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시절 민의원을 지내다 제2공화국 시절 내무부, 두 차례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석계(石溪) 현석호(玄錫虎, 1907-1998)는 1986년 ‘한 삶의 고백’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위를 참회했다.
석계는 1907년 경북 예천 태생으로 경성제대 재학 중 1933년 10월(1934년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1936년 전라남도 순천군수, 1938년 황해도 산업과장을 지냈으며, 1939년 5월부터 1944년 10월까지 북경 흥아원 사무관( 총독부 베이징총영사관 영사)로 근무했다. 1944년 충청남도 광업부장으로 임명되어 재임 중 해방을 맞았고, 1945년 9월 충남지사로 미군정 육군 대령이 부임하자 사직서를 제출하며 당시 지사에게 민족의 새정권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며 이렇게 심정을 밝힌다.
“나는 일제에 협력한, 고급관리로서 일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석계는 1947년 미군정 중앙경제위원회 기획관을 거쳐 1949년 남선전기 부사장, 1952년 경성전기 전무취체역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다가 1954년 제3대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자유당 소속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54년 제2차 개헌 때 ‘사사오입개헌’으로 자유당을 탈당하고, 새로 발족된 민주당에 입당하여, 1960년 4.19혁명 후 7월 제5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예천에서 당선되었으며, 제2공화국에서 제9대 국방부-제23대 내무부-제11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던 중 5·16 군사정변을 맞아 1960년 5월 20일 장관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그는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뒤에는 장면, 김도연, 오위영, 조재천, 박순천과 함께 민주당 재건에 참여(1963년)하였다.
1962년 영세를 받은 후, 1965년 12월부터 1985년 7월까지 가톨릭교리연구소 소장으로, 1985-1988년 12월까지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임하였다. 1977년 가톨릭 평신도로서는 최고 영예의 하나인 바티칸 로마교황청의 기사대장 칭호와 공로훈장을 한국인으로서는 장면에 이어 두 번째로 받았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분야에 선정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석계는 자서전 ‘한 삶의 고백’(1986)에서 아래와 같이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참회한다.
“해방되던 날부터 나는 친일관리로서의 거취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나 개인으로서는 양심적으로 부끄러운 일은 없지만 일정 때 고급관리로서 협력한 것은 사실이다. 일제에 반대하는 투쟁대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일과 출세를 위해 힘쓴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해방과 독립이 일본의 패망과 미국의 승리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궁극적인 원인이 조선민족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을 비롯한 국내외의 투쟁에서 뼈를 갈고 피를 뿌린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공로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나 같은 사람은 참으로 죄스럽고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관리생활 동안에 피부로 느꼈던 차별대우와 모멸감에서 해방된 기쁨과 감격은 남 못지않게 큰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의적 죄책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석계의 진심어린 참회는 다음과 같은 언설을 쏟아내는 사람들과 뉴라이트 역사관을 단죄한다.
“일본의 신사 참배는 후손이 조상을 찾아가는 것인데, 100년 전 조상이 잘못한 일이 있다고 조상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참배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패륜”, “한국이 관여하려는 것은 내정간섭”,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총리보다 훨씬 중요한 천황이 머리를 숙여 사과했는데 왜 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과하라고 하느냐”, “일본이 제철소도 지어주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모태가 될 일들을 많이 해줬는데 피해 의식만 갖고 산다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고위 간부였다”,“나는 친일파”,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 “독도는 일본 땅일 수 있다”, “위안부는 돈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매춘부다”, “일제강점기는 근대화의 시혜” 등의 담론이 대한민국을 유령처럼 배회해도 편안한 대한민국, 어디로 갈 것인가? 대한민국식의 남북통일로 아니면 일본열도로?
성서는 자유와 독립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공동번역. 갈라디아서 5:1)
“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개역한글. 요한복음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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