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역사 이야기

한국역사는 구미선진국의 역사기술인 Faction을 지향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2012. 6. 14. 06:52

    Edward VIII(The Duke of Windsor, 1894-1972, 재위기간 1936년 1-12월)하면 학창시절 세계시간 때부터 들었던 ‘세기의 사랑’이 연상된다.

 

 

    그는 George V(1865-1936, 재위기간 1910-1936)의 큰 아들로 왕위를 물려받고, 두 번 결혼에 실패한 미국 출신 Mrs. Wallis Simpson(The Duchess of Windsor, 1896-1986)과 결혼하려고 하자, 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1874-1965)을 제외한 영국 사회와 영국 국교회는 이들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는 왕위와 사랑하는 여인,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자, 1936년 12월 11일 라디오 방송에서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알았다."라며 퇴위를 공식 선언한다.

 

 

    동생 George VI(1895-1952, 재위기간 1936-1952)가 국왕자리를 계승하고 자신의 형에게 The Duke of Windsor 작위를 내리고, Mrs. Simpson은 Duchess of Windsor이 된다. 이듬해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조촐하게 식을 올린다.

 

 

    그래서 Edward VIII는‘세기의 로맨스’의 주인공, 곧 ‘The Duke of Windsor & Mrs. Simpson’으로 기억된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말하면 Storytelling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생구라다.

 

 

    그래서 두 가지 차원에서 ‘The Duke of Windsor & Mrs. Simpson’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공개된 영국 공문서에 의한 해석이다.

 

 

    이 문서에 의하면 Mrs. Simpson은 독일 스파이로 영국에 주재하던 독일대사의 연인이었는데, 의도적으로 Edward VIII에게 접근하여, 그를 친독일파로 만든다. Edward VIII는 영국과 독일,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중립국인 스페인으로 피신해 살았는데, 독일 사람들과 어울리며, 독일 옹호 발언을 자주 해,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부왕인 George V는 "내가 죽으면 저 인간이 왕이 될 텐데 1년도 안 돼 지 무덤을 지가 팔 거야"라고 말했다든가, Churchill 수상은 '제 발로 오지 않으면 내가 끌고 오겠다'고 울화통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영국 정치권에서는 Edward VIII의 친독일파성향을 비판하며, 그에게 양위를 강력하게 요구해, 그가 스스로 왕위자리를 내려오게 한다.

 

 

    둘째, 의학적 차원에서 해석이다.

 

 

    Edward VIII는 미남형이지만, 심각한 성기능장애(조루)가 있는, 바람둥이였는데, 파트너와 관계가 깊어질 때쯤이면, 조루 때문에 그 파트너를 바꿔버리곤 한다. 알코올이 사정중추를 억제해 일시적으로 조루증상을 덜해줌을 알고, 늘 술에 찌들어 살다가, Mrs. Simpson을 만나자, 자신의 성기능장애를 치료해줄 있는 편안한 상대임을 깨닫고, 비록 이 여인이 미인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혼한 경력이 있어 왕비로 결격사유이지만, 자신의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를 치료하기 위해 그는 과감히 이 여인을 선택하고 왕위를 버린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왕위보다 섹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Edward VIII의 동생 George VI는 심한 말더듬이었지만, 엄격했던 부왕 George V 조지 5세와 어머니 메리 왕비의 훈육방식을 극복하고, 치료사를 찾아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말더듬을 고쳐, 부왕을 계승한다.

 

 

    이렇듯 구미선진국역사는 실증사학에 기초한다고 하지만, 역사적 사실(fact)과 가공의 이야기(fiction)를 더한 문화예술 장르인 ‘Faction’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도 ‘Faction’으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사상이나 상상력이 덧붙여져 해석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은 다른 공문서에 그대로 남아있어, 그 역사적 사실의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