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운동을 통해서 본 기독교와 천주교’를 YouTube로 올렸다.
독자 여러분께서 구글의 검색에 ‘함시영 목사’를 기입하면 함시영 목사 관련 이미지가 나타나고, 그 위에 검색결과(함 목사 강의 분야별로 정리)를 참조하면 위의 강의를 듣고,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점은 물론 철학과 타종교와도 비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그 동안 강의한 내용도 시청할 수 있다.
1. 정의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 1833-1845)은 19세기에 행해졌던 잉글랜드 국교회의 고교회(高敎會)를 지향하는 잉글랜드 천주교화 운동이다(The Oxford Movement was a movement of High Church members of the Church of England which eventually developed into Anglo-Catholicism).
2. 원인
대영제국은 1829년 ‘천주교해방령’(Catholic Emancipation)을 내린다.
그것은 그 동안 배제된 천주교신자가 공직에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한 법령이다. 아일랜드는 천주교신앙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에 천주교해방령과 잉글랜드 성공회 신자 숫자의 감소로 인해 아일랜드 성공회가 천주교교회로 전환될 것을 우려하며, 잉글랜드 정부는 아일랜드에 있는 성공회 교구에 대해 고심한다.
개혁적인 휘그당정부는 결단을 내려 1833년 ‘교회 재산 법령 1833’(The Irish Church Temporalities Bill or The Church Temporalities Act, 1833)을 통과시켜, 아일랜드 교회의 구조(성직자 계급제도hierarchy: 주교교구와 대주교교구의 축소a reduction of bishoprics and archbishoprics)와 세입(교회토지임대의 변화)을 개혁코자 한다.
3. 저항
당시 옥스퍼드 대학교 내 오리엘 칼리지(Oriel College in Oxford) 교수이자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의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난다.
시문학 교수로 재직(1831-1841)하고 있던 존 키블(John Keble, 1792-1866: 1816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된 고교회파지향)이 정부의 조치에 반대하며, 1833년 7월 14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국가의 배교’(National Apostasy)을 주제로 교회와 교회의 재산에 간섭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설교하면서 옥스퍼드 운동을 촉발시킨다.
키블은 동료교수로 자신보다 9년 연하인 성공회 사제인 존 H.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2)과 함께 1833-1841년 논문집 ‘시국(時局)을 위한 소책자(팸플릿)’(Tracts for the Times, 41권)을 통해, 국가간섭이 배제된 교회의 독립성과 국가권력으로부터 교회자유를 위해 고교회적 의식주의(Ritualism in the Church of England)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옥스퍼드 운동’을 ‘소책자운동’(Tractarian Movement or Tractarianism), 이를 주도하는 교수와 사제를 ‘소책자운동가’(Tractarian)라고 칭한다.
뉴먼은 1841년 발간된 소논문집 90호에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결정했던 사항들이 영국 국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와 일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성공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뉴먼은 1842년 추종자들과 함께 준(準) 수도 공동체인 리틀모어(Littlemore)에 머물면서 1845년 바티칸제도에 승복하며 개종한다.
히브리어어 학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부브리 퓨지(Edward Bouverie Pusey, 1800-1882) 성공회 사제가 뉴먼의 뒤를 잇는다. 퓨지는 소책자 발간 초기에 옥스퍼드 운동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다가, 1836년 키블과 뉴먼을 초빙해서 ‘교부 문고’(Library of the Fathers) 편집 계획을 세우면서 옥스퍼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퓨지는 1843년 ‘참회자에게 위로인 성체 성사’(The Holy Eucharist, a Comfort to the Penitent)를 주제로 설교하고, 옥스퍼드대학교로부터 2년간 설교 금지 처분을 받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1846년 ‘참회자의 완전한 사죄’(The Entire Absolution of the Penitent)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천주교 7성례의 제도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한다.
잉글랜드 성공회에는 옥스퍼드 운동을 펼친 자들을 1845년 전엔 ‘뉴먼주의자’ 그 이후엔 ‘퓨지주의자’라고 조롱한다(Tractarians were also disparagingly referred to as ‘Newmanites’<before 1845> and ‘Puseyites’<after 1845> after two prominent Tractarians, John Henry Newman and Edward Bouverie Pusey)
4. 비판
옥스퍼드 운동의 교회관은 무정부주의적인 전체주의, 독재주의 바티칸의 성직자계급제도(Hierarchy)를 지향한다. 그것은 차별을 통한 통치, 지배, 곧 통치자(잉글랜드 성공회 성직자)와 노예(잉글랜드 성공회 신자) 구분을 통한 종교권력을 추구다.
옥스퍼드 운동은 바티칸의 의식주의를 지향하며, 종교권력을 소유하지만, 예전의 본질적인 의미를 간과하는 대 실수를 저지른다.
이것에 비해 기독교의 교회관은 차별하는 성직자계급제도가 아니라, 서로 섬기되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사상을 견지한다. 이런 교회관에 해당되는 단어가 기독교인 공동체인‘회중’(Congregation)이다.
그래서 기독교 목회자는 일상생활에서 기독교인들과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 없는 평등적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기원이 기독교임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5. 영향
헨리 8세가 잉글랜드와 신앙을 위해 영국성공회를 세웠다면, 뉴먼은 무정부주의자답게 잉글랜드를 버리고 종교권력을 위해 수많은 추종자들과 더불어 노예의 길로 간다. 다행스럼게도 키블과 퓨지 등은 잉글랜드 성공회에 남아 옥스퍼드 운동을 지속한다.
옥스퍼드 운동에 참여한 사제들이 조선에 대한성공회(大韓聖公會, 영어: Anglican Church of Korea)를 설립해, 대한성공회는 고교회파 전통을 지향하며, 천주교와 대부분 동일한 교회 용어를 사용한다. 이에 반해 일본 성공회는 저교회파의 전통을 존중하여 칼뱅주의의 교회용어를 사용한다.
대한성공회는 1993년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속하는 정식 관구(Province)로 독립된 성공회 교회가 된다.
6. 종합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 논쟁(마태복음 12:1-8; 마가복음 2:23-28; 누가복음 6:1-5)을 통해 기독교 교회관이 옳고, 바티칸의 교회관이 그릇되었음을 밝히신다.
이 본문 내용은 사무엘상 21:1-6에 근거한 것인데, 아론계열제사상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다윗이 먹었다고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은 모든 사상과 제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존엄과 생명사상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 스스로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심으로써, 모든 기독교인은 사역을 할 때 자신의 인격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중사상을 견지하되,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본주의를 강조하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 교회관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회중이되, 그 공동체의 중심은 성삼위하나님에 대한 예배, 신앙과 영광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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