Köln)의 대주교 3명과 팔츠(Pfalz)백작, 작센(Sachsen)공작,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변경백(邊境伯; 후작), 룩셈부르크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보헤미아(Böhmen)의 국왕 등의 4명 모두 7명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선출하고, 황제는 교황의 승인 없이 대관식을 할 수 있게 되고, 금인칙서를 통해 선제후는 영지 내 완전한 재판권, 광산 채굴권, 화폐 주조권, 관세 징수권과 유대인 보호권을 갖게 되었는가 하면, 선제후 영지는 완벽한 장자 상속제로 분할 상속이 금지되고, 선제후는 황제의 호출에 응하지 않고, 황제에 의해 소환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되었으며, 선제후에 대한 반역은 대역죄로 처벌하게 된다.
그리고 금인칙서는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 450년간 효력을 가진다. 금인칙서 발표를 전후해서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는 독일어 사용권으로 한정되고, 제국의 지방분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오토 1세 대제(독어 Otto I der Große, 오토 1세Otto I, 오토 대제 Otto der Große, 912-973)가 독일 국왕 및 작센 공작(936-973), 이탈리아 국왕(961-973), 신성로마제국(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로마’라는 이름을 붙였고, 기독교회와의 일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신성神聖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상징적 이름: 프란츠 2세Franz II, 재위 1792-1806, 1768-1835는 1806년 나폴레옹의 라인동맹 정책에 의한 압박을 받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에서 퇴위, 844년 동안 유지된 신성로마제국은 멸망)의 초대 황제(962-973)가 된다.
서프랑크 왕국의 후신인 프랑스 왕국이 중앙집권을 향해 발달한 것과 달리, 신성 로마 제국은 수백 개의 왕국, 공국, 후국, 백국, 자유시 등의 영방국가(領邦國家; 독어 Territorialstaat; 영어 territorial state: 중세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13세기 이후 그 수가 약 300이나 되어,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영방국가 주권이 국제적으로 승인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도 각각 영방국가의 하나였는데, 이 영방국가가 국가적 분열을 극복하게 된 것은 프로이센에 의한 1871년 독일제국帝國 창건에 의해서임/연방제聯邦制; federation, federal state는 국가의 권력이 중앙 정부와 주에 동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정치 형태로)들로 이루어진 분권화된 제한적 선거군주국으로 발전한다.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역사에서 살펴보면, 이해가 용이하다.
독일 제1제국(신성 로마 제국; 라틴어 Sacrum Romanum Imperium ; 독어 Heiliges Römisches Reich, HRR, 962-1806)-제2제국(Zweites Reich, 프로이센제국, 루터교, 1871-1918: ‘빌헬름 1세Wilhelm I. 프로이센의 국왕 1861-1888, 제2제국 황제 1871-1888, 1797-1888’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뒤,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연방 군주의 만장일치로 독일제국의 세습 황제로 추대되고, 독일 통일이 완성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가 독일 제국 제1대 수상에 임명됨)-바이마르공화국(독어 Weimarer Republik; 영어 Weimar Republic, 1918-1933)-나치독일(NS-Staat; 영어 Nazi Germany; 독일 제3제국Drittes Reich, 1933-1945)
신성로마제국은 독일 제1제국인데, 이것을 오컬트 바티칸이 차용한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토 1세(오토 대제; Otto I; Otto der Große; 영어 Otto the Great, 912-973)로 시작하여 프란츠 2세(Franz II, 재위 1792-1806, 1768-1835)가 1806년 나폴레옹의 라인동맹 정책에 의한 압박을 받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에서 퇴위하면서 사라진다.
2. 이탈리아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1805-1872)와 주세페 M. 가리발디(Giuseppe Maria Garibaldi, 1807-1882)의 협력으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Risorgimento, 1750-1870)을 완성하여 1860년 근대 통일 이탈리아 국가를 세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이탈리아어 Vittorio Emanuele II; 영어 Victor Emmanuel II , 사르데냐 국왕 재위 1849-1861, 이탈리아왕 재위 1861-1878, 1820-1878)는 당해 교황군을 격퇴한 후 로마와 라티움(Latium)을 제외한 모든 교황의 영토를 점령하고, 1870년에는 로마를 수도로 병합한 후 교황령을 모두 빼앗아 버린다. 당시 교황 비오 9세(라틴어 Pius PP. IX; 이탈리아어 Papa Pio IX, 재위 1846-1878, 1792-1878: 역대 교황 가운데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교황으로 사진 찍는 것을 즐김)는 강력하게 저항하지만, 이때부터 교황은 ‘바티칸의 포로’로서 살아야만 했다.
비오 9세는 정치권력을 잃자, 궁여지책으로 제1차 바티칸공의회(라틴어 Concilium Vaticanum Primum; 영어 The First Vatican Council of 1869-1870)를 개최하여, ‘교주무오성’(무오성無誤性; 라틴어 infallibilitas; 영어 Papal infallibility)을 선언하며, 종교권력을 확고히 한다.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누르고 오컬트 교주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 예수회를 영국성공회에 파견해, 1870년 영국성공회로 하여금 ‘킹 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 약칭 KJV/The King James Bible, 약칭 KJB 또는 흠정역欽定譯; Authorized Version, AV, 1611)이 오류투성이기 때문에 개정판필요성을 주입시킨다.
킹 제임스 성경의 오역판인‘영어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RV, 신약 1881, 구약 1885, 외경 1895)이 등장하며, 기독교는 무너지기 시작하고 오컬트 바티칸의 교주무오성만이 절대적 진리로 자리 잡고 천주교의 강세가 시작된다.
3. 무솔리니와의 정교협약
교황 비오 11세(이탈리아어 Pio XI; 영어 Pope Pius XI, 재위 1922-1939, 1857-1939)는 국무성성 장관 추기경(라틴어 Cardinalis a Secretis Status; 영어 Cardinal Secretary of State, Papal Secretary: 1914-1930년 동안 교황청의 수상 격으로 교황청의 각 성성聖省들을 주재) 피에트로 가스파리(Pietro Gasparri, 1852-1934/이탈리아어 Pietro=영어 Peter)를 교황청 대표로 하여 1929년 2월 11일 이탈리아 당시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이탈리아어 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재위 1922-1943, 1883-1945) 정권과의 사이에 라테라노(라테란)궁(이탈리아어 Palazzo Laterano; 영어 Lateran Palace: 콘스탄티누스 1세; 라틴어 Constantinus I; 영어 Constantine I, 재위 306-337, 272-337/콘스탄티누스 대제; 그리스어 Κωνσταντῖνος ὁ Μέγας; 라틴어 Sanctus Constantinus Magna; 영어 Constantine the Great가 311년 기증하여 1309년부터 1377년까지 70년간 프랑스의 아비뇽Avignon으로 옮겨있던 이른바 ‘아비뇽 유수; 프랑스어 cattività avignonése; 영어 Avignonese Captivity’기간을 제외한 천 년 동안 교황이 사용했던 궁전이며, 5세기경 교황 ‘심마코; 라틴어 Symmachus PP.; 이탈리아어: Papa Simmaco; 영어 Pope Symmachus, 재위 498-514, ?-514’가 ‘라테라노궁’의 대비공간으로 ‘베드로 성당 the Old St. Peter’s Basilica’인근에 요새화된 ‘사도궁; 라틴어 Palatium Apostolicum; 이탈리아어 Palazzo Apostolico; 영어 The Apostolic Palace’을 건축한다. 교황 그레고리오 11세; 라틴어 Gregorius PP. XI;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XI; 영어 Pope Gregorius XI, 재위 1371-1378, 1329-1379가 1377년 1월 7일 로마에 당도하면서 아비뇽 유수를 종식시키고, 사도궁으로 교황청을 옮긴다. 1447년 교황 니콜라오 5세; 라틴어 Nicolaus PP. V; 이탈리아어 Papa Niccolò V; Pope Nicholas V. 재위 1447-1455, 1397-1455가 ‘바티칸 궁전Vatican Palace’으로 새롭게 건축하여 오늘날의 교황청이 자리하게 됨)에서 라테라노(라테란)조약(이탈리아어 Patti Lateranensi; 라틴어 Pacta Lateranensia; 영어 The Lateran Treaty: 27항의 화해조약, 3항의 경제약정 그리고 45항의 정교政敎협약의 세 개의 협정문서로 되어 있는데, 그 핵심은 바티칸을 중심으로 일정 영토와 국민, 주권을 지닌 독립국가 바티칸시국의 보장이다.
754년 프랑크 단신왕 또는 ‘소 피핀’(라틴어 Pippinus III Brevis; 이탈리아어 Pipino il Breve; 프랑스어 Pépin le Bref; 독어 Pippin der Kurze; 영어 Pippin III the Short, 재위 751-768, 714-768)의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기증 때부터 1870년 이탈리아 왕국에 멸망, 합병되기 전까지 존속했던 ‘교황령’(敎皇領; 라틴어 Status Pontificius; 이탈리아어: Stati Pontificii; 영어 The Papal States/교회령敎會領; 라틴어 Status Ecclesiasticus;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hiesa; 영어 the State of the Church/베드로 세습령世襲領; 라틴어 Patrimonium Petri; 영어 Patrimony of St. Peter)의 손실 및 교회재산에 대한 보상으로 무솔리니는 교황청에 현금 7억5,000만 리라와 1억 상당의 국가채권을 지불하여, 교황청은 그 돈을 시국 경제재건과 바티칸 은행IOR 설립의 종자돈으로 활용한다. 이탈리아의 국회가 1929년 6월7일 비준하고, 1947년 이탈리아의 헌법에 인준되어 교황청이, 오늘의 ‘바티칸시국’(市國; 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ae;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영어 The Vatican City)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비오 11세는 과거 교황령 시절의 영토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는 대신 무솔리니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받는 동시에 자주 중립적 독립국으로서의 바티칸 시의 지위를 보장받게 되고, 비오 11세 자신은 교황령이 몰락한 이후 주권국가의 국가원수 자리에 오른 첫 번째 교황이 되고, 천주교는 이탈리아의 국교로 인정받는다. 그 답례로 비오 11세는 무솔리니의 독재적인 전체주의, 곧 ‘파시즘’(fascism) 승인하여, 오컬트 바티칸의 체제가 독재적인 전체주의임을 전 세계에 선언하는 동시에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을 비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4. 히틀러와의 종교협약
1933년 1월 30일 독일의 총리가 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정교 협약을 맺자는 제의를 하자 비오 11세는 이를 수락한다. 1933년 9월 10일 에우제니오 파첼리(Eugenio Pacelli: 후에 교황 비오 12세라틴어 P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Pio XII; 영어 Pious XII, 재위 1939-1958, 1876-1958이 됨) 추기경과 나치정부는 천주교회의 자유 보장, 천주교단체와 청년 모임의 독립,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을 포함한 제국종교협약(Reichskonkordat)을 체결하고, 후에 전개되는 나치의 제2차 세계대전을 인정하는 후유증을 겪으며, 세계시민들에게 오컬트 바티칸의 정체는 인류의 평화와 자유와 복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오직 오컬트 바티칸의 권력과 돈 그리고 섹스 등의 사탄의 짓거리를 위한 추종자임을 밝힌다.
5. 종합
일루미나티(라틴어 Illuminati)나 프리메이슨(freemason)을 ‘딥 스테이트’(deep state)로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상당한데, 그것은 천주교 세력들, 특히 예수회와 오푸스데이 등의 수도단체가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덮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적인 단어다.
‘딥 스테이트’는 오컬트 바티칸이고, 천주교 신부, 주교, 대주교, 추기경, 수녀 등은 세속정부의 군인이며, 예수회와 오푸스데이는 세속군대의 해병대나 특전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천주교나라가 되어 희망이 거의 없고, 대한민국도 거의 천주교나라가 되는 과정 속에 있다.
천주교도 티모테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롯해 스테파노 오세훈, 알렉산드로 김종인, 대건 안드레아 송영길과 더불어 민주당, 안드레아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 베드로 박용진의 대통령후보(더불어 민주당), 하상 바오로 안철수, 아셀라 나경원, 베드로 심재철, 사비오 정진적, 로사리아 김은혜 등의 이름은 대한민국의 천주교화의 과정(오컬트 바티칸의 존재를 위한 도구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기독교말살차원에서 화려한 언어를 날린 마르첼리노 손석희, 스타니슬라오 한선교 등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차기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어야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공화국, 자본주의 그리고 건강하고 건전한 복지국가로 발전하지 그렇지 않고 천주교 세력이 청와대를 접수하면 대한민국은 네오마르크시즘의 실험장이 되는 동시에 중국 공산당의 위성국가로 전락해, 프랑스와 벨기에를 제외한 모든 천주교국가처럼 손가락 빠는 나라로 전락한다.
무정부주의자, 매국노, 전체주의자, 독재주의자, 살인마들인 천주교도는 모두 대한민국을 떠나 오컬트 바티칸 시국으로 떠나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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