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 바스락 낙엽소리 없이 바람이 한기를 몰고 오고 있는 것이 심심찮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추위를 타서는 안됩니다.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따듯하게 하여 추위를 이기듯이, 우리의 신앙도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1. 콘스탄티누스는 대제(그리스어 Κωνσταντῖνος ὁ Μέγας Konstantinos ho Megas; 라틴어 Constantinus Magnus; 영어 Constantine The Great, 재위 306-337, 274-337)에 대한 재평가
(1) 독자 여러분이 인터넷 검색에 ‘한국종교문화원’을 입력하면 2020. 2. 18에 필자가 강의한‘26.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통해서 본 기독교와 오컬트 천주교’YouTube를 참조하시면 이해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2) 카이사레이아(히브리어 קֵיסָרְיָהKesariya, 현재명 Kaisariyeh; 그리스어 ΚαισάρειαKaisáreia; 라틴어, 영어 Caesarea: Herod 대왕이 로마 제국 초대 황제에게 아름다운 도시와 항구를 지어 헌정하면서 ‘카이사리아’로 명명 하고, Palestine의 수도가 됨)의 에우세비오스(그리스어 Εὐσέβιος τῆς Καισαρείας, Eusébios tés Kaisareías; 라틴어, 영어 Eusebius; 별명 Eusebius Pamphili, 260?-340?: Eusebius는 독실한, 경건한devout, pious의미가 있음)의 콘스탄티누스대제의 평가
콘스탄티누스대제보다 14년 연장자이며 조언자인 에우세비오스는 카이사레이아 태생으로 313년-314년 동안 카이사레이아의 대주교를 역임하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그리스어 ἩρόδοτοςHēródotos; 라틴어 Herodotus, B. C 484-B. C 425)에 의해‘교회사의 아버지’라고 극찬 받았다. 그는 처음엔 아리우스(Arius ?-336?)의 종속설(Subordinationism: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되었고 창조된 존재들 가운데에 하나인 완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같지 않음=‘유사본질ὁμοiούσιοςhomoiúsios’=similar의 ὅμοιοςhómoios+substance의 οὐσίαousía=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은 성부하나님의 본질과 비슷함)을 지지하다가’니케아(그리스어 ΝίκαιαNíkaia: 현재 터키의 이즈니크Iznik에 해당)공의회(라틴어 Concilium Nicaenum; 영어 Council of Nicaea or Nicene Council, 325: 일시 325. 5. 20-7.25.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주교 실베스테르 1세Sylvester I의 동의를 얻어 개최. 주교 300명 정도 모였는데, 제국서방에서 온 주교는 10명도 채 안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동방에 교구를 둔 주교들임)에 참석하여 아리우스설을 반박하며, 삼위일체정통교리(동일본질ὁμοούσιοςhomoousios=same의 ὁμόςhomós+substance의 οὐσίαousía=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은 성부하나님의 본질과 같음)의 가장 적극적인 수호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295?-373?)파로 전향한다.
그는 자신의 정치신학의 저서 ‘교회사’(라틴어 Ekklesiastike Historia; 영역 Ecclesiastical History, The History of the Church From Christ to Constantine, Church History 10권: 그리스도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 곧 323년까지의 교회의 중요 인물, 사건 등에 관한 보고를 수집한 귀중한 문헌)를 비롯해‘연대기’(그리스어 Παντοδαπὴ ἱστορία Pantodape historia; 라틴어 Chronicorum libri or Chronicon; 영역 Chronicle or Annals: 2권으로 되었으며 창조 때부터 325년까지의 역사서로 후에 히에로니무스; 그리스어 Ἱερώνυμος; 라틴어 Hieronymus; 영어 Jerome, 347-420가 개정 보완했음),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라틴어 De Vita constantini; 영역 Life of Constantine) 등의 저서를 통해 콘스탄티누스를 기독교를 옹호한 대제로 기술한다.
(3) 아리우스파 추종자
콘스탄티누스는 자신보다 19년 아래의 스무 살 난 이복누이 콘스탄티아(Flavia Julia Constantia, 293-330)를 20세 때인 313년 동방의 지배자인 50세 리키니우스(Licinius, 재위 308-324, 263-325)와 결혼시켜, 동년 리키니우스의 협조아래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o or Milan)을 발표하여 기독교도 로마종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로 인정하는데, 이것은 공식적으로 기독교의 자유를 선포한 최초의 선언이어서, 관용의 칙령(The Edict of Toler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리키니우스를 반란음모죄로 사형시키고, 326년 그 아들 발레리우스(Valerius Licinianus Licinius, 315-326)도 살해(태형: 태장으로 볼기를 치던 형벌)하고,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라틴어 Diocletianus; 영어 Diocletian, 재위 284-305, 244-311)가 실시 한 사두정치(The Tetrarchy or rule of four)체제(the Tetrarchic system: 공동 황제two senior emperors, the augusti-majestic or venerable의 Augustus의 pl와 공동 황제 아래에 각각 한 명의 부제副帝their juniors and designated successors, the caesares; 그리스어 ΚαῖσαρKaîsar; 독어 Kaiser; 러시아어tsar; emperor or ruler)를 종말 시키고, 동서방 전체 황제, 곧 로마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단독 황제가 된다.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파 이복누이 콘스탄티아를 누이 남편의 죽음 후인 326년 ‘가장 고귀한 부인’(라틴어 nobilissima femina; 영어 most noble lady)라는 호칭을 내리며 자신의 궁에 지내게 한다. 콘스탄티아는 오빠 콘스탄티누스에게 영향을 미치며, 황궁에는 아리우스파가 득세하게 한다. 아리우스파의 선봉장인 니코메디아(그리스어ΝικομήδειαNikomedeia; 라틴어 Nīcomēdīa; 오늘날 터키북서부 이즈미트İzmit: 현재의 터키의 북부‘비티니아; 그리스어Βιθυνία; 라틴어 Bithynia’의 제2대 왕 니코메데스 1세Nικoμήδης, B. C. 278-B. C.255, B. C. 300-B. C.255의해 재건되었으며, 286년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84-305, 244-311이 사두정치체제, 293-324를 처음 창안 할 때부터 이 곳을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았고, 324년 리키니우스가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패 할 때까지 로마 제국 동부의 수도였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티움을 자신의 도시로 개조하고 수도로 정할 때까지도 니코메디아는 계속 수도역할을 했고 337년 콘스탄티누스도 이 도시에서 죽음)의 주교 에우세비오스(그리스어 Εὐσέβιος; 라틴어, 영어 Eusebius bishop of Nicomedia, -341)는 죽음을 앞둔 콘스탄티누스대제에게 337년 5월 22일 세례를 베풀고(로마 주교 ‘실베스테르 1세; 라틴어, 영어 Silvester I; 이탈리아어 Silvestro I, 재위 314-335, 285-335는 콘스탄티누스대제보다 11살 아래이고, 대제보다 먼저, 2년 앞서 죽었기 때문에 실베스테르 1세가 콘스탄티누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는 것은 조작된 것임), 자신이 보관한 대제의 유언장을, 대제가 가장 사랑했고, 아리우스주의를 옹호했던, 차남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 II, 재위 337-361, 317-361)로마황제에게 넘기고, 그 직후에 고해사제 성 바울(Saint Paul the Confessor, ?-350)을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직에서 해임시킨 후, 그 교구로 이적해 대주교가 된다(Archbishop of Constantinople, 339-341: 니케아공희의의 결정에 따르면 사제는 다른 도시의 교회로 이적할 수 없다. 에우세비오스의 사망 후 고해사제 성 바울이 콘스탄티노플 주교로 복직한다. 4세기에는 니코메디아의 주교 에우세비오스가 카파도키아(Cappadocia: 현재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 출신의 주교, 성경 번역가 울필라스(Ulfilas, 310?-383)를 아리우스파로 개종시켜 고트족의 선교사로 파견하여 프랑크족을 제외한 게르만족은 이단이 된다.
콘스탄티누스보다 21세 아래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bishop) 아타나시우스(그리스어 ΑθανάσιοςAthanasios; Athanasius of Alexandria/the god of death의 ΘάνατοςThanatos-로마의 Mors, 재위 328-373, 296-373)는 재위기간 중 5번이나 유배당했으며, 이름(부정어 a+ 죽음 thanatos=불가사의)대로 살아남는다. 아리우스파 니코메디아 에우세비오스 주교의 간언에 의해 콘스탄티누스가 최초로 아타나시우스를 독일의 트리어(Trier)로 귀양 보낸다.
(4) 황제교황주의(caesaropapism)
황제교황주의란 콘스탄티누스가 동방과 서방의 통합된 교회 위에 군림하고, 자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인 12사도와 동격이며, 신의 대리자로서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콘스탄누스는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은 ‘사도들과 동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 이사포스톨로스(그리스어 ἰσαπόστολοςisapóstolos; 라틴어 aequalis apostolis; 영어 An equal-to-the-apostles)를 사용했다.
콘스탄티누스는‘하나의 제국(One Empire), 하나의 법(One Law), 하나의 시민(One Citizen), 하나의 종교(One Religion)’을 자신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아리우스파임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아타나시우스파로 행세하였다.
동시에 박해받던 교회가 박해하는 교회로, 천대받던 교회가 특권을 누리는 교회로 변질되며, 이것을 ‘콘스탄티누스적 전환’(독어 die Konstantinische Wende; 영어 Constantinian shift: 메노나이트 신학자 존 H. 요더the Mennonite theologian John Howard Yoder, 1927-1997이 대중화했음)이라고 한다.
2. 청교도에 의한 미국건설에 대한 부정
미국은 1607년 메어럴런드(Maryland)주와 버지니아(Virginia) 주 사이의 체서피크만(Chesapeake Bay/만bay灣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형태의 지형으로 bay보단 큰 것이 gulf/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끝 부분을 곶cape串, headland이라고 하는데, 그 실례가 희망봉The Cape of Good Hope임)의 제임스타운(James Town: 제임스 1세James I, 영국 왕 재위 1603-1625, 1566-1625; James VI, 스코틀랜드 왕 재위 1567-1625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는데, 1616년부터 1699년까지 83년간 식민지의 수도 역할)에 닺을 내렸던 첫 정착민들(105명)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1620년 원래는 포도주를 운반하던 상선(商船), 목선 메이플라워(Mayflower: 무게 180t, 길이 27.5m, 돛 3개를 가진 배)로, 당시 승객 102명과 25에서 30명의 승무원은 매사추세츠 주(The Commonwealth of Massachusetts)의 플리머스(Plymouth: 메이플라워호가 최후의 기항<배가 항해 도중에 목적지가 아닌 항구에 들름>지로 하여 미국으로 향했던 잉글랜드 남서부의 군항이름을 따서 칭했고, 그들이 처음으로 발을 밟았다는 플리머스 바위가 있음)에 마을을 건설하여, 구대륙의 종교탄압과 신분차별을 없애고 자유화 번영의 신세계를 연 미국사의 출발점이라고 공식적으로 해석한다.
1820년에 행해진 20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 국무장관인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 1782-1852)가 당시 102명의 청교도를 최초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라 불렀고, 그 후에 공식적으로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며, 필그림 파더스는 1620년 북아메리카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된 매사추세츠주(州)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편, 미국 건국의 아버지(영어 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는 미국 독립 전쟁과 관련된 미국의 역사 초기의 5명의 대통령들을 포함해, 미국 독립 선언에 참여한 정치인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성공회신자, 무소속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재위 1789.4.30.-1797.3.3., 1732-1799), 유니테리언 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제1대 부통령 1789-1797, 2대 대통령 1797-1801), 이신론자, 미국 독립 선언서의 기초자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재위 1801-1809, 1743-1826), 성공회신자, ‘미국 헌법의 아버지’제임스 매디슨 주니어(James Madison Jr.,, 재위 1809-1817, 1751-1836:), 성공회신자,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1817-25, 1758-1831: 1823년 12월 먼로주의Monroe Doctrine-미국에 대한 유럽의 간섭이나 재식민지화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미국도 유럽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외교상의 불간섭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오컬트 바티칸이 자신들의 기독교박해를 감출뿐만 아니라 청교도중심의 미국건국을 부정하고, 천주교역사로 만들기 위해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독립선언문 서명자 56명 중 53명이 이 프리메이슨 회원이라고 페이크 뉴스를 조작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부흥을 주도한 대한민국식의 재벌들 모두를 프리메이슨으로 매도한다.
3. 위그노정신에 입각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부정
독자 여러분이 인터넷에 들어가 한국종교문화원이라고 검색한 후에 제129강의-132강의를 참조하면 필자의 견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1789-1799의 프랑스혁명(프랑스어 Révolution française; 영어 French Revolution)은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이 발발로, 이 두 혁명과 비교하여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부른다.
프랑스대혁명은 21세기 용어로 말하면 과학기술자 및 무역업자들로 구성된 위그노(대한민국과 스코틀랜드식의 장로교인; 잉글랜드식의 청교도;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개혁가)의 사상에서 기원한 것이다.
위그노전쟁(French Wars of Religion; Huguenots Wars 1562-1598)이 진행되자, 수십만의 위그노들이 서유럽으로 망명하여, 오컬트 천주교의 유럽이 기독교국가로 탈바꿈하며, 경제 강대국이 되는 반면, 프랑스의 국격을 하락하기 시작한다. 위그노였던 앙리4세(프랑스어 Henri IV; 영어 Henry IV, 나바라왕 재위 1572-1589, 프랑스왕 재위 1589-1610, 1553-1610)는 프랑스의 평화와 경제를 위해 천주교신도로 개종하며, 1598년 4월 13일 낭트에서 오컬트 천주교 이외에도 칼뱅주의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는 ‘낭트칙령’(프랑스어 Edit de Nante; 영어 Edict of Nantes)을 발표하여, 위그노인재의 망명을 중단시켜, 프랑스를 부국으로 이끄나, 루이14세(Louis XIV, 재위 1643-1715, 1638-1715)가 1685년 10월‘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의 반포로 낭트칙령을 폐지시키자, 또 다시 위그노망명으로 프랑스국력이 하락되고, 결국 87년 후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1) 앙시앵 레짐(구체제; Ancien Régime; 영어 Old or Former Regime): 삼부회(전국三部會; 프랑스어 États Généraux; 영어 Estates General)의 종말
5%미만의 제1신분(the 1st Estate)은 오컬트 바티칸의 성직자(the clergy), 제2신분(the 2nd Estate)은 귀족(the nobility: 공작duke, 후작marquis, 백작earl-영국 이외의 대륙에서는count, 자작viscount, 남작baron)은 면세특권을 향유하면서 관직을 독점하고 토지까지 사유화한다.
제3신분(the 3rd Estate)은 이론적으로는 평민(the commons)이나 실제로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유산계급-안전하고 윤택한 성 bourg안 에 거주하던 프랑스 시민)를 가리켰으나 마르크스주의 이후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자본가 계급과 이를 소유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prolétariat무산계급)로 구분하지만, 당시 프랑스혁명에서 제3신분은 의사, 변호사, 부유한 상인과 같은 시민 계급만 해당되고, 농민, 노동자는 이에 속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3신분은 봉건적 의무와 과중한 세금만 부담하고, 참정권이 없어서 자기들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21세기의 자유민주공화정의 기원인 위그노사상으로 앙시앵 레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2) 자유(프랑스어 Liberté; 영어liberty), 평등(프랑스어 égalité; equality), 박애(프랑스 fraternité; 영어 fraternity)
위그노의 사상인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와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 공화국의 국가 모토(the national motto of France and the Republic of Haiti)가 되고, 이 사상은 1794년 2월 15일 프랑스의 국기, 삼색기(프랑스어 La Tricolore; 영어 the French Tricolor)로 채택된다. 자유(파랑), 평등(하양), 박애(빨강)는 뒤이어 유럽 각국의 국기로 자리 잡는다.
오컬트 바티칸의 주장대로 프랑스혁명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일으켰다면, 유럽 국가들이 프랑스의 삼색기의 사상을 받아들였을까?
오컬트 바티칸은 프랑스대혁명으로 앙시앵 레짐이 무너지고, 자신들이 그동안 지탱해왔던 ‘교주-추기경-대주교-주교-사제-수녀-평신도’의 전체주의 및 독재주의체제의 근거가 부재한 동시에 기독교장로교의 자유민주공화정이 세상의 정치형태로 자리 잡자, 기독교의 부흥이 두려워 프랑스혁명의 기원인 위그노사상을 지우기 위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허황된 단어를 날조해 왔다.
4. 종합
“8.For ye were sometimes darkness, but now are ye light in the Lord: walk as children of light: 9.(For the fruit of the Spirit is in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and truth)”(KJV. Ephesians 5:8-9)
“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개역한글. 에베소서 5:8-9)
21세기는 빛의 자녀인 기독교와 어둠의 자식인 오컬트 바티칸과의 전쟁터이다. 기독교가 선과 정의와 진리를 지향하여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려는 반면에, 오컬트 바티칸은 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악과 불의와 거짓으로 카오스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기독교국가인 대한민국,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북유럽 등은 부유한 동시에 건강하며 건전한 복지국가를 이 땅에 재현하며 하나님나라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면, 프랑스를 제외한 오컬트 천주교나라인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필리핀, 남미 등은 가난할 뿐만 아니라 지옥의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오컬트 천주교국가는 자신들이 지옥의 자식들이라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성삼위 하나님의 자녀인 기독교 국가를 부정하기 위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단어를 창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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