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랫동안 한국군대가 이스라엘군대시스템을 그대로 따라야 사교육제도가 사라지고 공교육의 부활로 선진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것은 필자의 군복무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대충 필자의 군복무시절 이야기를 늘어놓겠다.
필자의 경험으론 신병교육전반기는 국가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웠는데, 신병교육후반기와 그 이후의 군복무는 국가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그 당시 대한민국 사병이라면 생각했듯이,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단어가 수구꼴통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듯이, “군대복무는 청춘의 시기를 허무하게 보내며 군대는 썩는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하였다.
전반기 신병교육을 받으러 군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 사단장이 부정부패부조리의 늪에 푹 빠져, 신병들이 먹는 음식이 부실해, 영창에 들어갈 신세가 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군대 입대 후 처음 들은 소리가 사단장의 부정부패부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병교육을 담당한 조교와 교관들은 군인정신이 충만하고, 필자로 하여금 조국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각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참으로 훈련과 군기가 뻑쎄서 아주 좋았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 당시의 조교와 교관들을 모두 장군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이들은 군인정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 흘러 넘쳤다. 필자는 그런 모습만 바라만 보아도 조국을 수호해야 하겠다는 뜨거운 피가 용솟음 쳤다.
그런데 전반기 훈련을 마치자, 내무반장이 우리 보고, 너희들은 복 많은 놈들이라고 말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우린 내무반장의 말대로 타부대로 전출 가, 전반기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수월하게 후반기 교육을 마쳤다. 전반기의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뻑쎈훈련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느슨한 훈련이었고 조교나 교관들에게서 군인정신이나 조국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없음은 물론 빨리 제대해야 하겠다는 나약한 생각과 내가 사단장이라면 이런 조교와 교관들은 모두 퇴역시켜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신병훈련 끝난 후 자대배치가 되었는데, 필자는 신병교육대대 작전과로 배속되었다. 이때부터 군복무경험이 필자로 하여금 대한민국군대가 이스라엘군대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으면 희망이 없음을 절감케 했다. 그러면 그 당시 경험을 펼치겠다.
첫째, 신병훈련 전반기의 경험
장군들은 모두 부정부패부조리의 온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신병교육대대에서 복무
(1) 신병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 때문에, 훈련보다 제대할 때까지 인사 잘하기, 두발단정, 군화의 수정처럼 반들거리기, 군복 날카롭게 줄 세우기, 상황실 청소 등이었다. 세상 말로 이발소, 구두수선, 빨래방, 청소부 운영만 잘하면 군 생활이 편했다. 그래서 필자는 혹독한 군 훈련이야기만 나오면 전반기신병훈련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훈련을 받지 않아서 침묵을 지킨다.
(2) 훈련병의 교육이 끝나면 교육시험을 치렀는데, ‘짜웅’이 심했다. 20대의 청년층은 ‘짜웅’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세속적인 용어로 말하면 ‘뇌물’이다. 필자가 사병인데도 시험을 주관하기 때문에 훈련병의 중대장이나 조교가 건네는 고급양주와 담배가 수두룩 쌓였다. 필자는 술담배를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간직해 놓았다가 작전장교나 주임상사에게 드렸다. 그러면 그 분들은 필자를 어여쁘게 봐주었다. 필자는 사병임에도 불구하고 장교처럼 대우를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필자에겐 뇌물이 통하지 않는다. 봐주는 척하만 하고 원리원칙대로 해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상관들은 필자의 군복무 태도를 높이 샀다. 이 때 경험에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부조리는 대학생회장선거와 군대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신한다.
(3) 필자가 작전과로 배속된 처음 날 한 업무가 상황실에서 전화 받기다. 그 일이 병장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바로 고참이 시키는 대로 행했다. 고참은 항상 필자를 내무반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작전과에서 일하게 하거나 전화 받기를 시켜 날 새우게 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그것이 나를 배려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자는 ‘영호남의 갈등’을 군대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후엔 뉴미디어상에서 다시 한 번 ‘영호남의 갈등’을 확인했다.
그 당시 영남출신이 고참이 되면 호남출신은 죽었다고 하면 되고, 호남출신이 고참이 되면 영남출신은 괴로운 군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면 된다. 한밤중에 빠따를 대면 그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내무반에선 빠따대신에 영호남출신들의 구타가 시작된다. 그 구타는 장난이 아니다. 거의 죽일 정도로 개 패듯 때린다. 회식이 끝나면 그 다음의 행사가 항상 영호남의 구타작전이 개시된다. 겉은 말짱한데 속의 장기를 다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필자를 비롯해 극소수를 제외하곤 전부 영호남출신이었다. 고참이 필자는 영호남출신이 아니라고 상황실에 보낸 것이다.
필자가 상황실에서 나와 내무반에 살짝 가 엿보면 훈련병시절에서 배운 모든 것이 그대로 재현된다. 술 먹고 난 후인데도 완전군장꾸리기와 풀어헤쳐 관물정돈은 거의 신의 경지다. 그런데 1등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곡소리를 내야 했다. 다른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지금도 이해안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영남출신고참이 영남출신졸병이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면, 호남출신고참에게 부탁해, 그 영남쫄따구를 개패듯이 구타하도록 하고, 그와 반대로 호남출신고참은 호남쫄따구가 자신의 말을 거역하면 영남출신고참을 시켜 죽도록 때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정치인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었다.
군대의 폭력은 쪽발이 박정희를 비롯해 친일파장군들이 심어놓은 쪽발이의 노예문화다. 그 더러운 폭력의 문화를 영호남출신들이 군대에 완전히 정착시켜 고질병이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영호남출신들의 폭력문화를 보고, 영호남출신들은 고위직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영호남출신들은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기질상 체질상 서로 좋아하는 사이다. 그 예를 들어보겠다.
영남 대구출신인 박근혜할멈에겐 호남출신의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김장수, 김관진 국방부장관 등이 있고, 박지만에겐 호남 출신 서향희 변호사가 있다.
영남출신여자와 호남출신남자, 영남출신남자와 호남출신여자의 궁합은 최고다. ㅎ ㅎ ㅎ.
그래서 영호남출신의 대통령이 대략 50년간 나와서는 안된다. 다음엔 그 이유에 대해서 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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