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사상의학(四象醫學)에서 본 대한제국쇠망

아우구스티누스 2010. 9. 24. 11:09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Montesquieu 1689-1755)는 자신의 저서‘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 1748)에서 법의 풍토적 원인(제14권-제18권), 국민정신(민족정신)(제19권)그리고 법의 사회적 원인(제20권-제26권)을 다루면서, 생태적 환경과 국민정신과 실질적인 삶에 대한 태도의 관점에서 법을 논한다.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은 자신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라고 하면서 투쟁하는 민족과 투쟁하지 못하는 민족성에 대해 언급한다.

 

    조선후기의 소론계열의 인문지리학의 선구자 청담 이중환(淸潭 李重煥 1690-1752)은‘택리지’(擇里志: 八域志)에서 이전의 풍수지리를 벗어나 지리(地理: 지리적 환경), 생리(生利: 경제적 환경), 인심(人心: 문화적 환경), 산수(山水: 자연적 환경)의 관점에서 조선8도를 다룬다. 상해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도 1864년부터 1911년까지의 한국근대사를 다룬‘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한국인의 심성과 품성에 대해 말한다. 뿐만아니라 1927년 조선총독부도 조선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조선인의 사상가 성격’(김문학 옮김. 북타임)이란 책을 대외비로 발간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볼 때 한 국가의 백성들이 갖고 있는 기질과 성격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동무 이제마(東武 李濟馬 1837-1900)의 사상의학(四象醫學)관점에서 대한제국쇠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필자는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의 ‘ 비신화화’(非神話化 독어 Entmythologisierung, 영어demythologization)에 입각한 실존적해석 (existential interpretation)과 마르틴 캘러(Martin Kaehler 1835-1912)의 두 역사관, 곧  '일반역사'(독어 Historie 또는 Weltgeschichte, 영어 world history-historical, objective and chronological history)와 '실존사'(독어 die Geschichte 또는 Existenzgeschichte, 영어 historicness-historic or existential history)에 근거하여 단군사를 21세기 언어로 해석하고자 한다. 곧 단군사에서 대한민국의 실존적 메시지, 케리그마(kerygma)를 발견하고자 한다.

 

    후한서(後漢書)동이전(東夷傳)을 보면 예(濊)족(동예와 여진족)이 호랑이를 신으로 제사지낸다고 기록되어있다. 예족은 호랑이 토템족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맥(貊)족은 곰을 숭배해서 곰 토템족이라고 부른다. 환웅은 중앙아시아 바이칼호에서 출발한 유목민의 신, 곧 천신족을 상징한다.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유목사회의 신과 농경사회의 신과의 결합, 곧 북방의 유목민족과 남방의 농경민족의 연합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환웅)과 자연(웅녀)의 결합을 통해 인간과 삼라만상이 생명으로서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생명사상을 보여주고, 21세기의 생태사상을 대변한다.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고 이것을 먹으며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한다. 동굴도 어두운데 거기에다 쓰고 매운 쑥과 마늘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함석헌(1901-1989)은 한국 역사의 기조를 ‘치욕’이 아니라 ‘고난’이라고 정의한다. 동굴 속의 어두움, 쓴 쑥, 매운 마늘은 수난을 상징한다. 쑥과 마늘은 언뜻 보기에는 먹기 역겨운 음식이지만 이것을 참고 먹으면 도리어 인간에게 새 활력을 주듯이 수난의 의미 역시 그렇게 해석한다. 한민족은 수난을 정복하여 없애려 들지 않고 언제나 수난의 밤이 갈 때까지 조용히 참고 견딘다.

 

    이제마는, 자신은 태양인(太陽人)에 가깝고, 당시의 조선민중들의 70%는 태음인(太陰人)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21세기에 와서도 한국인의 체질은 태반(太半)이 태음인(太陰人)과 소음인(少陰人)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비율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태음인(太陰人)과 소음인(少陰人)의 기질은‘성자형’(聖者形)에 가깝고, 태양인(太陽人)과 소양인(人少陽)의 기질은 ‘영웅형’(英雄形)에 가깝다. 전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노예형기질'로 볼 수 있고, 후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야수의 기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 Ηρακλňς, Herakles, 라틴어 Hercules, 독어 Herakles, Herkules, 영어 Hercules, Heracles, Herakles)는 남과 싸워 정복하는 영웅의 윤리라면, 단군사는 자기와의 다툼인 성자의 윤리를 보여준다. 이렇듯 단군사는 태음인(太陰人)의 기질을 대변한다. 1927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작성한‘조선인의 사상가 성격’에서 논하고 있는 사항들도 거의 태음인의 기질에 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태음인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Thus Spoke Zarathustra )에서 인간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석한다.

 

    첫째, 낙타형인간이다. 낙타는 낡은 가치를 대표한다. 무지와 의무와 금욕의 상징하며, 타율적 도덕을 존경하고 복종하는 인간를 뜻한다. 기존의 가치목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그것을 답습한다. 주인이 짐을 잔뜩 실어도 싫은 소리 한마디 없이 무거운 짐을 진다. 이런 유형은 노예형인간이며, 태음인의 성격을 대표한다. 조선왕조가 낡은 성리학사상으로 500백년 동안 지탱한 것은 성리학사상에 저항할 줄 모르는 조선민중이 태음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민중은 미련 곰탱이 처럼 500여년 동안 자신들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아 가는 성리학사상만이 최고의 가치인줄 알고 살았던 것이다. 혁명할 줄 모르는 태음인의 성격, 낙타형 인간이 조선민중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다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독재와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다. 투쟁했기 때문에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획득한 것이다. 저항하지 않는데 누가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 주는가? 항거하지 않았는데 누가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는가? 이런 소중한 가치는 항거할 줄 아는 소수의 태양형과 소양형의 기질을 가진 국민들에 의해 성취된 것이다. 영웅적인 기질을 가진 자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과소평가한 채 오직 경제만 강조하는 태음소음인간형 때문에 대한민국은 어수선하고 원칙이 없다. 대한민국은 이상주의자의 태양소양인이 성취한 민주주의와 실리주의자의 태음소음인이 이룩한 경제부로, 두 마리 토끼, 곧 민주주의와 선진국을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1세기의 북한주민은 저항할 줄 모르는 태음인의 나라임을 보여준다. 2010년 9월 23일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도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국과 북한을 직접 비교하며, 북한 참주 김정일에게 '국민을 노예화하는 정권'이라고 일갈(一喝)한다. 참으로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둘째, 사자형인간이다. 사자는 새로운 가치를 대표한다. 자유를 획득하고 고독을 견뎌내며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한다. 곧 자기부정에 철저한 주체의식(자유의 정신), 비판정신의 상징의 인간형이다. 그런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능력은 갖추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과 서유럽의 인간유형이다. 주인이 시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자유의 정신이 확고하기 때문에 묵묵히 부당한 것을 참는 노예형이라기 보다는 용감히 부당한 것에 투쟁하여 자주적인 인간으로 독립하려고 한다. 타인을 노예로 부리려는 호전적인 성격이 농후해 19세기, 20세기 초 구미는 제3세계를 식민지로 만드는 제국주의노선의 길을 걷는다.

 

    셋째, 어린이유형이다. 순수하고 절대적인 자기긍정을 하는 어린이에게서 비로소 참된 자유가 달성된다. 어린애는 새로운 시대의 창조자,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창조의 ‘초인’(Uebermensch)의 도덕을 상징한다. 어린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활해도 새날이 밝아오면 모든 것이 새로워 보여 가슴이 뛰며, 동일한 친구와 장난쳐도 싫증나지 않고, 저녁이 되면 아무런 걱정 없이 통나무처럼 잠을 잔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인간유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유형을 말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한제국처럼 '음'(陰)의 나리이지만, 소음인의 나라다. 더욱이 섬의 나라라 물이 풍부하고 날씨가 습하기 때문에 자주 씻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인하면 단정하고 깔끔하며 남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민족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소음인은 배려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도가 지나치면 아부로 이어진다. 미일동맹은 일본의 아부로 아주 견고하다. 그리고 질투와 시기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해 세계에 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까지 준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음인기질 때문에  일본은 호전적이며 탐욕스런 야수로 변신해 미영의 제국주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해 대한제국을 먹어치운다. 일본은 자국 힘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희생자를 찾는다. 그 대상이 조선왕조다. 일본은 타국을 희생시켜서 자기나라의 이익을 취하는 파렴치한 민족이다. 이는 소음인의 기질이 의리보다 실리를 귀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이간질과 배신을 밥먹듯한다. 자기나라를 근대화로 이끈 스승격인 미국을 배신해 태평양전쟁을 감행한 사실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알 것이다. 

 

    이에 반해 태음인의 나라 조선왕조는 호전적이거나 전쟁 긍정적 사고는 꿈도 꾸지 않는다. 이런 유형적인 사고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2002년 ‘한일월드컵’때, 한국축구대표팀이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한국축구계에서는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이 일등하면 어색하다고 하면서, 적당히 하자며 샴페인을 터뜨리자, 히딩크 감독은 불쾌하게 여기며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왜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는가?”하며 한국인들의 의식구조 때문에 한동안 회의에 빠졌다고 한다.

 

    21세기 태음인 나라, 대한민국 과연 어느 길로 갈 것인가? 태음인은 돈에 밝고 돈 버는데 명수다. 곧 태음인은 비즈니스 귀재다. 그래서 태음인 나라 대한민국은 구미나 일본처럼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고, 곧 타국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자력으로 선진국이 된 세계 역사상 유일한 나라다. 세계는 대한민국을 격찬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가 닮고 싶은 아이콘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태음인 나라 대한민국 지금 선택의 길에 서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것을 구실삼아 전쟁을 두려워 회피하며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긴 채 목숨만 부지하는 노예국가 노예국민으로 전락할 것인가? 이젠 각성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약성서는 자유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31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32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 8:31-32. 공동번역)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5:1.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