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 몰락과 존 H. 뉴먼의 시성의 허구성(3)’을 YouTube로 올렸다.
독자 여러분께서 구글의 검색에 ‘함시영 목사’를 기입하면 함시영 목사 관련 이미지가 나타나고, 그 위에 검색결과(함 목사 강의 분야별로 정리)를 참조하면 위의 강의를 듣고,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점은 물론 철학과 타종교와도 비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그 동안 강의한 내용도 시청할 수 있다.
뉴먼의 시성작업은 예수회의 작품이다. 존 H. 뉴먼과 예수회와의 서신을 보면 뉴먼이 예수회세례를 흠뻑 받았고, 그것을 청년들에게 부어주어, 예수회에 입교하도록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선 다른 차원에서 살펴보겠다.
1. 영국학원(이탈리아어 Venerabile Collegio Inglese; 영어 The Venerable English College or The English College)
주교를 거치지 않고 바티칸의 추기경이 된 잉글랜드 출신 윌리엄 앨렌(William Allen, Guilielmus Alanus or Gulielmus Alanus, 1532-1594)은 자신이 1568년에 창립한 프랑스 두웨이 가톨릭 신학교(프랑스어 College des Grands Anglais; 영어 The English College 또는 a Catholic seminary in Douai, France)를 모델로, 1576년에 세워, 1577년 프랑스 두웨이 40명의 학생들을 초청해 강의를 시작하고, 바티칸의 수장 그레고리오 13세(라틴어 Gregorius PP. XIII;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XIII; 영어 Pope Gregory XIII, 재위 1572-1585, 1502-1585)가 1579년에 인준하면서, 예수회 출신 30세의 알폰소 아가자리(a Jesuit, Alfonso Agazzari, 1549–1602)를 신학교장(rector)으로 임명하고,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Pope Clement XIV, 재위 1769-1774, 1705-1774)에 의해 예수회가 해산될 때까지 이들이 학교를 이끌어간다.
1818년 수장 비오 7세(라틴어 Pius PP. VII; 이탈리아어: Papa Pio VII; 영어 Pope Pius VII, 재위 1800-1823, 1740-1823: 비오 7세의 모친은 남편을 여읜 다음 다섯 자녀를 다 키운 후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고, 비오 7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황제 1804-1814, 1769-1821로부터 1809년 체포감금당한 후, 나폴레옹이 퇴위하자마자, 1815년 42년 만에 예수회를 원상 복귀시킴)가 이 학교를 재건한다.
뉴먼에게 천주교사상의 세례를 준 니콜라스 와이즈먼(Nicholas Patrick Stephen Wiseman, 1802-1865: 아일랜드 부모님이 비즈니스를 위해 간 스페인 세비야; 스페인어 Sevilla; 영어 Seville에서 태어나 부친이 사망하던 1805년 부모님의 저택인 아일랜드 워터포트Waterford로 이주)은 예수회사상의 고장인 영국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와 더불어 사제수품을 받고, 25세 때인 1827년에 부총장직을, 1828년에는 26세의 나이로 총장직을 역임했다.
뉴먼은 와이즈먼의 예수회의 폭탄세례를 받고 완전히 자신이 소속한 영국 성공회를 이단으로 단죄한다.
영국학원은 다음과 같은 잉글랜드의 사상가와 종교가 그리고 정치가 등을 배출하여, 후에 바티칸은 이 들을 통해 영국과 영국 성공회를 몰락시킨다.
‘리바이어던, 1651’(한국어 리워야단; 히브리어 לִוְיָתָן, Liwyatan; 영어 Leviathan; 원제목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 1651)저자로 잉글랜드 최초의 민주적 사회계약론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1635년, 1623년 제임스 1세(James I, 영국 왕 재위1603-1625, 1566-1625; James VI, 스코틀랜드 왕 재위 1567-1625)와 1627년 찰스 1세(Charles I, 재위 1625-1649, 1600-1649)의 시의(侍醫: 궁중에서, 임금, 왕족의 진료를 맡아보던 의사)를 지낸 천주교 신자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로마의 공동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재위 161-180, 121-180, 루키우스 베루스Lucius Verus, 161-169,130-169, 콤모두스Commodus, 177-192, 161-192,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Lucius Septimius Severus Pertinax, 193-211, 146-211의 주치의를 지내며, 천년 이상 바티칸교의 공인을 받아 수정이 허용되지 않는, 그리스인들이 소아시아에 세운 도시인 페르가몬 또는 페르가모스; 그리스어 Πέργαμον 또는 ἡ Πέργαμος의 귀족 출신 고대 그리스의 의학의 황제이자 철학자 클라우디우스 갈레누스; 라틴어 Claudius Galenus; 그리스어 Κλαύδιος Γαληνός, 129-199?의 체액설을 1628년 저서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 Exercitatio Anatomica de Motu Cordis et Sanguinis in Animalibus’를 통해 심장의 박동을 원동력으로 하여 혈액이 순환된다고 하는 ‘혈액순환’의 원리를 발표하며 갈레누스의 학설을 부정하지만, 여전히 갈레노스 이론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어 하비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심지어 이단으로까지 매도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의사인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 C. 490-430과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그리스어 ἹπποκράτηςHippokrates; 영어 Hippocrates[hipάkrətì:z], B. C. 460?-B. C. 375?의 4체액설-점액, 혈액, 흑담즙, 황담즙-을 갈레누스가가 체계화. 체액설은 해부병리학의 등장으로 폐기된다. 하비는 1651년 ‘동물발생론 Exercitationes de Generatione Animalium’을 저술하여, ‘모든 생물은 알에서 생겨난다’고 주장, 중세 이래의 고전의학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룸)는 1636년, 40대인 1652년경에 완전히 시력을 상실한 채, 라틴어가 존숭되던 시기에 자신의 민족 언어인 영어로 구약의 창세기를 모티프로 해 인간의 타락이라는 주제로 지옥 과 천국, 지상을 무대로 펼친 대서사시‘실낙원’(Paradise Lost, 1667년 10권으로 초판 되었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1674년 12권으로 재판/복낙원Paradise Regained, 1671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어, 잃었던 낙원이 인간의 마음속에 회복되는 것을 묘사한 작품)을 집필한 저자이자, 성경을 연구하는데 생의 대부분을 바친 청교도 사상가로, 올리버 크롬웰(영어: Oliver Cromwell, 1599-1658)의 외교(라틴어) 비서관을 지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1638년, 바티칸사상에 반대하는 강력한 팸플릿 저자이자 논객인 영국 성공회 사제 윌리엄 크래쇼(William Crashaw, 1572–1626)를 부친으로 두었지만,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들이 쓴 글의 영향과 장엄한 의식과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답게, 청교도 혁명 시 1644년 프랑스로 망명해 천주교 사제로 전향한 시인 리처드 크래쇼(Richard Crashaw, 1613-1649: The complete works of Richard Crashaw의 ‘Nympha pudica Deum vidit, et erubuit’를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을 비평해‘잉글랜드 비평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의 번역The conscious water saw its God and blushed->잉글랜드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이 케임브리지대학 3학년 때 신학 시험, 기말고사 때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던 기적을 종교적, 영적 의미에서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시험 시간 내내 쓰지 않던 바이런이 마지막에 쓴 답안은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였고 이 답안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바이런의 시 ‘해럴드 귀공자의 순례여행Childe Harold's Pilgrimage’가 3일 만에 매진 한 후에 다음과 같은 말로 유명.‘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는 1646년, 잉글랜드 일기 작자, 정원사인 존 에블린(John Evelyn, 1620-1706)은 1644년 영국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2. 바티칸의 수장 레오 13세(라틴어: Leo PP. XIII, 이탈리아어: Papa Leone XIII; 영어 Pope Leo XIII, 재위 1878-1903, 1810-1903)
레오 13세는 19세기에 태어난 20세기에 선종한 최초의 바티칸의 수장이며, 68세에 즉위해 93세가 될 때까지 25년 동안 노릇한 최고령의 수장이다.
(1) 레오 13세는 1884년 4월 20일의 교황의 교서(敎書)인 ‘인류’(라틴어 Humanum genus; 영어 Human race, Humanity)에서 프리메이슨(freemason)에 대해서 악마의 활동이라며 공식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을 예수회와 연결시키는 것은 오류의 역사다.
다음과 같은 바티칸의 수장들도 격렬하게 프리메이슨에 저항한다.
클레멘스 12세(Pope Clement XII-In eminenti apostolatus, a papal bull in 1738), 베네딕토 14세(Pope Benedict XIV -Providas Romanorum, an Apostolic constitution in 1751), 비오 7세(Pope Pius VII-Ecclesiam a Jesu Christo, an Apostolic constitution in 1821), 레오 12세(Pope Leo XII-Quo graviora, 1826), 비오 8세(Pope Pius VIII-Traditi humilitati, an encyclical in 1829), 그레고리 16세(Pope Gregory XVI-Mirari vos, an encyclical in 1832), 비오 9세(Pope Pius IX – Qui pluribus, an encyclical in 1846) 등이다.
2013년 7월 28일 로마로 돌아오는 중에 회견을 갖는 가운데 프란체스코 수장은 바티칸에서 프리메이슨의 정치적 로비활동을 알고 있으며, 특별히 프리메이슨의 로비활동은 바티칸의 수장권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요소라고 선언했다(During a 28 July 2013 interview with reporters on a return flight to Rome, Pope Francis identified political lobbying at the Vatican, and specifically addresses the influence of "Masonic lobbying", as being a component of the "most serious problem" confronting his papacy).
이런 실례는 프리메이슨과 예수회가 공존할 수 없음을 증언한다
(2) 레오 13세는 예수회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이냐시오 데 로욜라(스페인어 San Ignacio de Loyola; 영어 St. Ignatius of Loyola, 1491-1556)가 1551년에 건립한 교황청에 소속된 그레고리오 대학교(Pontificia Università Gregoriana)에 편입해 졸업했고, 1828년 교황의 형 주세페 페치(Giuseppe Pecci S.J., 1807-1890)는 예수회의 탁월한 토미니즘 신학자이며, 비테르보 교구의 재속 성직자가 되었는데, 추기경단의 강력한 요청으로 교황은 1879년 형을 추기경으로 서임할 때 78세의 뉴먼을 부제급 추기경으로 임명함으로써, 뉴먼의 바티칸직행은 예수회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레오 13세는 1896년에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 임명에 대한 성사적 무효성(all Anglican orders absolutely null and utterly void)이 담겨있는 내용을 반포(頒布)한 회칙 (回勅)‘사도적 관심’(Apostolicæ Curæ)도 이를 증언한다.
3. 바티칸의 수장 프란체스코(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영어 Pope Francis, 재위 2013.03-, 1936-/에스파냐어 Francisco; 프랑스어 François; 독일어 Franz)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아르헨티나 출신이자 첫 예수회 출신 바티칸의 수장 프란체스코는 2019년 10월 13일 뉴먼을 시성(諡聖; 라틴어 canonizatio; 영어 canonization: 시성 심사를 마친 복자福者를 성인聖人의 명부에 올리고 온 교회가 성인聖人으로 공경하도록 허가하는 교황의 최종적 공식 선언)하여, 뉴먼의 시성작업이 예수회의 작품임을 온 세계에 선언한다.
4. 종합
뉴먼의 바티칸의 직행으로 영국 성공회의 몰락은 시작되었고, 후에 ‘킹 제임스 번역본’(King James Version, KJV)이라고 불리는 ‘흠정역(欽定譯)’(Authorized Version, AV)을 개역(改易: 고쳐 딴 것으로 바꿈)한‘영어개역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New Testament, 1881 Old Testament, 1885 Apocrypha, 1895)의 등장으로 영국 성공회는 석양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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