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이스마엘 사상의 대변자 오컬트 바티칸’ YouTube!!!

아우구스티누스 2021. 3. 24. 11:17

찬란한 3월의 끝자락입니다. 주위를 걷다보면 들풀과 꽃들이 봄을 선사하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은총의 몸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미소의 봄으로 코로나 19를 비롯한 온갖 시련을 이겨서, 건강하며 행복한 인생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21315일 오컬트 바티칸의 신앙교리성(라틴어 Congregatio pro Doctrina Fidei; 영어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이단 심문소, 곧 검사성성檢邪聖省; 라틴어 Sanctum Officium; 영어 Holy Office의 후신後身)가톨릭 사제가 동성결합(결혼)에 축복을 내릴 수 있는지를 묻는 교구의 질의안된다는 답변서를 발표했다.

 

교황청은 답변서에서 동성 간 결합에 대한 축복은 (교회법상)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면서 하나님은 죄인은 축복할 수 있지만 죄에 대해서는 축복하지도 축복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프란체스코 교주는 동성애자도 가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언급했다. 게이 커플에게 동성 결합(civil union)을 통해 법적 보호가 제공되는 것을 인정했다.

 

프란체스코 교주의 발언은 교회 내 차원이 아닌 교회 밖의 세속 문제의 차원이라고 하며, 발언을 뒤집으면서 교묘히 빠져나간다.

 

이 선언의 내용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보면 노련한 정치꾼(정상배)(politician),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영적 브로커(야바위꾼), 앵벌이 대장의 모임을 증언한다.

 

성령하나님이 주신 인격이 아닌, 사회적 인격, 곧 세련되었지만, 다중적인 인격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인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것을 근거로 오늘의 주제 이스마엘 사상의 대변인 오컬트 바티칸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1. 이삭신앙과 이스마엘 사상

 

역사적 예수’(독어 der historische Jesus; 영어 the historical Jesus, Jesus of history)케리그마의 그리스도’(독어 der kerygmatische Christus; 영어 Kerygmatic Christ or Christ of faith)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역사적 예수의 탐구(독어 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영어 History of Life-of-Jesus Research or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살펴보자.

 

(1) 1탐구(고전적 탐구Old Quest 또는 최초의 탐구The First Quest)

 

신학박사이자 철학박사, 의학박사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는 자신의 저서역사적 예수 탐구’(독어 Von Reimarus zu Wrede-eine Geschichte der Leben Jesus Forschung, 1906; 영역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A Critical Study of its Progress[prάgres] from Reimarus to Wrede)에서 헤르만 S. 라이마루스 (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를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서막, 곧 제1탐구(고전적 탐구Old Quest 또는 최초의 탐구The First Quest)시대를 연 사람으로 보며, 본서의 저자들은 역사적 예수의 참모습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각 저자의 시대상, 이를테면 지난 20세기 차원의 용어로 설명하면, 해방신학, 민중신학, 정치신학, 여성신학 등의 예수의 모습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폭로하고, 역사적 예수는 묵시록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망상가라고 결론을 내린 후, 의료선교를 위해 아프리카 가봉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슈바이처보다 뛰어난 장로교 성도 두 분 유일한(柳一韓, 1895-1971) 박사와 장기려(張起呂, 1911-1995) 박사가 있다.

 

이 두 분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고백하며, 성경말씀을 준행한 독실한 기독교(천주교가 아님)성도다. 이 두 분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조국인 대한민국을 위해 유 박사님은 자신이 설립한 유한양행을 대한민국에 바쳤고, 대한민국의 외과 의사로서 부산복음병원 원장 등을 역임한 장 박사님은 모든 것을 이웃과 사회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며 바친 진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

 

이런 사실에서 볼 때 슈바이처 박사의 역사적 예수의 탐구는 무()에 불과하다.

 

(2) 2탐구(후기불트만의 새로운 탐구New Quest)

 

실존주의 신학자 및 신정통주의 신학의 주창자인 독일의 신약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독일의 구약학자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양식비평’(독어 Formgeschichte; 영역 The History of Form; 오역 Form Criticism: 성경말씀의 문학양식을 분석하여 그 구절이 어떤 삶의 정황Sitz im Leben; setting in the life of the people에서 유래했는가를 규명한 성경해석)을 차용하여, 복음서는 초대교회에서 자신들의 삶의 정황 가운데서 예수의 상을 그리스도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는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불트만의 불가지론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재위 1934-1945, 1889-1945)의 집권을 환영하면서, 독일 모든 기독교(천주교가 아님)1933년을 하나님의 선물과 기적의 전환점으로 맞이해야 한다(He welcomed the emergence to power of Adolf Hitler-‘Our Protestant churches have greeted the turning point of 1933 as a gift and miracle of God’)고 주장한 독일 신루터주의자(Neo-Lutheranism)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 1888-1966)로부터 비평을 받는다. 알트하우스는 자신의 저서소위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Das Sogenannte Kerygma Und Der Historische Jesus, 1958)에서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분리시킨 것이 불트만의 문제점이며, 역사의 옷을 벗기고 거기에 실존주의라는 옷을 입혔기 때문에, 신영지주의(Neo-Gnosticism)자라고 비판한다.

 

불트만의 제자들도 스승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케리그마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와의 연속성을 밝혔지만 초자연적 기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의 복권을 이루지 못했다.

 

(3) 3차 역사적 예수 탐구(the third quest for historical Jesus)

 

1985년부터 북미권을 중심으로예수세미나’(Jesus Seminar)3차 역사적 예수 탐구’(the third quest for historical Jesus)가 시작되었다.

 

1, 2차 탐구가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이 주로 주도했다면, 3차 탐구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자들이 관심을 참여하고 있다.

 

예수세미나도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와의 연속성을 발견하기 보다는 불연속성에 중점을 두어, 기독교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말았다.

 

(4) 4차 혁명적 탐구

 

불교에선 석가모니(샤카무니 Shakyamuni=무사계급의 크샤트리아의 샤카족 Shakya+성자 Muni=샤카족의 성자) 고타마() 싯다르타(이름;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팔리어 Gotama Siddhatta; 산스크리트어 Gautama Siddhartha, B. C. 563/480-B. C. 483/400)붓다’(산스크리트어Buddha=한글 부처=한문 불타佛陀=불타의 줄임말이 =깨달음을 얻은 자=one who rally knows. The Buddha Shakyamuni/=사람 +아니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아닌 존재/일반명사인 안다budh’의 과거분사형), 여래(如來; 산스크리트어Tathagata=이렇게 온 이=이렇게 간 이=진리로 간 분=진리에서 온 분. 붓다가 자신을 부를 때 주로 사용한 칭호/‘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 진여眞如를 의미)로 추앙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불자(佛子)들이 거의 없는데 반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범기독교계에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데 매우 인색한 사람들이 수다해서 한국종교문화원은 4차 역사적 예수 탐구를 통해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의 논란을 불식시키겠다.

 

4차 탐구의 주제는 이삭신앙과 이스마엘사상이다.

 

마르틴 루터의 성경해석의 원리인 성경이 성경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라틴어 sacra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영어 Scripture is its own interpreter)의 원칙에 근거하여, 구약의 아브라함, 사라, 이삭 그리고 하갈, 이스마엘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한 바울의 견해를 잘 반영한 갈라디아서 4:22-31을 기초하여 설명하겠다.

 

아브라함(히브리어 אברהם Avrahám; 그리스어 βραάμAbraam; 영어 Abraham: 이슬람교의 경전經典쿠란Quran’또는코란Koran’에선 이브라힘İbrahim’으로 기술)은 언약의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째 되는 해인 86세 때 아내 사라(히브리어 שָׂרָהSara; 영어 Sarah)의 권유로 하녀인 이집트 출신 하갈(히브리어 הָגָר; 영어 Hagar)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이스마엘(יִשְׁמָעֵאל ; 그리스어ΙσμαήλIsmaēl; 라틴어 Ismael; 영어Ishmael; ‘쿠란Quran’또는코란Koran’에선 이스마일Ismail’로 기술)이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뒤 하갈은 콧대가 높아져 주인 사라를 오만하게 대하고, 14세 이스마엘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 때, 사라가 90세 때에 낳은 이삭(히브리어 יִצְחָק ; 그리스어 σαάκIsaak; 영어 Isaac)을 조롱하자 사라는 그 사실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고하면서 시비를 가려줄 것을 청한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뜻대로 하라고 하자, 사라는 하갈을 박대하고 하갈은 이를 피해 황야로 도망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가 그들이 죽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들이 사막을 건너 정착하게 된 곳이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며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상고해보자.

 

1) 사라와 하갈과의 관계

 

두 언약: 새 언약(복음)의 사라와 옛 언약(율법)의 하갈

 

두 산: 갈보리산(십자가)의 사라와 시내산의 하갈

 

두 성읍: 하늘의 예루살렘의 사라와 지상의 예루살렘(공간종교)의 하갈

 

결 과: 자유인(평안과 확신)의 사라와 노예(두려움)의 하갈

 

2) 이삭과 이스마엘과의 관계

 

신분: 자유인의 아들의 이삭과 종의 아들의 이스마엘

 

방법: 약속(성령)을 따라 난 아들의 이삭과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의 이스마엘

 

갈등: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의 이스마엘이 약속(성령)을 따라 난 아들의 이삭을 핍박함

 

결과: 유업을 받는 이삭과 유업을 받지 못하고 추방당하는 이스마엘

 

3) 사라와 이삭은 이스라엘혈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기독교공동체를 상징한다.

 

첫째. 출애굽기 12:37-38“37.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개역한글)에서 중다(衆多)한 잡족이 킹 제임스성경에 ‘a mixed multitude’로 기술되어, ‘혼합 민족을 의미한다. 이것은 혈통주의로서의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신앙공동체로서의 새로운 이스라엘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예수님의 계보에도 세 명의 이방 여인(아람출신의 다말, 아모리 족속 기생 라합, 모압 여인 룻)과 이방남편(헷족속 우리아)을 맞이한 밧세바가 포함되어 있음은 참된 이스라엘은 기독교성도를 의미한다.

 

2. 이스마엘사상의 근거

 

위에서 언급한 동성애에 대한 프란체스코와 바티칸의 견해를 기초하여 언급하겠다.

 

(1) 회개를 촉구하지 않음

 

1) 오컬트 바티칸 교주는 바티칸을 비롯해 수도단체,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 LGBT는 인간생태계를 파괴하는 송충이의 부류이기 때문에 이들의 회개를 권고해야 하는데,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졌다.

 

2) 아일랜드계 천주교인 조지프 P. 케네디(Joseph Patrick ‘Joe’ Kennedy, Sr.,1888-1969)는 아일랜드 가난한 이민출신인데, 미국으로 건너와 금융(은행장과 증권거래 위원장), 부동산, 영화산업, 주류업(금주법 시대의 영국의 술을 밀반입), 유리회사 주가 조작, 경마장 사업 등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재산을 모아 민주당 출신 제 314선 대통령(1933-1945; 1932, 1936, 1940, 1944)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그의 행정부에서 1934년 신설된 증권 거래 위원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종국에는 1938-1940 동안 미국의 주영 대사로 재직하면서,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아일랜드민족의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는 45녀들 두었는데, 장남은 전사하고 두 아들은 암살당하고, 막내아들은 살인죄에서 법적으로 자유롭지만, 양심법으로 마음고생을 하며 살았고, 장녀는 87년 동안 수용시설에서 지내다 삶을 마쳤고, 차녀는 프랑스에서 비행기 사고로 28세에 사망했다.

 

F. 케네디 대통령 부친은 불행을 겪은 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가문에서 만들어낸 술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과 그의 가정을 망친 저주의 결과를 받는구나.”

 

F. 케네디 대통령의 외아들 존 F 케네디 2(John Fitzgerald Kennedy Jr., 1960-1999)1999716일 밤 부인 캐럴린 베셋(빈 클라인에서 일했던 90년대 패션 아이콘)과 처형 로렌 베셋과 함께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로 구입한 자가용 경비행기(6인승 단발 비행기.‘파이퍼 32 새러토가경비행기의 등록번호 N529JK는 아버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생일인 529일을 기념한 숫자)를 직접 몰고 뉴욕을 이륙해 매사추세츠주 부근 대서양 상공을 비행하던 중 기체에 대한 통제를 잃고 추락해, 실종 닷새 만에 물속에 잠긴 비행기와 함께 발견되어, F 케네디는 대가 끊기는 비극을 맞는다.

 

그러자 요한 바오로 2(라틴어 Ioannes Paulus PP. II;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Paolo II, 재위 1978-2005, 1920-2005) 이렇게 언급한다.

 

이것이 케네디 가의 마지막 비극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교주는 강복대신 케네디 가의 비극의 원인이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성중독 등의 비 그리스도인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거듭나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교주의 강복은 그 의미를 잃었다.

 

그 이유는 요한바오로 2세의 강복 이후에 다음과 같은 케네디가의 비극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남동생 로버트 F. 케네디(Robert Francis Kennedy, 1925-1968: 케네디 동생, 3남으로 제64대 미국 법무장관, 미국 상원의원<뉴욕 주 선출, 1965-1968>,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됨)11명의 자녀들 두었는데, 그 가계의 비극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rancis Kennedy Jr., 1954-: 11자녀 가운데 셋째이자 차남)3번 결혼하였다. 그는 1982년에 결혼한 첫째 부인 에밀리 블랙(Emily Ruth Black 1957-?)과 두 자녀를 두었는데, 1994년 이혼하고, 곧 바로 동년인 1994년에 재혼한 둘째 아내 메리 리처드선(Mary Kathleen Richardson, 19592012)4자녀를 두었는데, 2010512일 이혼을 제소하고, 2012516일 리처드선은 자살한다. 그리고 그는 201482일 여배우이자 제작자인 체럴 하인즈(Cheryl Hines, 1965)와 결혼한다.

 

201981일 로버트 F. 케네디의 외손녀 시어서 케네디 힐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22세에 사망한다.

 

202043일 로버트 F. 케네디의 손녀 매브 케네디 타운젠트 매킨(40)과 손자 기디언 조지프 케네디 매킨(8)이 미국 동부 체서피크 만()에서 카누를 타다 실종된다.

 

(2) 회개가 아니라 고해성사를 우선시

 

오컬트 바티칸은 고해성사의 기원을 성경 야고보서 5:15-16에 두고 있는데, 16절에 비춰보면, 천주교사제와 교도들은 서로 죄를 고백하지 않고 일방적이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다. 오히려 고해성사는 오컬트 바티칸이 스스로가 만든 자연종교의 교회법에 근거하기 때문에, 거기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

 

그것은 천주교신자의 개인상담, 고급정보교환(정치 고위직의 천주교신자의 고백은 고급정보에 속함), 중죄용서(오컬트 바티칸의 이익을 위해 살인이나 청부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중죄용서를 받기 때문에, 살인에 대해 무감각)의 수단으로 전락해, 세계에 카오스를 선물한다.

 

이에 반해 정통복음주의 기독교는 회개를 촉구함으로, 회개와 죄용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함께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2.‘이중진리이론’(Double-truth theory or The doctrine of double truth)

 

어떤 명제가 이성(철학)의 관점에서 틀렸지만, 신앙(신학)의 견해에서 볼 때 진리이거나 그 반대라는 사상이다. 두 명제가 서로 반대하거나 모순된 것이 동시에 진리일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사회를 카오스세계로 몰아간다.

 

(1) 알마문(아랍어 Al-Ma'mun, 재위 813-833, 786-833), 알파라비(아랍어 Al-Farabi; 라틴어 Alfarabius, 872-951), 이븐시나(아랍어 Abu Ali al-Hussain ibn Sina; 그리스어 Αβικέννας; 라틴어 Avicenna, 980-1037), 이븐 루쉬드(아랍어 Ibn Rushd; 라틴어 Averroes, 1126-1198) 대 석학의 사상(아리스토텔레스사상)에 기초한 토미즘과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Latin Averroists: 무어인 아베로에스와 달리,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라는 명칭이 사용됨)의 사상 때문에, 오컬트 바티칸에이중진리이론이 자리를 잡았다.

 

(2) 이슬람의 경전 코란

 

창세기 22장은 하나님의 시험에 희생으로 삼는 대상이 이삭이라고 언급한 반면, 코란은 성경과는 달리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일이 아브라함의 총애를 받은 아들이며, 제물로 바쳐질 뻔 한 아들이라고 말한다.

 

코란은 성전도 예루살렘성전이 아니라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이 참된 성전이라고 증언한다.

 

아브라함은 알라로부터 아들 이스마엘의 집에 신전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자, 아브라함은 아들 이스마엘과 더불어 그곳에 신전을 짓는다. 신전이 올라가면서 아브라함은 높은 담을 쌓기 위해 이스마엘에게 큰 돌을 하나 가져오라고 한다. 이스마엘은 주변에서 검은 돌(Black Stone)을 찾아 가져온다. 아브라함은 그 돌을 딛고 신전을 완성한다. 이 신전이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이다. 카바 신전 동쪽 구석이 아브라함이 발을 디뎠던 검은 돌이 놓여 있다.

 

(3) 정통 기독교 복음주의에서 진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반하여, 오컬트 천주교는 모든 종교의 교주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중진리 곧 모든 철학(과학)사상과 신학사상을 구원의 진리로 수용함으로, 사실상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가 있음을 부정하고 있다.

 

3. 종합

 

오컬트 바티칸하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한다는 속담과 기름장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오컬트 바티칸은 자신들의 사색을 통해 형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흠숭지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 아니라, 오컬트 바티칸의 마리아의 상경지례, 성인의 공경지례라고 구분하지만, 만인구원론을 지향하면서, 그것과 차별하기 위해 마리아의 신격화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교주 비오 9(라틴어 Beatus Pius PP. IX; 이탈리아어 Beato Papa Pio IX; 영어 Papst Pius IX, 재위 1846-1878, 1792-1878)1854128일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라틴어 Ineffabilis Deus; 영어 Ineffable God)을 통해 무염시태’(無染始胎; 라틴어 Immaculata conceptio; 영어 immaculate conception)를 믿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둘째, 교주 비오 9세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라틴어 Concilium Vaticanum Primum; 영어 The First Vatican Council of 1869-1870) 기간 중인 1870년 교주의 무오성(라틴어 infallibilitas; 영어Papal infallibility)을 선언하였다.

 

셋째, 교주 비오 12(라틴어 P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Pio XII; 영어 Pope Pius XII, 재위 1939-1958, 1876-1958)1950111엑스 까테드라’(ex cathedra)를 통해 몽소승천’(聖母蒙召昇天; 라틴어 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in coelum, Assumptio Mariae; 영어 Assumption of the Virgin, Assumption of Mary)을 선언했다.

 

요한복음 8:44는 이러한 오컬트 바티칸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