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자학사관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뉴라이트역사관에 대한 단상(斷想)!

아우구스티누스 2016. 10. 5. 15:15

불행, 다행, 글쎄... ‘헬코리아’, ‘헬한국’이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인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조선왕조가 일제의 식민지국가로 전락해 가장 불행한 시대라고 각인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사실 뉴라이트역사관의 조선왕조, 대한제국에 대한 거의 100% 부정적인 견해는 일본의 울트라 우파보다 심하면 심했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뉴라이트역사관의 주창자들은 조선왕조, 대한제국뿐만 아니라 고대시대의 ‘한사군위치’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한 자학사관(自虐史觀)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지면 관계상 조선왕조, 대한제국에 국한하여, 일본열도와 비교설명 하면서 그 실체를 파악할까 한다.

 

일본열도는 한반도와 중국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두 나라로부터 오랑캐나라라고 왕따를 당하다가 16세기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당시 세계 최강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남만학(南蠻學 또는 만학蠻學), 그 후엔 ‘란가쿠’(난학蘭學: 당시 네덜란드는 ‘화란和蘭’이나 ‘아란타阿蘭陀’로 표기했기 때문에 에도시대에 네덜란드에서 전래된 지식을 연구한 학문을 말하고, 서양의 학문, 곧 ‘양학, 洋学’은 란가쿠 이후에 들어온 영국과 프랑스 학문을 가리킴), 영학(英學)으로 이어지는‘양학’(洋學), 그리고 ‘이와쿠라 시세쓰단’(암창사절단岩倉使節団 또는 12개국 구미시찰단: 당시 46세의 특명전권대사인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의 이름을 따서 ‘이와쿠라 시세쓰단’이라고 부르며, 공식 사절단 47명을 포함해 수행원과 유학생까지 포함해 107명에 달하고, 기간은 1871년 12월 23일-1873년 9월13일 일까지, 곧 1년9개월28일) 등을 통해 서구열강의 선진문물을 스펀지처럼 그대로 받아들여 근대화된 문명대국으로 거듭난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철도와 통신, 조선 및 제철기술을 배우고, 영국과 독일의 헌법과 법제도를 모델로 하여 메이지헌법을 창출하며,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의 각국으로부터 건축기술을 배워 근대식건물을 짓고, 육군은 프랑스와 독일을 모방하며, 해군은 영국을 모델로 삼아 군국주의를 완성한다.

 

무엇보다도 일제는 독일의 프로이센(독어 Preußen; 영어 프러시아 Prussia)의 총리로 ‘철혈정책’(鐵血政策; 독어 Blut und Eisen Politik; 영어 the blood and iron policy)으로 독일을 통일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1815-1898)와의 만남을 통해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전수받으며 일제는 아시아국가에서 유일하게 서구열강과 맞장 뜨는 나라가 된다.

 

일제는 근대화를 이룬 국가와 국민만이 문명국가와 문명인으로 인정받고 그렇지 못한 국가와 국민은 야만국가와 야만인으로 멸시받고, 문명국가와 문명국가와의 관계는 조약이 필요하지만, 야만국가와의 관계는 조약 없이 그냥 접수해도 상관없다는 국제사회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파악한다.

 

예를 들어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 1841-1909) 경우 1885년의 톈진조약(천진조약天津條約), 1895년의 시모노세키조약(하관조약下關條約; 중국식 표기로 마관조약馬關條約이라고도 불림), 1889년의 메이지헌법공표, 1890년 양원제도에서 주도적 역할로 국제법을 준수하는 세련된 모습을 보여 주고, 미국 예일대학교는 1901년 개교 200주년 기념으로 이토에게 명예법학박사학위를 수여한다. 이토의 계산된 위선적인 행동이 서구열강의 지도자들에게 먹히자, 영일동맹과 ‘가쓰라-태프트밀약’을 근거하여 ‘을사늑약’을 일사천리로 해치우며 조일병탄의 기초를 완성한다.

 

일제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왕조, 대한제국은 중국청조를 중국명조와 구분지어 오랑캐나라고 업신여기고 교류하기를 꺼려 그냥‘소중화’로 만족하며 지내고, 서구열강과의 교류는 꿈조차 꾸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중국이 반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자동적으로 대한제국은 일제의 먹이감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수백 년 동안 서구열강과 교류하며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열도와는 달리 조선왕조는 서구열강과 교류할 수 없는 지리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도전과 응전’의 기회가 부재한 탓에 축적된 문화는 거대했지만 시스템자체는 근대화되지 되지 못했고, 과학발전에 기초한 군대의 무력으로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약탈식민지화의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국제정세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조선왕조가 서구열강과의 닫힌 세계에서도 500년 넘게 아시아에서 문화대국으로 존재했다면 위대한 나라구나 생각해야 하는데, 그저 조선왕조를 조롱하며 서구열강과 열린 상황에서 서구열강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아시아에서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호기를 이용하는 동시에 백인들의 호기심과 측은지심을 자극하여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일제를 찬양한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붙인다.

 

조선왕조나 대한제국, 조선백성이 무능하여 그런 것은 아니라 닫힌사회다 보니, 도전과 응전의 기회가 없어서 생긴 결과를 무조건 조선인(지배자나 조선백성을 아우름)을 폄훼하고, 일본인을 미화한다면 어불성설이다.

 

필자의 담론을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 읽으면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고 그저 근대화된 일제는 문명대국이고, 대한제국은 반문명국가라는 논리를 씹어대며 일제의 강점기를 미화하는 역사관을 뉴라이트역사관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부족한 면이 많이 있을지라도 한반도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와 성리학사상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기초하여 ‘인간존엄중심의 문화’를 견지한 반면 일제는 조폭문화, 깡패문화의 제국주의의 ‘비인격적인 문화’의 길을 걷다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전자와 후자가 만났는데, 후자가 전자를 강펀치로 날린 것이‘을사늑약’이요 ‘조일병탄’이다.

 

구한말 당시 근대화된 문명대국, 강대국이란 생명존중과 공존공생과는 거리가 먼 조폭, 깡패, 마피아사단의 우두머리처럼 전쟁을 잘 수행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다음과 같은 실례는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이와쿠라 시세쓰단의 일원인 나카에 조민(중강조민中江兆民, 본명은 도쿠스케篤介이며, 兆民이란 억조億兆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쓴 필명인데 대중의 입장에 서겠다는 자세를 의미, 1847-1901)은 호소카와 준지로(세천윤차랑細川潤次郞)에게서 란가쿠를 습득하고, 후에 나가사키(장기長崎), 에도(강호江戶: 도쿄)로 유학해 프랑스어를 배운다. 1871년 국비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하여 철학, 사학, 문학을 연구한다. 1874년 귀국하여 불학숙(佛學塾)을 열고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가르치고, 1881년 사이온지 긴모치(서원사공망西園寺公望)가 창간한 도요지유신문(동양자유신문東洋自由新聞)의 주필을 역임하며 서양의 민주주의사상을 보급한다. 1882년 불학숙에서 ‘정리총담’(政理叢談)이 간행되자, J. J.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 프랑스어 Du contrat social, 1762; 영어 The Social Contract)을 번역한 ‘민약역해’(民約譯解)를 실은 동시에 루소의 다른 텍스트인 ‘학문예술론’(프랑스어 Discours sur les sciences et les arts, 1750; 영어 Discourses on Arts and Science), ‘에밀’(Émile ou de l'éducation, 1762; 영어 Emile or on Education)을 참조하여 프랑스식 민권사상을 전파하고 메이지정부를 공격하는 데 앞장서며 ‘동양의 루소’로 대내외적으로 알려지자 메이지정부는 그를 완전히 왕따시킨다. 그 이유는 나카에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노선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대한제국의 ‘홍익인간이화세계’와 ‘인의예지신’은 동양의 민권사상이다. 그래서 나카에처럼 일제로부터 부정당한 것이다.

 

그리고 뉴라이트역사관의 주창자들 가운데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빨갱이에서 사상전환한 자들인데 70에 가깝거나 70을 넘은 고령자들이라, 이들은 전체주의나 독재주의가 뼈 속 깊이 각인되어서, 일제강점기, 3.15, 5.16, 1212의 의‘독재문화’, ‘헌정유린과 법질서파괴문화’, ‘조폭문화’, ‘깡패문화’, ‘오입문화’, ‘기생관광문화’,‘지역차별문화’, ‘한탕주의문화’, ‘일방적 명령하달식문화’, ‘획일주의적 전체주의문화’,‘악질일제찬양문화’, 수많은 고문피해자, 간첩조작피해자, 산재사망자, 산재피해자 등을 죽이거나 장애인으로 만든식의 ‘대한민국의 근대화주장’ 등의 생명경시의‘사탄의 문화’를 체질적으로 선호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문화를 펼치는 자들의 통치를 비판하시고 생명의 문화를 담당한 빛의 자녀들이 실행해야 할 정치철학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십자가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다.

 

“25.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26.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28.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하셨다.”(공동번역. 마태복음 20:25-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둠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탄의 정체를 당신의 생명의 문화, 빛의 문화와 비교하시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44.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공동번역. 요한복음 8:44)

 

“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개역한글. 요한복음 10:10)

 

“12.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공동번역. 요한복음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