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조선일보“[Why] 반 고흐 '의사 가셰의 초상화'를 거액에 산 日 기업가가 몰락한 이유”(추천)

아우구스티누스 2016. 1. 16. 17:36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의 ‘동기감응’(同氣感應)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를 함유한다.


예컨대, 노르웨이 출신의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63-1944)표현주의 화가는 유년 시절 경험한 질병과 광기, 죽음의 형상들을 왜곡된 형태와 격렬한 색채에 담아 표현하여, 공포와 절망과 죽음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거의 같은 시대를 살다간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작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작품과는 달리, 뭉크의 작품 을 소유했기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프랑스의 화가,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그림을 보면 시적(詩的) 정감과 우수, 엄숙함과 거룩함을 느낀다.


이런 모든 것은‘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를 반영한다.


구약 성서 잠언은 이렇게 교훈한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언 4:23)

이런 사실을 감안하며 다음 글을 일별해보자.


그림에 투자를 할까, 주식에 투자를 할까? 아니면 아파트에 투자할까? 경제학자이면서 해마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라는 보고서를 내는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그림 시장 전문가이다. 다음은 최 교수의 분석이다. "미국에서 1950년부터 2000년까지 그림의 연평균 실질 수익률은 8.2%, 주식 투자 수익률은 8.9%, 회사채 수익률은 2.2%였다. 그림 시장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까지의 10년 동안 주가지수는 4.2배, 그림가격지수는 7.4배,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3배 상승하였다."그림이 투자의 주요 수단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림은 풍수의 핵심 이론인 동기감응(同氣感應)을 유발하는 좋은 매체로 여겨진다. 동기감응이란 같은 기운(同氣)이 서로 느껴(感) 그 결과 반응을 보이는 것(應)을 말한다.

풍수와 산수화는 모두 산(山)과 수(水)를 공통 대상으로 하는데, 본래 그 기원이 같다. 따라서 풍수가 그림을 동기감응의 수단으로 본 역사는 아주 길다. 일찍이 중국의 종병(宗炳·375~443)은 잘 그려진 산수화는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화가의 그것과 감응하게 한다고 하였다. 좋은 그림은 인간을 구원하지만 나쁜 그림은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빈센트 반 고흐 작품들은 풍수적으로 살펴볼 좋은 사례이다. 반 고흐도 그림과 인간 사이에 일종의 동기감응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한 장의 그림을 보고 흥미를 느낄 때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물음을 던진다. 이 그림을 걸어 효과가 있고 적당한 곳은 어떤 집, 어떤 방의 어떤 장소일까? 또 어떤 사람의 가정일까?"


위 문장은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의 '내 친구 빈센트'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박 교수는 반 고흐야말로 진정한 "대지의 화가"로서 그가 그린 것은 "고정된 대지가 아닌 꿈틀거리는 삶의 대지였다"고 말한다. 풍수학인의 입장에서 반 고흐의 대지관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풍수란 결국 대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반 고흐 그림을 "소용돌이 기법"으로 파악하였으며, 그것은 사람들에게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반 고흐가 대지에서 본 것은 풍수 용어로 광룡(狂龍), 즉 미친 땅이었다. 땅이 미쳤는지 아니면 그가 그렇게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반 고흐의 생애가 비극적이었음은 잘 알려진 대로이다. 그의 대표작이자 한때 세상에서 가장 비쌌던 그림 역시 비극적이었다. 그가 죽기 몇 주 전에 그린 '의사 가셰의 초상화'(1890년)를 말한다. 가셰는 반 고흐를 치료하던 의사였는데 반 고흐처럼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 반 고흐가 그린 그의 초상화는 매우 우울하게 보인다. 반 고흐는 의사 가셰를 자신의 내면적·외면적 '도플갱어'로 보았다. 가셰의 초상화이지만 동시에 반 고흐의 자화상인 셈이다.


반 고흐가 죽은 지 100년 뒤인 1990년, 그림은 일본인 기업가 사이토 료에이(齊藤了英)에게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무려 8250만달러(약 1000억원)였다. 그렇게 비싸게 구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사이토 회장의 대리인 화상(畵商) 고바야시 히데토(小林秀人)는 "사이토 회장이 가셰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 그림은 반 고흐·가셰·사이토 3인의 초상화인 셈이었다. 사이토 회장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그림을 산 지 3년 뒤인 1993년 그는 뇌물 공여죄로 구속되고 회사는 망한다. 분명한 것은 이 그림에 대한 투자가 그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점이다. 1996년 그가 죽은 후 '의사 가셰의 초상화' 행방은 묘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