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개념으로부터 자유
조선왕조는 달랑 원시형성리학노예사상만 주장하여 조선을 동빙(凍氷 freezing)시켜 일제의 36년 노예생활로 이끌었고, 살인마 김정일은 주체사상으로 북한사회를 냉동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한동포가 다양한 사상과 세계관을 들을 경우 냉동된 주체사상은 해빙(解氷 thawing)되어 마피아김정일체제는 무너진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획일적인 사상으로 결빙(結氷 freezing)시키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다. 다양한 사상이 꽃피웠을 때 국가는 부흥한다고 역사는 교훈한다. 그러면 한반도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좌-우파 개념과 그것으로부터 자유에 대해 논해보자.
I. 좌-우파의 기원과 의미
1792년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의장석을 중심으로 입헌군주제와 루이16(Louis XVI)세를 옹호하며, 부유한 상공업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 지주의 지지를 받은 온건성향의 지롱드당(Girondins: Gironde주 출신)이 의회의 오른쪽(Rightist)에, 노동계급과 농민, 수공업자, 가난한 하층민인의 지지를 기반으로 루이 16세의 처형을 주장하는 급진성향의 마라(Jean-Paul Marat),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등이 이끄는 자코뱅당(Jacobins: 제3신분의 대표들이 자주 모였던 수도원의 이름에서 비롯됨)이 의회의 왼쪽(Leftist)에 위치한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시기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공간적 은유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독일 관념론, 프랑스 공산주의, 영국 고전파 경제학을 두루 섭렵하며, 프랑스의 혁명, 영국의 산업혁명여파, 곧‘울타리치기운동’(enclosure movement)과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발명으로 인한 최초의 고효율의 신기술 혐오, 인간과 기계의 싸움인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배경삼아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자본론’(Das Kapital) 제1권을 집필하고, 1867년 4월 출판한다. 마르크스(Marx)사후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나머지 두 권, 곧 제2권은 1885년에, 제3권은 1894년을 출간하고, 그 이듬해 사망한다. 그리고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의 수정주의(修正主義)에 반대하여 마르크스주의(Marxism) 옹호론을 전개한 독일의 사상가 카우츠키(Karl Johann Kautsky)가 1905-10년에 마르크스(Marx)의 유고 '잉여가치학설사'(剩餘價値學說史)를 편찬ㆍ간행한다. 그래서 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이 등장한다. 좌-우파의 프랑스의 공간적 개념이 경제적 개념으로 바뀐다.
헤겔(Hegel)은 역사를 전개하는 원동력을 정신으로 보았지만, 마르크스(Marx)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생산력을 꼽았다. 마르크스(Marx)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이렇게 도식화한다. “원시공산제사회(primitive community)-고대노예제사회(slavery)-중세봉건제농노사회(feudalism 농노는 봉건영주에게 속한 농민)-근대자본주의사회(capitalism)-공산주의사회socialism)”. 마르크스(Marx)는 이 사상에 입각하여 영국이 인도를 지배함으로써 인도의 아시아식 생산양식, 곧 봉건제도를 파괴하고 진보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이식시켰기 때문에,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영국의 인도의 식민지지배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아시아입장에서 볼 때 마르크스(Marx)의 역사관은 철저히 유럽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Marxism)의 가장 큰 약점은 사유재산의 부정이다. 인간의 욕망, 탐욕을 간과한 맹자(孟子), 루소(Jean-Jacques Rousseau)처럼 성선설(性善說 doctrine of innate goodness)신봉자다. 인간은 자기 몫이 주어져야 열심히 일한다. 그게 없으면 무위도식(無爲徒食 idle life)으로 일관(一貫 consistency)하여 개인은 개거지가 되고 사회는 낙후되며 국가는 파멸된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Marxism)의 만민평등사상으로 자본주의에서도 노동당이 생겨, 노동자의 지위향상이 이루어지고, 복지정책 등의 인권향상에도 노력하고 있다.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의 경제영역이라고 하는 하부구조가 사회의 상부구조, 곧 정신영역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신이 없는 만능물질주의인 자본주의와 같다. 돈의 전능을 인정하는 자본가들이 진정한 유물론자이고, 세상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이상주의자, 공산주의자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시장에서 권력을 획득한 대기업들이 국가의 규제나 간섭을 피하기 위해 국가에 대해 이념적 공격을 감행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형태다.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마오쩌둥(毛澤東), 김일성 등이 추구한 사상은 마르크스(Marx)의 방대한 이론 체계에서 일부분만 떼어, 인민은 착취하고 자신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삼각형권력구조인 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 전제정치(專制政治 despotism)에 불과하여, 마르크스(Marx)의 공산주의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자본주의(시장경제주의)에 대응하는 면에서의 명목상 공산주의다.
한국의 좌-우파 개념은 구미선진국과 완전히 다르다. 구미선진국입장에서 좌-우파 개념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첫째, 경제정책에서 보면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 left wing)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 및 개입을 인정하고, 우파(右派)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은 시장원리에 따라 경제정책을 운영하는데, 미국의 부시(George W. Bush)행정부시절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시장만능주의는 허구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민주당출신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미 대통령은 1929년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뉴딜(New Deal)정책', 곧 정부가 경제를 시장만능주의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입하여 국민생활을 안정시킨다. 그래서 4선 대통령(1933-1945; 1932, 1936, 1940, 1944)역임으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정치역사를 장식한다.
둘째, 기업정책에서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 left wing)은 기간산업의 국유화 추진에 앞장서며, 우파(右派)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은 국유기업과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을 선도한다. 구미선진국에서 공기업의 민영화추진 때문에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어, 칼로 두부 자르듯 정책을 이원화해서는 안된다.
셋째, 사회정책에서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 left wing)은 평등과 분배, 복지 중시의 정책을 펼치며, 우파(右派)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은 경쟁원리에 따른 성과 배분을 중시한다. 총론입장에서 평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각론에 들어가면 상황이 다르다. 민주주의가 발전되지 않았을 때도 정치문제에서 유대민족이 12지파의 제비뽑기라든가 주사위던지기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듯이, 선거에서의 투표권행사의 평등원칙은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분야에서 능력주의 혹은 성과주의를 무시하고 평등만 고집하면 가정이나 나라 전체가 손가락만 빠는 신세가 된다. 사회약자보호의 원칙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대한민국처럼 소외계층은 배제되고 공직자들의 손에서 놀아나는 눈먼 공금이 너무 많으면 심각한 문제다.
넷째, 국가운영에서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 left wing)은 국가역할을 증대하는 큰 정부를 지향하고, 우파(右派)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 은 국가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정책이 없었다면 21세기의 선진강대국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작은 정부, 개발도상국에선 큰 정부가 필요하다.
위에서 본 것처럼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 left wing), 우파(右派)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의 이분법의 구분은 부질없는 짓이다.
II. 뇌구조에서 고찰한 좌-우파개념
21세기 인간은 거시적으로는 최첨단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우주(宇宙)의 지배로 나아가고, 미시적으로는 '나노(nano: 난장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nanos or nannos, 라틴어 nanus, 영어 dwarf에서 유래하며, ‘10억분의 1’이라는 의미)물질 연구' 와 소우주(小宇宙)인 뇌과학(腦科學, brain science)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뇌에 대해 살펴보자.
우반구에선 노르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방출되어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주관하며, 익숙해지면 그것을 좌반구로 넘긴다. 그래서 우반구는 창의적, 감성적, 감각적, 직관적, 비합리적이라면, 좌반구는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우반구 인간형은 시각적인 요소와 직관적인 이미지 파악에 능하여 연상 활동을 잘하며, 융통성, 독창성 등 창의적 능력이 뛰어나 두뇌회전이 빠르다. 세부적인 것(각론)보다는 전체(총론)를 파악하는 데 뛰어나다. 그런데 시간 개념이 없고,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익숙하지 않아 늦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좌반구 인간형은 정보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언어, 단어, 상징, 숫자, 각론에 강하다. 그래서 분석적이고,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잘 세워 시간표대로 따르는 데에 익숙하다.
좀 더 단순화하면 새 장비를 쓰기 전에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좌반구 인간형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반구 인간형이다.
동양인들은 전체적으로 접근하고 관계와 변화를 중시하는 우반구형이라면, 서양은 몇몇 선택된 사물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그 속성을 분석하고 범주화하여 그것을 지배하는 규칙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는 경향이 강한 좌반구형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르네상스는 우반구 인간형이 주도했고, 계몽주의는 좌반구 인간형이 선도한 것이다.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전이 근대화로 이어지고, 좌반구영역이 발달한 백제분국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고, 우반구영역이 발달된 한반도는 근대화의 낙제생이 되어 일제의 36년의 노예생활의 수모를 겪는다. 다행스럽게도 거대담론(메타담론 macro discourse, meta narratives, grand theory)보다 미시담론(micro discourse)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21세기의 탈근대주의(postmodernism)는 한반도의 시대를 위한 것이다. 애국가 하느님이 내려주신 최고의 축복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10년 12월 28일 영국 일간 가디언(Guardian)지의 보도에 의하면, 영국 런던대학인지신경과학연구소 게라인트 리스 교수가 실험했는데, 보수주의(우파)자들은 뇌의 편도체 부분이, 곧 감정 특히 공포감을 느끼는 역할을 수행하는 부위가 두껍고, 자유주의(좌파)자들은 전측 대상회 부분이 곧 외부 정보 수용과 학습 등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꺼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의하여 뇌 특정부위 두께에 따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 곧 진보(좌파 또는 좌익)와 보수(우파 또는 우익)가 결정됨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에서 보면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 left wing), 우파(右派)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의 이분법의 구분은 생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해서 종합적인 생체구조를 가져야 한다.
애플(Apple Inc.)은 좌반구와 우반구의 인간형의 공동 창업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후배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는 선배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만든 컴퓨터 설계도를 구경한 후 “우리가 손해를 본다 해도 회사를 차려볼 수는 있잖아. 일생에 한 번, 회사를 차려 보는 거야.”하며 실물을 만들어 팔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후배 스티브(Steve)의 말에 선배 스티브(Steve)는 감동한 나머지 그렇게 하기로 한다. 잡스(Jobs)는 외향적이며 탁월한 직관을 지닌 몽상가이자 냉혹하고 인정사정없는 협상의 달인이며 사업가이고, 워즈니악(Wozniak)은 내향적이며 고등학교 때에는 가짜 폭탄을 만든 죄로 유치장 신세를 질만큼 천재기술자, 발명가다. 두 대조적인 기질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III. 커피와 알코올의 취향에서 본 좌-우파개념
19세기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자본가들은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깨워 돈을 버는데 목표를 두었고, 대부분 노동자들은 그날그날 생존에 만족하고 알코올을 들이키며 노동의 시름을 달랬다. 자본가의 이성적인 태도와 뛰어난 사업능력과 노동자의 취생몽사와 무능력과 게으름이 대비되었다. 커피가 부르주아지(bourgeois)의 합리성, 냉정함, 개인주의를 상징한다면 알코올은 프롤레타리아(prolétariat)적 비합리성, 감성, 공동체를 상징하게 되었다.
차(茶)는 중국차, 일본차, 홍차로 구분된다. 중국 이난성에서 최초로 차가 재배되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최초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차를 대량으로 구입해 동인도회사에 보내면서 ‘차문화’가 시작됐다. 홍차의 유래는 이렇다. 영국이 중국에서 찻잎을 운송하는 도중 온도와 습도가 높은 적도를 통과할 때 찻잎이 발효되어 홍차가 되었다는 설과, 또는 18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반 발효차인 우롱차를 개량해 만든 것이 그 뿌리라는 설이 있다. 미국은 1773년 12월 16일 밤 영국본국으로부터의 차(茶) 수입을 저지하기 위하여 일으켰던 사건, 곧 보스턴차사건(Boston Tea Party) 때문에 커피문화권으로 바뀐다.
커피와 차(茶)의 차이점은 영어의 표현에서 나타난다. 작업 중의 중간 휴게시간을 'coffee break'라고 하는데, 이것은 커피마시고 난 후 일의 피치를 올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차(茶)를 마시는 시간은 ‘tea time'라고 하며, 이것은 한숨 돌리고 쉬고 싶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차의 문화가 자리 잡은 영국은 도태되었고, 미국은 커피문화를 정착시키면서 세계를 제패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1920년대 금주법 때문에 코카콜라를 선호해 코카콜라가 미국을 상징하는 문화로 자리 잡는다.
대한민국국민은 음주가무에 뛰어나지만 다행스럽게도 커피마니아(coffeeholic)층도 두꺼워 좌-우파가 동시적으로 대등하게 공존하는 최고의 행운아 국가에 속한다.
IV. 대한민국에서의 좌-우파개념
한반도에서는 일제의 36년의 노예생활, 미군정시기, 분단국가로 말미암아 유럽의 좌-우파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정착된다.‘좌파=빨갱이=공산주의’(종북좌빨), ‘우파=민주주의=자본주의’ 이런 양분법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에서의 삶이란 출구 없는 무한 고리 속에 갇혀있는 거와 같다. 그러면 대한국에서의 좌-우파 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1) 일제의 36년의 노예생활
일본과 연합국이 맺은 평화조약인‘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Treaty of San Francisco, Treaty of Peace with Japan, San Francisco Peace Treaty)에서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총리는 이렇게 밝힌다.“한국은 일본과 전쟁상태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한국이 조인국이 되면 재일 한국인들은 연합국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와 보상금을 주장할 것이다.”“100만 명에 이르는 재일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라며 이들이 과잉 보상청구를 할 경우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비열한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는 패전 후 일본의 재생을 꾀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재일한국인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며 과도한 배상부담에서 벗어난다.
1905년 춘원이광수(春園李光洙)는 1919년 도쿄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설립에 참여하여, 독립신문주필로도 활동하였다. 실력양성을 부르짖으며 “독립국민의 자격자를 키우라.”라는 안창호의 권고에 감화하여, 귀국 후 이광수는 1920년 흥사단에 가입하고 문학 활동과 저술을 통한 국민계몽을 하기도 한다. 1937년 흥사단의 국내조직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살이하다가, 1938년 병으로 보석되어 휴양 중 3월 10일 자신의 스승격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도산 안창호가 병사하자, 이광수는 커다란 충격과 실의에 빠져, 그 해 11월 3일 병보석 상태에서 수양동우회 사건의 예심을 받던 중 전향을 선언한다.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회장이 된다. 1940년 2월 20일 매일신보 사설란에다가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浪)이라는 창씨개명을 발표하고, 다음과 같이 창씨개명을 적극 옹호하는 한편, 자신의 창씨개명을 합리화한다.
“ 내가 향산(香山)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과 독법을 같이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香山光浪)이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내선일체를 국가가 조선인에게 혀하였다. 이에 내선일체운동을 할 자는 기실 조선인이다. 조선인이 내지인과 차별 없이 될 것 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따라서 차별을 제거하기 위하여서 온갖 노력을 할 것밖에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성명 3자를 고치는 것도 그 노력중의 하나라면 아낄 것이 무엇인가. 기쁘게 할 것 아닌가. 나는 이러한 신념으로 향산이라는 씨를 창설했다.” 8·15 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1950년 만포(滿浦)에서 병사한다.
이광수는 친일행위를 변호하기 위해 21세기처럼 분명하게 정착 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소련의 공산주의추종자들을 "신식 사대주의자". 곧 구식 위정척사파와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라고 비방한다.
이처럼 일본이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친일파로 변질한 매국노들이 자신들이 살기위해서 친일파보다 공산주의자가 더 나쁘다는 너대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새긴다. 21세기 시각으로 볼 땐 대한민국의 이익을 저버리고 미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스파이 고위공직자들, 일제로부터 쩐 등을 받아 처먹고 일제의 36년노예생활을 근대화로 치장하는, 애국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종일파군상(群像 people)은 살인마김정일체제추종자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제거해야한다.
(2) 지역감정
태조왕건(太祖王建)이 유훈(遺訓)으로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의 8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바깥은 배역(背逆)할 지세이니 이곳 사람을 기용하지 마라”
943년 태조왕권(太祖王建)이 총애하던 중신(重臣) 전라도 출신 박슬희(朴述熙)를 내전(內殿)으로 불러들여 훈요십조를 전했다는데, 호남을 피하라는 훈요십조를 호남인인 박술희(朴述熙)에게 전했을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혜종(惠宗)이 전라도 나주 출신의 왕건의 비(妃)인 장화왕후 오(吳)씨에서 태어나 제2대 왕이 되었는데, 8조가 적용될 수 없다. 태조왕건(太祖王建)이 평생 사표로 삼았던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과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의 대가 도선국사(道詵國師)와 최지몽(崔知夢)은 전라남도 영암출신이고, 왕건(王建)이 말년을 함께 한 동산원 부인과 문성왕후는 견훤의 외손녀로 승주태생 순천박(朴)씨다. 더욱이 왕건(王建)을 대신해서 죽은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도 곡성현(谷城縣)출신이다. 그래서 ‘훈요십조’(訓要十條)의 8조는 조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혜종(惠宗)이 후사를 결정하지 못한 채 병사했기 때문에 후대에 훈요십조를 찾아낸 신라계가 임의로 작성한 것으로 본다. 현종시대 거란군 40만 명이 침입하여 훈유십조(訓要十條)원본이 고려사사초와 함께 소실되었다가 왕건(王建)사후 80년 후에 신라의 고관출신 최승로의 손자 제안(齊顔)이 사가(私家)인 최언위의 손자 최항(崔沆)의 집에서 원본을 구했다는 사실은 최항(崔沆) 혹은 최제안(崔齊顔)이 위작했음을 보여준다.
조선후기의 실사구시(實事求是)학풍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은 충남 공주(장기면)출신이다. 그는 풍수지리사상으로 사회가 혼란하고, 자신도 유배되는 신세라 20여 년 동안 전 국토를 방랑한 끝에‘택리지’(擇里志: 八域志 Where to live)를 집필한다. 이 저서는 18세기 조선사회를 파악하는 훌륭한 인문지리서다. 이중환은 이 저서에서 명당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리(風水地理), 생리(生利: 경제생활로 얻는 이득), 인심(人心: 지방의 좋은 풍속). 산수(山水: 좋은 자연환경)가 서로 맞아야 한다. 팔도총론에서 평안도부터 시작하여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 순으로 국토를 고찰하고 있으며, 전라도와 평안도는 가보지 못하여 간접적으로 정보에 접하였다고 한다.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이렇게 밝힌다. 태조 이성계(太祖, 1335-1408재위 1392년-1398년)는 ‘서북방(평안도와 함경도)사람은 크게 쓰지 말라’는 경고에 평안도와 함경도에는 300년 동안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고 설령 과거급제한 사람이라도 현령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고향도 함경도 영흥(永興)인데 자기처럼 반골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등용을 막음으로써 조선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전라도에 대한 이중환(李重煥)의 평가가 이성계의 조언과 비슷함을 상고할 수 있다. 그러면 전라도에 대한 이중환(李重煥)의 평가를 살펴보자.
전라도는 본래 백제 땅이다. 후백제 견훤이 신라 말에 이 땅을 차지하여 고려 태조와 여러 번 싸워 자주 그를 위태롭게 했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제압한 뒤 백제사람을 미워하여 “차령(충남 공주시 유구읍 예산군 신양면 경계에 있는 대)이남의 물은 모두 거꾸로 흐른다. 차령이남 사람은 등용하지말라.”그래서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동안 큰 인물이 난 적이 없다. 이중환(李重煥)은 계속해서 말한다. 전라도사람은 노래를 좋아하고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며 행실이 가볍고, 영리하고 교활함을 숭상하여 그른 일에 움직이기 쉬운 곳이다. 학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상도에 비해 과거에 올라 벼슬에 오르는 자가 적으며 학문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데 힘쓰는 자가 적다.
이중환(李重煥)은 기호지방을 제외하고 전라도만을 백제의 땅이라고 언급한다. 일제도 식민통치를 원활하기 위해 분석한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에서 한반도가 백제계, 고구려계, 신라계 등이 섞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라계라고만 지칭한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지 않는가? 이중환(李重煥)의 전라도사람의 평가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전라도사람의 성격이 백제분국의 일본인의 성격임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인과응보론에 의하면 한반도의 신라계가 백제계의 전라도를 폄훼해서 백제분국인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은 것이다.
이중환(李重煥)은 경상도에 대해 언급할 때 경상도는 인재의 창고이며 선조이전에 국정을 담당한 자가 모두 경상도사람이었지만, 인조 때부터 소외되었고 본다. 이것은 특히 노론주도로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경종 지지자인 소론과 남인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대반격을 일으킨 조선후기 최대반란사건과 관련 있다. 그 사건은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또는 무신란(戊申亂)이며, 이 반란 때문에 경상도는 박정희의 5. 16 쿠테타까지 반역의 땅, 곧 21세기의 빨갱이의 집단으로 낙인찍힌다.
이인좌(李麟佐)는 다음과 같이 격문을 선언한다.“ 경종이 억울하게 죽었다. 영조가 숙종의 왕자가 아니므로 왕대비의 밀조(密調)를 받아 경종의 원수를 갚고 소현세자의 적파손(嫡派孫)인 밀풍군 이탄 (李坦)을 왕으로 세워 왕통을 바르게 한다. ”1728년(영조 4) 3월 15일 과격한 소론(少論)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어 남인과 손잡고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기 위해 경종원수를 갚는다며 반란을 일으키다, 갑자기 내린 폭우와 조정의 토벌군이 소유하고 있는 위력적인 신무기 신기전(神機箭) 때문에 실패하지만, 홍경래란, 진주민란, 임술민란 동학란 등에 영향을 미친다.
1728년 3월 27일 체포된 이인좌(李麟佐)는 고개를 당당히 들고 영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대감! 대감의 얼굴과 선왕(숙종)의 모습은 너무 다릅니다. 선왕은 당신처럼 그렇게 수염이 많지 않았어요. 대감은 선왕의 아들이 아닙니다.”몸을 바르르 떨던 영조는 갑옷을 입고 무장한 상태에서 칼을 들고 곧바로 이인좌(李麟佐)의 목을 자기 손으로 베어버린다.
조선왕조실록’은 (영조9년 2월 25일, 영조13년 7월 1일, 영조16년 12월 5일)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또는 무신란 戊申亂)의 사상적 연원을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으로 소급 적용한다.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으로 소론과 경상우도 남명학파(南冥學派 또는 江右學派)를 비롯한 남인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율곡이이(栗谷李珥)학풍을 추종하는 기호지방출신의 노론주도로 정국이 운영되다 일제 36년의 노예상태로 전락한다. 남인세력은 철저하게 차별을 받고, 이러한 차별은 박정희(高靈朴氏) 전 대통령의 등장할 때까지 계속된다.
조선왕조시대 왕과 종묘사직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충신이요, 왕에게 반기를 들면 역적이다. 이것은 원시형성리학노예사상의 선악의 이분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의 강약, 곧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사상에 입각한 것인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21세기에서도 MB정부를 배출한 MB의 고향 일본(오사카)과 MB의 성장지역 포항은 충신지역이 되고 그 이전의 정부를 배출한 전라도는 빨갱이집단이 된다. 그래서 MB정부와 경상도는 살인마김정일체제는 증오하지만 일본에겐 한 없이 너그럽고, 학자들, 학생들, 정치가들은 일본으로부터 쩐 등을 받아 챙기며 일제36년의 노예생활은 한반도의 근대화를 위한 시혜(施惠 favor)였다고 일왕과 일본을 위해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무리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고향이 아닌 필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오직 대한민국의 이익과 국민의 사랑을 위하여 살면 된다.
필자는 태조이성계가 묻고 정도전이 답변한, 다음과 같은 팔도에 대한 평가가 중립적인 견해라 생각한다.
경기도: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이 아름답고 조용한 성품(鏡中美人)
충청도: 밝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淸風明月)
전라도: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느다란 버드나무같이 친절하고 사교성이 있는 성품(風前細柳)
경상도: 소나무와 대나무 같이 곧은 절개를 가진 품성(松竹大節)
강원도: 바위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품성(岩下老佛)
황해도: 봄 물결에 돌을 던지면 잔잔한 파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조용히 호흡하듯 하는 품성(春波投石)
평안도: 산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 같은 품성(山林猛虎)
함경도: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와 같이 강인하고 이익을 탐하는 성품(泥田鬪狗). 함경도 출신 이성계가 안색이 붉어지자 정도전은 얼른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이 우직한 품성(石田耕牛)을 지녔다고 한다.
(3) ‘매카시즘’(McCarthyism)과 ’네카시즘‘(Necarthxism)
1950-1954년에 미국을 휩쓴 반(反)공산주의 ‘매카시즘’(McCarthyism) 선풍이 있었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깡패적인 극우보수정치가 매카시(Joseph R. McCarthy)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매카시(McCarthy)는 경력위조, 상대방에 대한 명예훼손, 로비스트로부터의 금품 수수, 음주추태 등으로 재선에 자신이 없자 자신의 정치적 조언자로부터 귀가 번쩍 뜨일 말을 듣는다. 그것은 ‘반공‘이란 단어다. 1950년 2월 매카시의원은 "미국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명단을 갖고 있다."고 뻥깐다. 제32대 미 대통령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의 뉴딜정책’(New Deal Policy)과 제34대 미 부통령을 지낸 제33대 미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의 사회복지정책인‘페어딜 정책’(Fair Deal)등도 매카시즘(McCarthyism)의 광풍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였는데, 매카시(McCarthy)가 미국육군을 공산주의자, 간첩이라고 비난하자, 제 34대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는 크게 분노하며 군과 장교들에게 매카시(McCarthy)에 대한 논박을 허락해, 매카시(McCarthy)는 추락한다.
이렇듯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정적을 논리적인 이론이나 근거 없이 빠돌이(빨갱이)로 몰아 탄압하는 반공의 정치적 상품화를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고 한다. 21세기엔 네티즌(netizen)과 매카시(McCarhy) 가 결합한 단어인 ’네카시즘‘(Necarthxism), 곧‘인터넷 마녀사냥’이 심각하다. 관련 없는 사람을 무고하게 단죄하는데 미국의 ‘매카시즘’(McCarthyism) 선풍이 재현되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이런 ‘매카시즘’(McCarthyism)과 ’네카시즘‘(Necarthxism)이 생성된 배경에 대해서 고찰해보자.
먼저 이승만 전 대통령과 죽산 조봉암(竹山曺奉岩)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죽산(竹山)은 1919년 3ㆍ1운동 이후 독립운동과 조선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 1946년 공산당을 탈당하고 전향해 1948년에는 제헌국회의원이 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농지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주가 중심인 한민당의 저항을 뚫고, 좌파의 공세도 차단하고, 농민의 지지도 확보하는 1석3조를 위해서 과거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 같은 인물이 필요해 죽산(竹山)을 정권의 초대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한다. 그 효과는 6·25 때 농민들이 인민군에 호응하지 않았던 점으로도 입증된다. 죽산(竹山)은 1950년에 제2대 국회의원에 재선돼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으나 바로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1952년 직접선거로 이뤄진 제2대 대통령에 출마해 당시로서는 금기라고 할 수 있던 평화통일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워,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진통일론을 외치는 자유당 이승만에게 찍힌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만 다시 낙선한다. 1957년 진보당(進步黨)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1958년 5월 국회의원선거에 지역구후보를 내세워 원내에 진출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죽산(竹山)을 초대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해 농지개혁을 단행해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졌지만, 이젠 죽산(竹山)이 자신과 자유당의 장기집권에 거추장스러운 인물이 되자 경찰-육군특무대-검찰을 이용해 그를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무기불법소지로 기소하게하고 사법부로 하여금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시킨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간첩을 초대농림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자신은 간첩의 괴수라는 자가당착(自家撞着 self-contradiction)에 빠지지만, 그런 논리에 개의(介意 caring about)치 않는 타고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사상가요 실천가다. 이런 기질이 미국 및 일본과의 외교관계에서 한반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유감없이 발휘되기 때문에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정치란 다 그렇기 때문이다. 사실 한반도엔 국내보다 국제정치를 위해 선악의 이원론을 따르는 노예도덕주의자보다 힘의 강약에 입각한 주인도덕을 추구하는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정치가가 필요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기질을 살펴보자.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편안히 지낸 사이비애국자, 대통령병에 걸린 환자라고 혹평 받아왔다. 그가 귀국해서보니 국내정치기반이 없고, 더욱이 쩐가지 없자 친일파지주와 일제고위관료을 지냈던 매국노들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으려고‘반민족행위조사특별위원회’를 해산시킨다. 물론 여기에는 미군정의 입김도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를 희생시키고 일본을 통해 아시아정책을 수립하는데, 한반도에서 자꾸 친일파제거라고 떠드니 못 마땅했다. 왜냐하면 친일파가 바로 일본사람과 동일해 자신들이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다. 친일파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미군정의 환대에 환호하고 일왕숭배에 앞장 선 것처럼 반공에 앞장선다. 6. 25전쟁 이후에는 다른 양상을 띠지만, 6. 25이전에는 ‘친일파=반공=종미파’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조봉암이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 당하자 전제주의자 살인마 김일성은 죽산(竹山)을 자신들의 편으로 해석하고, 죽산(竹山)의 시신은 망우리에 묻혀있는데,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죽산(竹山)의 가묘를 만들고, 노동당이 발간한 책들은 죽산(竹山)을 위대한 애국자로 칭송하며, 진보당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였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한반도에선 죽산(竹山)을 빨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죽산(竹山)은 사형당하기전 다음과 같이 말을 남긴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죽산(竹山)의 유언도, 정치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의 강약의 마키아벨리(Machiavelli)사상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권력에 의한 사법살인을 저지른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결국 죽산(竹山)사후, 아홉 달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길에 오른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한 50년대 대한민국의 정치다.
죽산(竹山)사형 집행 52년 후인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관 13명, 주심 박시환대법관))에서 간첩혐의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은 무죄이고, 1959년 내려졌던 사형 판결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신원을 복권했다.
둘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살펴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바늘이라면 김종필 전 총리는 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의 만남은 이렇다. 1949년 5월 육사 8기로 졸업한 15명의 신임소위들이 박정희가 일하는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속된다. 1951년 김종필은 박정희의 셋째 형 빨갱이 박상희(朴相熙)의 큰 딸 박영옥(구미초등학교교사)과 결혼한다. 그래서 박정희와 김종필은 혈연관계로 발전한다.
빨갱이 황태성은 박정희 셋째 형 박상희 친구로서, 박상희와 조귀분(김종필 장모)의 중매를 선다. 박상희와 황태성은 1946년 10월 대구 좌파시위에 적극 가담한다. 황태성은 선봉에 서서 군중을 선동하는 연설을 하고, 박상희는 경찰의 집중사격을 받고 사망한다. 황태성은 이북으로 도망가 북한 무역상 부상을 지내다, 63년 12월 14일 사형집행을 당하고, 동년 12월 17일 박정희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박정희의 정치 자금 조달책임자 김성곤은 1946년 10월 대구 좌파시위 때 인민위원회재정부장을 역임했던 빨갱이다.
1948년 11월 11일 소령 박정희는 남로당프락치로 체포된다. 사형당하지 않으려고 3천명에 달하는 군내 남로당 명단을 군 수사기관에 넘겨줄 뿐만 아니라 군내 남로당의 조직 표까지 그려서 제출한다. 동거녀 이현란은 빨갱이가 싫어서 남한으로 피난 왔는데, 자신이 그토록 저주하던 빨갱이와 한방에서 뒹구는 자신의 모습이 서러워서 도망간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자 자신의 콤플렉스, 곧 친일파, 빨갱이, 구테타로 인한 민주주의 및 헌정 파괴자, 장기집권으로 인한 인권 탄압자, 배신자, 호색가 등 오명을 씻기 위해 반공을 국시(國是)로 하여 경제개발에 매진(邁進 dashing forward)하여 21세기 선진강대국대한민국이 있게 한다. 그래서 제3세계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이 경제발전의 아이콘이 되고, 구미선진국은 박 전 대통령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여긴다. 하순봉 경남일보 회장이 ‘나는 지금 동트는 새벽에 서 있다’에서 “박정희가 1979년에 서거하지 않았다면, 1981년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핵무기를 내외에 공개하고 하야하려 했다. 후계자는 JP, 김종필이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변신할 줄 아는 위대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사상가였다.
셋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살펴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인마 김정일형님, 거짓말쟁이, 군모술수의 대가, 지역감정이용자, 대통령병환자 등으로 낙인찍혔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출신으로 한국 내 각계의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시기, 곧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절, 대한민국 주재 대사(86-89년)를 역임하고, 중국 톈안먼(天安門)사태 등이 벌어지던 격동의 시기 중국 주재 대사(89-91년)를 지냈던, 릴리(James Roderick Lilley)는 모든 서류 검토 후 “김대중이는 공산주의자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DJ는 종북좌빨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DJ는 또한 대한민국 최초로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에게 평생 따라다녔던 종북좌빨의 꼬리표를 떨쳐버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한반도를 뛰어넘어 전 세계적인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끊임없이 변신할 줄 아는 위대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사상가였다.
넷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살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인 권양숙 여사의 조부모와 부친 권오석(權五晳)이 6.25남침시 친북좌익활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에서 추진한 신자유주의경제체제 구축, 한미FTA추진, 이라크 파병 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북좌빨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미국 부시(George W. Bush)전 대통령이 동갑내기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좋아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한나라당에 패할 줄 뻔히 알면서도 지역주의타파를 위해 기득권을 내 던지고 국회의원후보로 여러 번 나와서, '바보 노무현' '노짱'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노사모)'이 결성되어 대통령까지 오르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원시형성리학노예사상의 수직문화, 권위주의를 깨뜨리고 주체적인 인간형을 제시한 수평문화의 창출은 역대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래의 대통령도 해 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이다.
이처럼 정치란 미묘해서 이념이나 선악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햇볕정책 등을 근거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재임기간을 종북좌빨정권10년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초등학교수준도 안 되는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유치한 짓이다.
결론적으로 ‘수꼴’(수구꼴통, 꼴통보수)과 ‘좌빨’(빠돌이)이란 용어는 자신의 사상을 합리화하고 타인을 부정하고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에 불과하다. 곧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행위이다. 한마디로 유치한 짓거리가 철없는 어린이 신발을 신고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독서를 하면 다 수용할 수 있는 사상인데, 독서를 멀리하는 우뇌형한반도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한심할 뿐이다.
V. 좌-우파개념 이해방법
사상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성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의 관계성에 너무 치중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합바지가 될 수가 있고, 자신의 정체성만 강조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독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 정체성과 관계성을 잘 유지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포용정신이다.
우리가 프랑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우파 드골(De Gaulle)과 좌파 사르트르(Jean-Paul Sartre)다. 1958년 프랑스 보호령인 알제리(Algérie)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키가 작은 전문적 시위자 사르트르(Sartre)는 알제리(Algérie)를 지지하는 투쟁에 가담한다. 여기에 가담한 모든 사람이 체포되었으나 그만은 제외된다. 각료 한 사람이 드골(De Gaulle)대통령에게 그 이유를 묻자, 대통령은 “사르트르(Sartre)자신이 프랑스인이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한다. 제2차 대전의 영웅인 자신에 대해 집요한 비판과 독설과 인신공격을 퍼부었던 사르트르(Sartre)를 치외법권적 존재, 곧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인정한 드골(De Gaulle)의 포용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둘째, 다양성존중이다.
프랑스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는 스피노자(Spinoza)를 “철학자들의 그리스도”라고 표현한다. 스피노자(Spinoza)자신도 무신론자, 유물론자로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는 과학지식을 중시하면서도 직관적 체험을 존중하고, 종합적인 틀 속에서도 개체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종교적 심성을 지닌 동시에 탈종교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상의 다양성을 존중해야한다.
셋째, 조화의 정신이다.
헤세(Hermann Hesse)는 ‘유리알유희’(Das Glasperlenspiel 1943)에서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대립된 이원성, 곧 삶과 죽음, 참과 거짓, 저주와 축복, 빛과 어둠 등을 조화 융합시킨 공로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우리도 이념의 이원성을 하나의 협주곡을 이루어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VI. 나가는 말
빨간색에는 긍정과 부정이 있다. 먼저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빨간색의 공휴일, 여인의 빨간 입술, 빨간 카펫, 빨간 소고기살, 빨간 고추, 빨간 사과 , 빨간 수박, 붉은 악마의 응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 빨간 십자가 등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공업대 연구팀은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으로 면직물티셔츠를 염색한 뒤 자외선 차단 정도를 측정한 결과 붉은색은 자외선차단효과가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재정상태나 게임에서의 빨강경고, 육체적 쾌락을 얻기 위해 찾는 홍등가,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부정한 여인, 화가 나면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빨갱이 등등이다. 이렇듯 빨간색에 모순이 존재하듯 우리의 삶과 역사도 상대적이며 모순의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화해하고 용서해야한다.
그러므로 차기 대통령은 좌우파 논쟁을 잠재우고 화합시킬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하느님과 교통하도록 하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한1서 2:2. 개혁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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