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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경인선 日완공 11년전 朝-美 논의’ 외교문서 나왔다”(강추!강추!강추!)

아우구스티누스 2019. 2. 13. 17:06

일본은 대항해시대를 통해 당시 세계 최강인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을 통해 선진국준비를 갖춘다.

 

1853년에 미국의 동인도(東印度)함대사령장관 매튜 C. 페리(Matthew Calbraith Perry, 1794-1858) 제독은 함대(흑선黑船)를 이끌고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에도 앞바다에 나타나 개항을 압박하여, 1854331일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을 체결한다. 그 후 일본은 1858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한다.

 

크림전쟁(Crimean War, 1853.10-1856.2), 2차 아편전쟁(1856-1860; 1차 아편 전쟁 1840-1842),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1861.4.12.-1865.4.9.)으로 일본에 대한 서강열강의 무관심을 이용하여 일본은 서강열강의 노예국가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1868년 메이지 이신(明治維新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근대국가로 거듭난다.

 

일제는 어설프게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실증사관(實證史觀)이란 단어를 배우고, 이를 근거하여 조선역사를 난도질한다.

 

실증사학이란 19세기 말, 20세기 초 서구열강이 자신들이 짜깁기한 역사나 문서 그리고 유물을 근거로 하여 역사를 서술하라는 것이다.

 

결국 조선역사학자들은 이미 소설화한 일본과 중국의 역사를 근거하여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조선의 역사를 이들의 노예의 역사로 만드는데 주체적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조선역사학자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증사학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학자나부랭이행세를 한다. 이자들의 매국노짓거리로 탄생한 역사서로 한국인들은 중국과 일본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이제 이런 중국과 일본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역사서를 기술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사를 집필하고 있다. 필자의 한국사가 탄생하는 날 모든 국민은 자부심을 갖고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리드하는 통일한국을 건설해야 하겠다는 주체적인 인간유형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며 다음의 글을 일별하면 조선인은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인간유형이었다는 사살에 감격할 것이다.

 

이상재 문서 130년만에 빛 봐

朝鮮이 주도 역사적 사실 확인

종손, 서간·사진 등 국가에 기증

 

한반도 근대화의 상징인 철로 경인선(京仁線)과 관련, 일본이 부설권을 갖기 훨씬 이전에 조선 정부가 미국과 이를 논의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공개됐다.

 

경인선은 1896년 조선이 미국인 모스(J R Morse)에게 부설권을 허가했으나, 모스가 이를 18975월 다시 일본 측에 넘기면서 결국 18999월 일본 측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과정에서 조선 정부의 주도적 역할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13일 문화재청이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888년 이미 조선은 철도부설 사항을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했으며 관련 계약서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이날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돼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1888년 미국에 간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가 간직한 외교활동 관련 문서들을 공개했다. 130년 만에 나온 이 문서들은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 ‘미국서간(美國書簡)’ 등 옛 문헌과 사진 8건 등으로, 이상재 종손인 이상구(74) 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해 오다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 문서 중 특히 주목받는 것은 공관원 업무편람인 미국공사왕복수록에 실린 내용이다.

 

미국 뉴욕 법관 딸능돈등이 1888년 조선기계주식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등 설치를 제안하면서 작성한 규약과 약정서 초안이 담겨 있다. 규약은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로 시작하는데, 조선과 미국 간 철도 부설 논의가 경인선이 완공된 1899년보다 10여 년 앞선 시점에 이뤄졌음을 알려준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번 이상재 선생 유품자료는 19세기 조선왕조의 생생한 대미 외교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한다“1895년 미국인 모스가 일본과 경쟁해 철도부설권을 따내기 7년 전인 1888년 한국 정부가 뉴욕 총영사 프레이저(임시로 미국인을 영사로 임명했었음)를 통해 경인선 철도부설과 관련, 미국 사업가들과 접촉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에는 1883년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이 루시우스 푸트 초대 주한공사를 파견하며 고종에게 건넨 외교문서, 박정양이 미국 정부·관계자와 주고받은 문서, 조선이 주미공사관을 통해 추진한 사업 관련 문서, 독일공사관·일본공사관 관련 문서도 수록됐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8월부터 18891월까지 작성한 편지 38통을 묶은 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