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의 거대담론은 성리학, 곧 모화사상(the idea of worship of Chinese civilization)이다. 중화주의(Sinocentrism)는 다른 사상은 오랑케사상으로 치부하고, 자신에게 절대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인식론적 사대주의다.
획일적이고 비판불가능하며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거대담론 모화사상 때문에 조선왕조는 단군조선, 고구려 옛 영토, 고려의 고토(故土)회복정신이 부담스런 과제였다. 세조, 예종, 성종 때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등의 서책을 가진 자들에게 자진 납부하도록 명령할 정도였다. 조선은 중국 은나라 사람인 기자(箕子)가 세운 ‘기자조선’을 이었다고 자칭한 나라다. 평양에 기자묘와 기자사당을 세워 제사를 올렸다. 그 후 우리민족의 역사무대는 한반도였다는 ‘반도사관’(半島史觀)이 형성되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대륙)에 저항하지 않는 소중화(小中華)임을 자처했다.
그러면 조선성리학의 태두 이퇴계와 이율곡의 모화사상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 살펴보자.
퇴계 이황(1501-1570)이 예조판서로 재임할 때 일본 좌무위 장군 미나모도(원의청 源義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내용이 기술 되어 있다.“하늘에 두개의 해가 없고 인류에 두 임금이 없다. 춘추전국이 통일된 것은 천지의 법칙이고 고금에 변치 않는 대의인 것이다. 큰 명나라는 천하의 종주국이므로 해 돋는 동방에 처한 우리나라가 어찌 감히 신복(臣服)치 않겠는가? ”“단군에 대한 기록은 허황하여 믿을 수 없고 (중국인) 기자(箕子)가 와서 조선을 통치하게 되어 비로소 문자를 알게 되었다.”“고려 400년에...불교가 성행하여 무도한 오랑케의 나라가 되어버렸다.”“(최영이) 고려 말에 미친 계획으로 감히 하늘에 반역하여 북벌을 도모하였다. 명나라가 들의 못에서 용같이 날아와 위력으로 (최영의) 도모를 눌렀다. 스스로 신의 권유에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하니 동해애 처한 조선이 만만년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율곡이이(1536-1584)도 퇴계 못지않게 중국을 위해 용비어천가를 뽑아낸다. 그는 '기자실기‘(箕子實記)에서 단군의 허상을 말하며 기자조선에 대해 극찬한다.“단군이 조선의 임금이라고 하나 문헌상 근거가 없다. 삼가 생각하면 기자께서 조선에 오시어서 우리 오랑케를 천하게 보지 아니하시고 후히 기르시고 부지런히 가르치심으로 상투를 트는 습속을 바꾸어 중국의 제나라와 노라와 같은 나라를 만들었다...기자의 망극한 은혜를 입은 사실을 집집마다 외우고 사람마다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는 ‘공로책’(貢路策)의 율곡전서에서 조선이 중국의 속국임을 자인한다. “사대의 대의에 의하여 중국은 상국(上國)이고 조선은 하국(下國)으로서 군신(君臣)의 분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세의 이해를 떠나 중국에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송시열은 모화사상의 성리학을 이렇게 예찬하고 있다. “하늘이 공자를 이어 주자를 냈음은 진실로 만세의 도통(道統)을 위한 것이다. 주자가 난 이후로 현저해지지 않은 이치가 하나도 없고 밝아지지 않은 글은 하나도 없다.”
세종대왕(King Sejong the Great 1397-1450, 재위 1418-1450)은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했는데, 그냥 반포한 것이 아니다. 조선의 창업을 노래한 서사시인 ‘용비어천가’를 지어 실험했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도 소중화사상이 조선전체를 뒤집어 놓았다.
세종26년 2월 20일에 최만리 등의 학자들의 극렬한 상소가 올라왔다.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큰 나라를 모시는 예의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입니다. 상스럽고 무익한 글자의 창제를 중단해야합니다.”이에 세종은 진노했다. “설총이 이두를 제작한 본 뜻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함이 아니하겠는가?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그르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네가 운서(韻書)를 아는가? 사성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子母)가 몇 개냐 있는지 아는가? 내가 그 운서를 바로 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인가?”21세기의 언어로 말하면 미셀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의 지식권력을 지배층 소수만이 향유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한문께나 아는 양반지배계층들은 나라의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백성들을 수탈하고 업신여겼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언문’이라고 평가절하까지 했다. 지금도 이런 지식권력이 도처에서 불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병원의사들은 환자를 진료한 후에 처방제를 쓸 때 환자들이 모르는 의학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판검사들은 자신들만 아는 법률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기타 전문가들도 자신들의 분야 내에서 통용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확보하고 전문성이 있음을 보여주며 별거 아닌 것을 뻥 튀겨서 이권을 챙긴다.
두문동(杜門洞)72현(賢)도 조선의 소중화사상을 잘 보여준다. 두문은 ‘문을 닫다’또는‘문을 막다’라는 의미이다. 두문동은 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거나 외부와 단절하며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개국을 반대한 72명의 고려유생들이 빗장을 걸어 닫고 두문동에서 일생을 보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개성 북쪽 만수산 아래에 있는 동네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는 “공자의 제자는 3,000명에 달했는데, 육예(六藝;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에 통달한 자만해도 72명에 이르렀다”고 언급한다. 72제자는 중화의 대표적인 현인이 되었다. 72라는 숫자는 다수의 현인을 의미한다.
영조 16년 1740년에 노론계열은 성리학 명분론에 위배되는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아래 조선왕조를 거역한 반체제적인 인물들인 두문동72현을 숭배케 하여 조선 대중으로 하여금 조선왕조에 충성하도록 한다. 그만큼 체제유지가 급했던 것이다. 영조는 72현 후손을 관직에 등용시키고, 정조는 72현을 사당에 배향하고 향사(제사)를 지내게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여기는 것은 고려가 망할 때는 두문동72현이 망한 왕조에 절의(節義)를 지키며 새 왕조에의 출사(出仕)를 거부한 반면,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는 공교롭게도 70여명이 일본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것이다. 악명은 백대에 이르고 악취는 만대에 이른다는 속담이 연상된다.
모화사상은 과거지향적이며 비문명화의 시대, 곧 주나라왕정시대를 지향한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며 발전적이고 과학기술에 기초한 문명화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상은 오랑케사상이라고 터부시하지만, 사실 구미사상에서 보면, 모화사상은 미개인사상과 반문명화정신추구에 불과하다. 일본은 구미(歐美)의 선진과학기술과 문명을 통해서 모화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극단적인 도덕, 윤리주의에서 벗어나 인류보편적인 상식의 기반 위에서 실리주의로 방향을 돌려 부국강병을 꾀한다. 이것이 조선왕조와 일본의 차이점이다. 미래지향적인 일본은 과거지향적인 조선왕조를 과감하게 삼켜버린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다르다. 대한민국은 성리학사상 위에 구미의 사상을 종합하여 선진국이 되었다. 비록 삶속에서 성리학의 반문명적이며 미개한 요소가 잔존하지만, 한국형의 선진국의 모형은 21세기 현금 세계경제학자들도 해석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신흥개발도상국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모화사상의 선구자인 퇴계이황과 율곡이이, 율곡의 모친 신사임당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화폐에 버젓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애석한 일이다. 하루속히 화폐의 인물을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를 주구하며 대한민국을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으로 이끈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 21세기에도 호랑이 담배피우는 시절을 예찬하는 성리학 사상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극단적인 윤리사상은 인간을 옥죄며 노예의 삶으로 인도한다. 이젠 모화사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상식을 기초한 대의명분 아래 실리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대의명분이 없는 실리주의는 생물적인 욕망에만 만족하는 경제동물에 불과하며, 실리가 없는 대의명분은 인간의 기본요소를 무시하는 외화내허(外華內虛)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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