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한스 큉의 세계윤리에 대한 비평’ YouTube!!!

아우구스티누스 2021. 3. 31. 13:57

3월 끝자락에 피기 시작한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율하는 찰나의 봄은 자신을 영원한 계절로 허락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와 삶이 벚꽃의 향기를 타고 성삼위 하나님께 열납되는 역사로 대승하시기 바랍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진(), (), ()를 다룬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독어 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영역 Critique of Pure Reason), ‘실천이성비판’(독어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영역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판단력비판’(독어 Kritik der Urteilskraft, 1790; 영역 Critique of Judgement) 그리고 성()을 다룬 순수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 영역 Religion within the Bounds of Bare Reason; Religion within the Boundaries of Mere Reason; Religion Within the Boundary of Pure Reason; 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Bare Reason)를 집필하여, 철학적인 관점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속성 진(), (), (), ()을 밝혔다.

 

그리고 칸트는 프랑스 혁명(프랑스어 Révolution française; 영어 French Revolution, 1789-1799) 및 그 전후를 둘러싼 혼란과 전쟁을 목도한 후, 세계시민으로 눈을 돌리며, 71세 때영원한 평화를 위하여’(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 1795; 영역 Perpetual Peace: A Philosophical Sketch)를 출판한다.

 

이 책의 등장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1946년에 해체됨) 규약에 반영되고, 1948년 국제연합(United nations) 헌장에 반영되어 현실화된다.

 

그러면 종교적 관점에서 한스 큉(Hans Küng, 1928-)의 세계평화에 대해 논해보자.

 

1. 한스 큉

 

한스 큉은 1928년 스위스의 루체른주(독어 Luzern) 주르제(독어 Sursee)에서 태어나 로마 교황청설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고(Er studierte von 1948 bis 1951 Philosophie und von 1951 bis 1955 Theologie an der Päpstlichen Universität Gregoriana in Rom), 26세 때인 1954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로 서품 받은 후 파리의 소르본 대학과 천주교대학원에서 칼 바르트의 의인론(義認論)과 천주교의 사상’(프랑스어 Justification. La doctrine de Karl Barth et une réflexion catholique; 독어 Rechtfertigung. Die Lehre Karl Barths und eine katholische Besinnung; 영어 Justification: The Doctrine of Karl Barth and a Catholic Reflection)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큉 박사는 1960년 독일 튀빙겐(Tuebingen) 대학교 신학대학의 기초신학 교수로 부임하고. 1962년에는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2차 바티칸공의회(The Second Ecumenical Council of the Vatican; the Second Vatican Council; Vatican II, 1962-1965: 교황 요한 23세라틴어 Ioannes PP. XXIII;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XXIII; 영어 Pope John XXIII, 재위 1958.10.28.-1963.6.3., 1881-1963이 개최하고, 바오로 6; 라틴어 Paulus PP. VI; 이탈리아어 Papa Paol VI; 영어 Pope Paul VI, 재위 1963.6.21.-1978.8.6., 1897-1978이 종결지음)의 신학 자문위원으로 지명된다. 1963년부터는 튀빙겐 대학의 교의신학과 교회일치신학을 담당하였으며, 1964년에는 동()대학 부설로 설립된 교회일치신학연구소장 직을 겸임한다.

 

큉 박사는 51세 때인 19791218일 오컬트 바티칸 교주의 무오류성(無誤謬性)(라틴어 infallibilitas; 독어 die Unfehlbarkeit des Papstes; 영어 Papal infallibility) 등의 오컬트 바티칸 교리들을 비판하여, 교황청으로부터 로마천주교교회교사직(라틴어 missio canonica; 독어 die Kirliche Lehrerlaubnis), 곧 독일 튀빙겐 천주교대학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한다.

 

이 당시 교주는 19781016456년 만에 처음으로 비()이탈리아(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라틴어 Sanctus Ioannes Paulus PP; 이탈리아어 Papa San Giovanni Paolo II; 영어 Saint Pope John Paul II, 재위 1978-2005, 1920-2005)이었다.

 

2. 베네딕토 16(라틴어 Benedictus PP. XVI; 이탈리아어 Papa Benedetto XVI; 영어 Pope Benedict XVI , 본명 Joseph Aloisius Ratzinger, 재위 2005.4.24.-2013.2.27., 1927-)

 

요제프 A. 라칭거는 교황의 분열(1378-1417)을 종식시키기 위해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난 교황 그레고리오 12(라틴어 Gregor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XII; 영어 Pope Gregory XII, 재위 1406.11.30.-1415.7.4., 1325-1417) 598년 만에 교황직을 중도 사퇴한 후 명예 교주’(emeritus pope)에 추대된 베네딕토 16세다.

 

라칭거는 교주 되기 이전인 사제시절에 자신보다 1살 연하의 한스 큉 박사와 절친 관계를 맺는다. 리칭거와 큉 두 사람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여하면서 쇄신운동을 주도하여 오컬트 바티칸의 주요인물로 부각된다. 라칭거는 이 당시만 해도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말로 유명한 예수회 사제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를 존경하며 지지한 진보주의사제였다.

 

그런데유럽 68학생 운동을 경험한 후 오컬트 바티칸을 사수하는 극우자로 변신 한다. 그 까닭은 유럽 68학생 운동3 M(Marx마르크스, Mao마오, Marcuse마르쿠제)을 영웅시하면서 다른 3K(Kinder-children자녀, Küche-kitchen부엌, Kirche-church교회)를 전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베네딕토 16세 이후 예수회 중심의 오컬트 바티칸세력은 마오의 중국공산당과 협력하고, 마르쿠제가 소속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념인 네오마르크시즘을 지향하고 있다.

 

라칭거는 1977324일 뮌헨과 프라이징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주교품에 서품되고, 3개 월 후인 627일 추기경이 되면서, 오컬트 바티칸체제를 무너뜨리는 큉 박사의 신학사상을 근거하여, 요한 바오로 2세 전임교주에게 큉의 튀빙겐 천주교대학 신학교수직사퇴를 건의해, 19791218그를 그 자리에서 추방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밑에서 신앙교리성 장관(1981-2005)을 역임하면서 라칭거 추기경은 과거 교황청을 공격했던 자신의 저서를 수정해 출간하며 큉 박사의 천주교 관련 강연을 전면 금지시킨다.

 

슬라브 족 요한 바오로 2세가 외국순방을 통한 선교에 중점을 두었다면, 게르만족 리칭거 추기경은 오컬트 바티칸 조직을 견고케 하였다. 이 두 사람의 찰떡같은 궁합으로 정통복음주의 기독교가 와해되기 시작한다.

 

3. 큉 박사의 세계윤리구상

.

큉 박사는 51세 때 튀빙겐 대학 신학 교수직에서 해임되면서, 21년 동안 성찰하면서 세계평화를 위한 저서세계윤리구상’(독어 Projekt Weltethos, 1990; 영역 Global Responsibility: In Search of a New World Ethic)의 대작을 내놓는다.

 

이 저서는 주옥(珠玉)같은 글을 쏟아내면서, 21세기 세계시민에게 많은 사색을 선사한다.

 

세계윤리가 없다면 지구상에서 세계시민의 공동생활이 불가능하며, 종교간 평화가 없다면 세계평화는 불가능하고, 종교간 대화가 없다면 종교간 평화가 불가능하다“(Kein Zusammenleben auf unserem Globus<der Globus ohne ein globales Ethos. Kein Frieden unter den Nationen ohne Frieden unter den Religionen. Kein Frieden unter den Religionen ohne Dialog zwischen den Religionen)

 

큉 박사는 다음과 같은 세계윤리를 제시한다.

 

첫째, 모든 사람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둘째,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누가복음 6:31)

 

그런데 큉 박사는 둘째의 세계윤리를 황금률’(독어 die Goldene Regel; 영어 The Golden Rule)이라며 귀중히 여기는데. 이것은 황금률이 아니다. 오컬트 바티칸 세력들은 성경에 대해 매우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오컬트 바티칸체제의 견고를 위한 일반서적에 불과하다고 하며 성경난도질 하는 비성령의 단체이다. 그래서 성경해석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고, ‘황금률이라고 세상을 수백 년 동안 사기쳐왔다.

 

그러면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마태복음 7:12는 마태복음 7:7-12의 문맥에서 살펴보아야 하고, 이것과 동일한 내용이 담긴 누가복음 11:9-13 그리고 잠언 16:7과 연결하여 해석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하라’(ask), 찾으라(seek), 두드리라(knock)며 기도의 중요성과 인내를 강조하신다. 세상의 부모들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최고의 것으로 주는데, 하물며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마태복음 7:11), 곧 성령(누가복음 11:13)을 부어주셔서, 성부 하나님 자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성령의 공동체를 만드시며,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님은 권면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계시말씀임을 밝힌다.

 

마태복음 7:12의 시작하는 단어가 킹 제임스 성경엔 그러므로’(Therefore)로 시작하기 때문에 마태복음 7:12는 하나님사랑이 부재한 자연종교와의 차이점을 밝혀주는 동시에 마태복음 7:7-12전체가 황금률임을 입증한다.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개역한글. 마태복음 7:12)

 

“12.Therefore all things whatsoever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even 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KJV. Matthew 7:12)

 

그리고 마태복음 7:12는 마태복음 22:40과 동일한 내용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7:7-12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권면의 말씀임을 보여준다.

 

잠언 16:7은 이런 견해를 뒷받침한다.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개역한글)

 

“7.When a man's ways please the LORD, he maketh even his enemies to be at peace with him.”(KJV)

 

그러면 하나님사랑이 부재한 자연종교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탈무드 유대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샴마이(Shammai Ha-Zaken, B. C. 50A. D. 30)를 찾아가 제가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제게 토라 전체를 가르칠 수 있다면, 저는 유대교에 입교할 것입니다라고 질문하자, 샴마이는 퉁명스럽게 그를 추방시킨다. 그래서 그 이방인은 관용의 정신에 따라 율법을 좀 더 자유롭게 적용한 힐렐(Hillel, Hillel the Elder, B. C. 60-A. D. 20) 랍비를 찾아가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힐렐은 간단하게 대꾸한다. “당신 자신에게 혐오스러운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저 각주일 뿐이니, 가서 이것을 공부하시오

 

둘째, 이슬람교

 

쿠란(Quran)은 이렇게 언급한다. 나를 위하는 만큼 남을 위하지 않는 자는 신앙인이 아니다.”

 

셋째, 불교

 

법구경은 이렇게 선언한다.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넷째, 힌두교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마하바라타’(Mahābhārata, 18: 친척이었던 카우라바 가와 판다바 가 사이에 벌어졌던 권력 쟁탈전이 한 영웅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수많은 전설과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후기 힌두교의 성전인 바가바드기타Bhagavadgῑtā’가 들어 있다. 전기 힌두교의 성전은 베다Veda’이고, ‘우파니샤드Upanishad’베다의 주석서임)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고통스러운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이것이 의무의 전부이니라.”

 

다섯째, 유교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23장은 다음과 같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위()나라의 유학자 자공(子貢, B. C 520?-B. C. 456?):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공자: 그것은 바로()’이다(其恕乎기서호). 자기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

 

맹자는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한다.

 

이처럼 기독교의 계시말씀과는 달리 자연종교의 교훈은 속담(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Give and Take)에 불과하다.

 

하나님사랑이 부재한 자연종교의 언어는 세계윤리가 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연종교자들과 비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황금률을 실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는 밝지 못하다. 그것은 큉 박사의 제안이 자신이 속해있는 오컬트 바티칸의 정체성에 대해 둔감할 뿐만 아니라 세계정치경제의 무지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큉 박사의 세계윤리에 대해 비평해보자.

 

4. 비평

 

(1) 오컬트 바티칸의 권력의지

 

오컬트 바티칸은 프랑스혁명에 의해 무너진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영어 Old or Former Regime)의 부활, 곧 제1신분(오컬트 바티칸 성직자>), 2신분(정치 지도자, 초부자 등의 상류층), 3신분(세계시민)의 체제를 위해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여 네오마르크시즘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

 

1) 70세에 교주의 자리에 올라 11년 재임한 인노첸시오 10(라틴어 Innocentius PP. X;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X; 영어 Pope Innocent X, 재위 1644-1655, 1574-1655)는 베스트팔렌조약(독어 Westfälischer Friede, 1648; 영어 Peace of Westphalia)을 폐기하였다.

 

인노체시오 10세는 이 조약으로 독일 제후국 내의 천주교, 루터파, 칼뱅파는 각각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여,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고,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이 형성되는 동시에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태동이 진전하자, 오컬트 바티칸 체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마침 인노체시오 10세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기간에 예수회를 풀가동하여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 인 청교도혁명(The Puritan Revolution, 1642-1651)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베스트팔렌조약폐기를 단행한다.

 

2) 바티칸시국(市國)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1805-1872)와 주세페 M. 가리발디(Giuseppe Maria Garibaldi, 1807-1882)의 협력으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Risorgimento, 1750-1870)이 완성하여, 1860년 근대 통일 이탈리아 국가를 세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이탈리아어 Vittorio Emanuele II; 영어 Victor Emmanuel II , 재위 1861-1878, 1820-1878)는 당해 오컬트 바티칸의 교주군을 격퇴한 후 로마와 라티움(Latium)을 제외한 모든 교주의 영토를 점령하고, 1870년에 이탈리아가 교주령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무력으로 침공해 점령한다. 당시 교황 비오 9(라틴어 Pius PP. IX; 이탈리아어 Papa Pio IX, 재위 1846-1878, 1792-1878)는 강력하게 저항하지만, 이때부터 교주는 바티칸의 포로로서 살아야만 했다. 1929년에 이르기까지 교황들은 바티칸을 떠날 수 없었다.

 

바티칸 교주 비오 11(라틴어 Pius PP. XI; 이탈리아어 Papa Pio XI; 영어 Pious XI, 재위 1922-1939, 1857-1939)1929년 이탈리아 당시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어 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재위 1922-1943, 1883-1945) 정권과의 사이에 라테라노(이탈리아어 Palazzo Laterano; 영어 Lateran Palace)에서 라테라노 조약(라테란조약; 라틴어 Pacta Lateranensia; 이탈리아어 Patti lateranensi; 영어 The Lateran Treaty)을 체결하고, 1947년 이탈리아의 헌법에 인준되어 오늘의 바티칸시국(市國)’(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ae;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영어 The Vatican City State)이 태어난다.

 

비오 11세는 과거 오컬트 바티칸의 교주령 시절의 영토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는 대신 무솔리니의 파시즘정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받는 동시에 자주 중립적 독립국으로서의 바티칸 시의 지위를 보장받게 되며, 비오 11세 자신은 교주령이 몰락한 이후 주권국가의 국가원수 자리에 오른 첫 번째 교주가 되며, 천주교는 이탈리아의 국교로 인정받는다.

 

대중적 기반이 약했던 무솔리니는 라테라노 조약으로 파쇼권력의 국내 지지기반(대부분 천주교 신자들인 이탈리아국민)을 확보하고, 국제 정치무대에서도 박수를 받는다.

 

1933130일 독일의 수상이 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934-1945, 1889-1945)가 정교 협약을 맺자는 제의를 하자 비오 11세는 이를 수락한다. 1933910일 에우제니오 파첼리(Eugenio Pacelli: 후에 교황 비오 12; 라틴어 P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Pio XII; 영어 Pious XII, 재위 1939-1958, 1876-1958이 됨) 추기경과 독일 정부는 교회의 자유 보장, 천주교단체와 청년 모임의 독립,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을 포함한 제국종교협약(Reichskonkordat)을 체결한다.

 

3) 아일랜드 출신 천주교 신자 조 바이든(Joseph R. Biden Jr., 1942-) 대통령 만들기

 

프란체스코 교주는 바이든 전 부통령(2009-2017)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미국을 바티칸의 노예국가로 만들기 위해 트럼프 정부를 카오스세계로 만드는데 안간힘을 쏟았다.

 

교주는 미국 한인교포들의 약탈과 방화를 외면한 채 작년 6월 흑인남성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을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 및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무릎 꿇기 시위를 벌린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 교구의 신부 13명을 극찬하며, 전화를 통해 변화를 위해 나서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오컬트 바티칸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침내 오컬트 바티칸은 천주교 신자 미국 바이든 대통령 그리고 1995-2002 포르투갈의 총리를 지낸 천주교 신자 안토니우 구테흐스(포르투갈어 António Manuel de Oliveira Guterres, 1949-) 9대 유엔 사무총장(2017.1.1.-)의 두 축으로 세계지배에 성공했다.

 

(2) 인간생태계파괴집단 LGBT의 세계화

 

천주교 국가 벨기에는 2003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2011.12.6.-2014.10.11 동안 동성애자 엘리오 디 뤼포(Elio Di Rupo, 1951-)는 벨기에의 총리로 재임했다.

 

부인과 전문의이자 2014년부터 5년간 벨기에 상원의원을 지낸 페트라 더쉬터는 유럽 내 최고위직 성전환자(여성) 정치인으로 벨기에 부총리(2020-)이다.

 

미국에서 역사상 최초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레이철 러빈을 보건복지부(NIH) 차관보(장관과 차관을 보좌하는 보조 기관. 또는 그 직위에 있는 공무원)로 임명했다.

 

(3) 아시아 천주교 국가의 연합

 

대한민국천주교세력이 아시아 천주교 국가 베트남에게 지난 베트남전쟁에 대해 사죄하겠다고 한다. 오컬트 바티칸이 아시아천주교국가간의 연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징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도 선교차원 상 오컬트 바티칸에서 관리하고 있다. 지난 천주교 신자 DJ도 바티칸의 노선에 따라 북한이 대한민국주도로 흡수통일 될 경우, 천주교국가보다 기독교국가가 될 확률이 많기 때문에 북한정권에 필요이상의 혜택을 주었다.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William Franklin Graham Jr., 혹은 Billy Graham, 1918-2018) 목사도 1992년과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한 후에 고 김일성 주석의 친서를 바티칸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1997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인 루스 벨 그레이엄(Ruth Bell Graham or Ruth Graham, 1920-2007: 루스 벨의 부친 넬슨 벨L. Nelson Bell과 모친 버지니아 벨Verginia Leftwitch Bell은 의료 선교사로 샹하이 칭장푸Qingjiangpu : 현재 화이안 시에 있는 장로교 병원에서 1916년에서 1941년 까지 25년간 선교했다. 루스 벨은 13살 때 한국 평양에 있는 그 당시 명문 기숙사학교였던 평양외국인학교Pyeng Yang Foreign School로 유학 가서 소녀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그 곳에서 3년간 공부한 뒤 1937년 미국으로 들어가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릿Montreat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리노이주에 있는 휘튼 대학Wheaton College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빌리 그레이엄을 만나게 되고 대학을 졸업한 뒤 1943년 결혼) 여사가 북한으로부터 초청받아 장녀지지(Virginia Gigi)와 차남 네드(Ned)를 대동하고 평양을 방문하고, 평양 봉수교회에서 예배시간에 간증하는 시간도 가졌다.

 

5. 종합

 

인간에겐 생물로서의 인간이 갖는 동물성’, 생물이면서 동시에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성’,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수 있는 존재자인 인격성이 있다. 동물성은 말 그대로 동물로서의 인간이고, 인간성이란 사회성을 말하며, 인격성은 도덕성을 지칭한다.

 

칸트는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원리의 인격화한 이념’(독어 personifizierte Idee des guten Prinzips; 영어 The Personified Idea of the Good Principle)이며, 교회는 악의 방지와 선의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신적인 도덕적 법칙 수립 아래에 있는 윤리적 공동체’(Ein ethisches gemeines Wesen; 영어the Ethical Community)라고 규정했다.

 

오컬트 바티칸도 성령의 인격을 구현해낼 수 있는 재간이 없기 때문에, 큉 박사를 통해 자연종교의 세련된 인격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통복음주의기독교는 최첨단 과학기술문명을 ‘666’으로 해석하는 동시에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신병자들과 학문의 능력이 떨어지는 자들 때문에 큰 곤욕을 치루고 있다. 이런 자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사랑과 헌신의 의무엔 전혀 관심 없는 어둠의 세력의 자식들이다.

 

이제 기독교 성도가 성경말씀으로 무장하여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기초학문에 정통한 동시에 성령의 인격을 드러내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