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파울 틸리히 ‘신학의 방법’의 언어를 차용한 선교 YouTube!!!

아우구스티누스 2021. 3. 11. 15:08

지성인을 위한 사도라 불리는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1886-1965)변증신학’(apologetic theology)은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서 철학적 질문한 내용에 대해 신학적으로 답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연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파울 틸리히의 신학용어를 차용하여 선교를 전개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1. 이유

 

(1) 계시신학에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위치

 

1) 정통복음주의 기독교성도는 계시신학의 기초인 성경을 중시하고, 자연신학의 기초인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매우 무관심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최첨단과학세계를 ‘666’으로 규정하거나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등의 존재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퍼뜨림으로써, 세상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사람들을 정신병자나 정신박약아라고 손가락질하고 하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의 위상은 처참하게 전락하고 있다.

 

2) 누가복음 16:1-13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의 자연인들이 기독교인들보다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선언하신다.

 

이 내용을 21세기 관점에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큰 회사를 소유한 이사장이 유능하며 인생경륜을 갖춘 사람을 CEO로 모셨는데, 그 분이 이사장의 기대와는 반대로 회사의 돈을 횡령하는 등 부패짓거리를 일삼는 사실을 알고, 그를 회사에서 아웃시키려고 작정한다. CEO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회사에서 쫓겨나면 늙어서 노동을 할 수 없고, 타인의 집에서 빌어먹자니 창피한 생각이 들자, 묘안을 짜낸다. 그는 자기가 근무한 회사에서 돈을 차용한 사람들의 빚을 깎아주거나 탕감해주면서, 자신이 회사에서 퇴출 뒤, 자신을 맞아줄 사람들을 준비한다.

 

이처럼 자연인들도 슬기롭게 재물을 사용할 줄 아는데, 기독교인들이 사후에 자신들을 영접해줄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귀중히 여기면, 사후에 자신을 맞이해줄 곳이 과연 어디인가를 인식해야 한다.

 

누가복음 16:13은 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개역한글. 누가복음 16:13)

 

“13.No servant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KJV. Luke 16:13)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자연인들의 삶의 지혜가 기독교인보다 훨씬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도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통해 세상을 알고, 그것을 기초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보다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고, 세상에서도 리더자가 되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이 세상을 하나님나라로 바꿀 수 있다.

 

3) 산업패러다임의 전환

 

대한민국의 재벌들은 그 동안 자본을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제품을 대량생산하여 수익을 창출하며, 사회보단 자신이나 회사의 몫으로 챙기는데 반해, 21세기에선 디지털기반의 네트워크 경제로 부를 창출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가 사회에서 획득한 것을 알고, 일부분 사회에 환원하여, 사회의 복리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런 산업패러다임이 정착하면 구체제의 재벌들은 사라지고, 신유형의 재벌들이 나타날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최첨단 정보혁명의 산업패러다임을 깨닫지 못하고,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등한시 하면, 빈곤층, 노예로 전락하거나, 국가의 존재를 거부하고, 문명을 죄로 인식하며 문명생활을 거부한 네덜란드 Meno SimonsMennonites, 스위스 Jakob AmmannAmish, 영국 George FoxQuaker(Religious Society of Friends) 등처럼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다.

 

(2) WCCMissio Dei

 

1) WCC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성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독교인을 탄생케 하여, 성삼위하나님을 예배하는 정통기독교복음주의의 전도와 선교관을 폐지하고, 정의, 평화, 인간화, 타자를 위한 교회를 선교의 주요 의제로 삼으면서 네오마르크시즘(neomarxism), 곧 오컬트 바티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2)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누가복음 10:38-42)에 대해 살펴보자.

 

마르틴 루터의 성경해석의 원리, ‘성경이 성경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라틴어 sacra 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영어 Scripture is its own interpreter)의 원칙에 의해서 본문을 해석하려면, 근접문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앞선 성경구절의 누가복음 10:29-37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초문화로, 당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제기된 내 이웃이 누구냐?’하는 질문을 뒤집어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누구냐?’하면서 타자중심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이웃사랑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당시 의로운 자로 칭송받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곤경에 처한 사람에 대해 무관심했지만, 수백 년 동안 불의한 자로 비난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이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었다고 하시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내가 이웃이냐는 질문을 제기하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제사장과 레위인의 도식의 상식적인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선한 사마리아인, 불의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새로운 구도를 보여 준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누가복음 10:38-42)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리아보다 당신과 제자들을 접대하기 위해 분주히 수고하는 마르다의 의견을 존중하기 보단 오히려 마리아의 선택을 칭찬하신다. 이것은 인간이성과 지혜를 뛰어넘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접문맥을 통해 이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

 

사도행전 6:2절 이하를 보면, 복지(구제)사업에서 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아람어를 구사하는 팔레스타인 토박이 유대인의 기독교인그룹과 디아스포라(Diaspora) 출신으로 그리스어에 능숙한 유대인의 기독교인 그룹과의 갈등과 대립을 다루고 있다. 아람어권 회중은 선민의 배타 의식이 강해, 개방적이되 다소 혼합주의적 그리스어권 회중의 과부들을 푸대접하거나 누락시키며, 자신들의 과부들 위주로 구제금을 할당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화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간의 편견의 정도가 심했을 것이다.

 

열두 사도들은 일방적으로 교회공동체를 이끌기 보다는 마태복음 28:19-20“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개역한글. 마태복음 28:19-20)를 기초하여,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사역에 집중하기 위해, 재정문제는 7명의 집사를 선출해,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는 제안을 하며, 공동체의 회의를 열어, 이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을 따른다.

 

교회 내에서 사역이 말씀전하는 부분과 행정부분이 이원화되는 것이 아니라 구분된다.

 

이런 사실에서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누가복음 10:38-42)는 예수님께서 훗날 교회탄생을 바라보시면서, 교회사명 가운데 우선순위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 5대 사명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예배(전례典禮; λειτουργίαleitourgía; liturgy)

 

정통복음주의기독교는 우선순위에서 예배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역할 때 기도나 예배로 시작하고 마친다. 이처럼 예배가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건물)를 예배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문안교회의 건물엔 교회가 아니라 예배당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둘째, 교육(διδαχήdidakhḗ; teaching, instruction)

 

위에서 언급 한 바(마태복음 28:19-20)와 같이 교육은 중요하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도 교회를 비롯해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병원 등을 세워, 조선백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화하고, 그들을 통해 조선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해 사회구원에 앞장섰다.

 

셋째, 복음전파(κήρυγμαkērygma; proclamation, preaching)

 

전도와 선교는 WCCMissio Dei정책과 오컬트 바티칸주의를 단죄한다.

 

일반적으로 선교(mission)는 국내선교(home mission work)와 국외선교(foreign mission work)로 구분하고, 이것을 하나로 영어로 evangelism 또는 evangelical work라고 한다.

 

넷째, 봉사(διακονίαdiākoníā; service, ministry)

 

교회가 구제나 학교나 도서관 등 공공이익을 위한 건물을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복지국가가 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시민을 섬겨야 한다.

 

다섯째, 교제(κοινωνίαkoinónia; fellowship)

 

코로나19로 직접적인(contac) 친교중단이 일어나기 때문에, 비대면(untact) 차원(전화걸기, e-메일 발송하기 등)에서 교제를 연구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고해야 한다.

 

“41.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개역한글. 누가복음 10:41-42)

 

이 번역은 필요 없는 문장이 삽입되었기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을 소개한다.

 

“41.And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er, Martha, Martha, thou art careful and troubled about many things: 42.But one thing is needful: and Mary hath chosen that good part, which shall not be taken away from her.”(KJV. Luke 10:41-42)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many thingsone thing이다. 마르다는 교회 5대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혼자 힘으론 다소 버거웠고, 마르다는 교회 5대 사명 가운데 최우선을 선택해, 예수님의 마음을 산 것이다.

 

따라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누가복음 10:38-42)는 예수님께서 교회 사명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본문은 오스만 제국 치하 크레타 섬 출생의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 니코스 카잔자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Nikos Kazantzakis, 1883-1957)최후의 유혹’(그리스어 Ο τελευταίος πειρασμός, 1953; 영어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소설에선 이 두 자매가 예수님과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1988년에 미국 마틴 찰스 스코세이지Martin Charles Scorsese, 1942- 감독이 예수의 신성보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특히 막달라 마리아와의 결혼, 정사 등이 담긴 영화로 만들어 출시하였음)으로 유명하다.

 

2. 파울 틸리히 신학의 방법가운데 이성과 계시

 

파울 틸리히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변증법신학(독어 Dialektische Theologie; 영어 dialectical theology=신 정통주의 neo-orthodoxy=위기의 신학theology of crisis)과 신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신학(독어 Liberale Theologie; 영어 liberal theology) 대신 두 신학사상을 결합시킨 제3의 길(종합의 길)인 매개신학(독어 Vermittlungstheologie; 영어 mediation theology)의 상관방법(독어 die Methode der Korrelation; 영어 the method of correlation), 곧 인간의 실존적인 질문(existential question)과 그것에 대한 신학적인 대답(theological answer)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틸리히는 신과 세계, 신학과 철학, 기독교와 문화, 신앙과 이성을 연결시키고 화해시키며 매개하고자 한다.

 

그러면 실존적 질문(자율의 질문)과 신학적인 대답(신율의 대답)을 통해 그 내용 가운데 1부 이성(질문)과 계시(대답)(독어 Erster Teil: Vernunft und Offenbarung; 영역 The first section reason and revelation)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에선 틸리히 설명이 다소 미흡하기 때문에 필자가 견해를 개진하고자한다.

 

나는 David Hume에 의해서 독단의 꿈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한 프로이센(독어 Preußen; 영어 Prussia)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의 비판철학(Die Kritische Philosophie; Critical Philosophy)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칸트는 프랑스 대륙합리론의 시조 및 해석기하학(analytic geometry: 기호의 학문으로서의 대수학과, 도형의 학문으로서의 기하학을 하나로 묶은 수학의 한 분야)의 창시자이자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프랑스어 René Descartes, 라틴어 Renatus Cartesius, 1596-1650)에서 포르투갈 출신의 유대계 네덜란드인으로 유물론적 성향이 강한 일원론적 범신론의 대표적 사상가 B. 스피노자(네덜란드어 Baruch Spinoza; 라틴어: Benedictus de Spinoza; 포르투갈어 Bento de Espinoza, 1632-1677: 네덜란드어 Baruch=라틴어 Benedictus=영어 Benedict축복받은 자Blessed’라는 의미)를 거쳐 독일의 철학자, 수학자(미적분법의 창시), 자연과학자, 법학자, 신학자, 언어학자(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는 물론 심지어 한자의 독해까지 가능했다는 그를 두고 후대의 학문 군주프리드리히 대제; 독어 Friedrich der Große; 영어 Frederick the Great; 프리드리히 2Friedrich II, 재위 1740-1786, 1712-1786’라이프니츠를대학 그 자체라고 칭송), 역사가인 G. W.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에 의해 완성된 대륙의 합리론(합리주의; 이성주의; 독어 Rationalismus; 영어 rationalism=reasonλόγοςlogos, 라틴어 ratio. 만을 인식의 근원으로 삼음), 곧 이성숭배의 공허한 독단론(dogmatism) 그리고 자유주의(입법권 그리고 선전포고, 군사, 강화, 조약 체결 등 외교관계를 처리하는 권력인 연합권 또는 동맹권은 국내 정치와 외교의 일관성을 위해 집행권 담당자에 귀속하는 집행권의 2권 분립사상, 국가와 교회의 분리, 시민 저항권, 시유재산, 다수결의 원칙, 종교의 자유, 관용 등은 영국의 입헌민주주의를 비롯해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침)의 아버지, 경험주의(깨끗한 석판; tabula rasa; 백지; white paper)의 창시자(객관적 관념론)로서 노동과 재산권의 개념을 기초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잉글랜드의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에서 존재하는 것은 지각(知覺)된 것이다’(라틴어 Esse est percipi; 영어 To be is to be perceived: 표상representation혹은 관념idea만 있다. 이미지만 있다)라는 명제를 남긴 극단적인 경험론자, 주관적 관념론자 아일랜드의 철학자, 성공회 주교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를 거쳐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성은 도덕적 판단이고 도덕행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감정, 느낌임), 공감(sympathy)은 시인(쾌감)과 부인(불쾌감)에서 나오며, 사회적 승인으로 확산시킨 주정주의자 및 경제학자(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덕철학자<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 고전경제학의 창시자<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과 절친 사이로, 스미스가 흄의 유저遺著 관리자가 됨)이며 역사가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에 의해 완성된 영국의 경험론(경험주의; 독어 Empirismus; 영어 empiricism: 인식의 근원은 오직 경험; 그리스어 μπειρίαempeiria; 라틴어 experientia; 영어 experience’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험적 지식은 상대적이요 확률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필연성을 기할 수 없어 회의론에 빠짐)흑백논리인 이성의 파괴(회의론 skepticism) 비판하고 종합하였다.

 

칸트는 감각적 경험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백지(타블라 라사)라는 대상 중심적인 객관적 인식론에서 주관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언제(시간) 그리고 어디서(장소) 구분만은 가능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구성설(構成說), 곧 주관적 인식으로 바꾸는 인식론의 대혁명을 주창한다. 이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독어 Kopernikanische Wendung; 영어 Copernican Change)이라고 한다.

 

칸트는 감성에 주어지는 질료(잡다한 세계)와 감성의 선천적(선험적) 형식(시간과 공간)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결과물을 직관’(지각; 독어 Wahrnehmung; 영어 perception)이라고 하며, 오성(지성)판단하기 이전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온 상이라 하여 표상’(독어 Vorstellung-오성이 앞에vor 상을 세운다stellen; 영어 representation)이라고 규정한다. 칸트는 초시간적이거나 초공간적인 것은 우리의 감성의 제약을 벗어났으므로 참다운 인식대상이 될 수가 없다고 한다.

 

칸트는 감성이 받아들인 표상을 12범주(독어 Kategorie; 영어 category: 12범주는 오성의 선험적 형식)에 기초하여 구성한 것을 개념’(독어 Begriff; 영어 concept)을 만드는 것을 오성(悟性또는 지성知性; 독어 Verstand; 영어 understanding)이라고 정의한다. 오성(지성) 지각에 관해서만 사유하기 때문에 초 감성적인 것에 사유하는 이성과는 다르다.

 

12범주는 분량(독어 Quantität; 영어 quantity), 속성(독어 Qualität; 영어 quality), 관계(독어 Relation oder Verhältnis; 영어 Relation), 양상(독어 Modalität; 영어 modality)이고, 4가지 분류엔 각각 3가지의 소분류로 구성되어 있다. 지면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칸트는 감성과 오성의 선천적 형식에 의해서 구성된 세계 혹은 대상을 현상’(독어 Phänomen, die Erscheinung, =영어: phenomenon, pl. phenomena, appearance, manifestation)이라고 정의한다.

 

칸트에 의하면 오성의 범주란 각 개인이 제 멋대로 내리는 판단의 형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의식일반, 곧 통각(統覺; 독어 Apperzeption 영어 apperception)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선험적인 오성의 형식과 경험적인 감각의 내용이 통각에 의하여 하나가 될 때 지식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성(독어 Vernunft; 영어 reason)에 대해 살펴보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독어 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영역 Critique[krití:k] of Pure Reason)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Was kann ich wissen?)라는 인식론을 제기한다.

 

객관적 자연의 세계는 자연율(독어 Gesetz der Natur oder Naturgesetz; 영어 The 1aw of Nature), 기계론(독어 Mechanismus; 영어 Mechanism), 인과율(독어 Gesetz der Ursächlichkeit; 영어 The law of Causation)이 지배하고 있다. 진위의 담론영역만이 존재하는 이론이성이기 때문에 정의와 불의의 문제인 정치적 담론, 선악의 문제인 윤리적 담론, 미와 추의 문제인 미학적 담론 등의 자유의 영역은 존재할 수 없고 과학을 최고의 심급으로 인정한다. 이론이성자연의 왕국’(독어 Reich der Natur; 영어 kingdom of nature)을 다룬다.

 

순수이성비판’ B75에서 내용이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독어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영어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void,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라는 명구절이 나온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1941년에 출판된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에서 신앙심 없는 과학은 불완전하며, 과학 없는 신앙심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1986위험사회-새로운 근대()를 향하여에서사회적 합리성이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독어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영역 Critique of Practical Reason)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Was soll ich tun?)라는 윤리학을 제기한다.

 

실천이성의 세계는 자유’(독어 Freiheit; 영어 Liberty엔 책임과 의무가함유 된 반면에 Freedom은 단순히 로부터 자유의미와 자율(그리스어 ατονομίαautonomía=selbstατόςautós+Gesetzνόμοςnómos ; 독어 Autonomie; 영어 autonomy)이 지배하는 도덕의 세계(독어 Moralische Welt; 영어 Moral World)의 목적의 왕국(독어 Reich der Zwecke; 영어 Kingdom of Ends)을 의미 한다.

 

칸트의 저서도덕 형이상학’(독어 Metaphysik der Sitten; 영역 Metaphysics of Morals, 1797)에 의하면 인간에겐 선의지’(善意志; 독어 guter Wille, Ein guter Wille, Der gute Wille; 영어 Good Will), ‘도덕률’(독어 Gesetz der Moral; the moral law)이 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편적 도덕법칙, 곧 정언적 명령(독어 Kategorischer Imperativ; 영어 a categorical imperative, moral imperative/정언은 조건이 없다는 뜻으로 정언적 명령=범주적 명령=절대명령=무상명령無上命令-무상은 그 위에 더할 수 없음. 가장 좋음-=단언적 명령=지상명령=무조건적 명령=단언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칼리닌그라드(the city of Kaliningrad: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6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the city of Kaliningrad가 됨)에 있는 칸트 묘석.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의 유명한 구절이 나와 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여러 번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항상 더 새롭고 더 강렬한 경탄과 경외심으로 채워주는 두 가지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Zwei Dinge erfüllen das Gemüt mit immer neuer und zunehmender Bewunderung und Ehrfurcht, je öfter und anhaltender sich das Nachdenken damit beschäftigt: der bestimm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Kapitel V. Beschluß)

 

칸트는 3대 이념(Idee)인 하나님(Gott), 영혼(Seele), 자유(Freiheit)의 물자체(物自體=본체=독어 Ding an sich, pl. Dinge an sich=영어 thing-in-itself, pl. things-in-themselves=그리스어 νοούμενονnooumenon, 영어 noumenon, 독어 das Noumenon)를 알 수 없고, 도덕적 근거에서 요청될 수 있다고 단언함으로써 독단의 함정으로부터도 이성을 구출했다. 칸트는 실천이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요청한다(the postulation of God‘s existence)

 

프랑크푸르트학파(독어 Frankfurter Schule; 영어 The Frankfurt School)유대계 독일인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와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의 공저계몽의 변증법’(독어 Dialektik der Aufklärung, 1944; 영역 Dialectic of Enlightenment)은 칸트의 이성철학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계몽은 자연에 의한 인간 지배를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로 역전시킴으로써 인간을 자연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만들었지만 이것은 곧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로 귀결되는 도구적 이성론으로 변질되어 파시즘, 나치즘, 아우슈비츠의 수용소, 스탈린주의, 전체주의, 오컬트 바티칸주의인 네오마르크시즘을 탄생케 했다고 본다.

 

기술적 이성도 사회적 경제적 생산에 이바지하지만, 오직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수단화하여, 황폐해졌다고도 해석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하다.

 

3. 종합

 

인류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경은 정통복음주의 기독교의 유일한 존재의 근거인데, 오컬트 바티칸이 기독교를 말살시키려고, 기독교내에 오컬트 바티칸의 첩자를 심어놓아 이들로 하여금 성경 난도질하는 교란작전에 대성공해, 현재 기독교는 거의 황폐화되었다.

 

정통복음주의 기독교의 계시의 원천인 성경, 곧 루터의 성경, 제네바성경, 킹 제임스 성경이 부활하여,‘성경이 하나님말씀이다라는 진리를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정통복음주의 기독교성도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기초한 자연신학에 정통하여 성경에 입각한 계시신학을 고수해야 한다. 자연신학을 등한 시 할 경우, 국가를 부정하는 네덜란드 출신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11)가 창설한 메노파교도(Mennonites),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 1624-1691)가 창시한 종교친우회(Religious Society of Friends) 또는 퀘이커(Quaker), 메노파의 한 분파인 스위스의 종교개혁가인 야코프 암만(Jakob Ammann or Jacob Amman, 1644-1712)을 지도자로 하는 아미쉬’(Amish) 등과 같은 단체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사명은 예배, 교육과 복음전파가 봉사와 교제보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실례를 이를 증언한다.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내촌감삼, 1861-1930)6평짜리 다다미방에서 하나님말씀으로 청년들을 가르쳐 후일 각계각층의 지도자로 활약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현대 일본을 만들었다.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하천풍언, 1888-1960)는 일본 사회당의 복지제도에 기초를 놓은 사회복지 선구자, 일본 협동조합(천국의 경제방식에 가깝다고 진단세계 최대 단일 생활협동조합인 코프고베를 설립)의 아버지, 민권운동의 지도자다. 교회사명에서 그는 디아코니아를 강조했다. 그가 이룩한 사역은 일본이 선진국이 되어 퇴색되었다. 그의 사회활동은 그의 기념관(고베 시 중앙 구 아즈마도오리에는 사회복지법인 예수단에 의해 기념관이 세워졌음)만 하나 남긴 채 다 사라졌다.

 

서유럽사회와 북유럽사회도 예배와 교육과 복음전파를 등한시 한 채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만을 강조해, 기독교가 몰락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예배와 교육과 전도와 선교사역이 부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