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철학 이야기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의 ‘감시와 처벌’

아우구스티누스 2011. 6. 20. 06:55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의 ‘감시와 처벌’

 

 

 

    영국의 법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공리주의 제창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구상한‘판옵티콘’(panopticon)은 근대감옥의 이상적 모델이 되었고,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는 이 원리에서 근대사회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찾아내고, 그것이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prison, 1975)라는 저서로 나타난다. 이 저서는‘근대 해부학 교과서’이다.

 

 

    ‘판옵티콘’(panopticon)은 ‘모두’(all)의 그리스어 '판‘(pan)과 ’눈에 보이는‘(seen, visible)의 그리스어 ’옵티코스‘(optikos)의 조합어로 벤담(Jeremy Bentham)이 만들어낸 말로 '모두 다 본다'는 뜻이다. 중앙에 원형감시탑이 있고, 둘레로 반지처럼 감옥시설이 들어선 것을 구상했기 때문에,‘원형감시시설’또는 ‘원형감옥’으로 번역된다.

 

 

    중앙에 설치된 감시탑의 감독관은 ‘판옵티콘’(panopticon)에 수용된 죄수들의 행동을 낱낱이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독관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죄수들은 감독관의 시선 때문에 어떠한 돌발적인 행동과 일탈도 감행할 수 없으며 점차 규율에 익숙해지면서 규율의 내면화에 의해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고 그 감시에 복종한다. 곧‘감독관시선의 노예’가 된다.

 

 

    이것을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80)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그는 '존재와 무'(프랑스어 L L' tre et le neant, 영어 Being and Nothingness, 1943)에서 무(無)를 간직하고 있는 의식이 있는 인간의 존재(etre-pour-soi)는 ‘대자존재’(對者存在 의식적 존재)이고, 인간을 제외한 의식을 가지지 못한 다른 모든 존재(etre-en-soi)는 ‘즉자존재’(卽者存在 비의식적 존재)라고 규정한다. 서양사람은 만나면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악수하거나 가볍게 포옹한다. 그리스 신화의 괴물 메두사(Medusa, Μέδουσα)의 소름끼치는 눈과 마주치면 인간이 즉시 돌덩어리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시선 하나로 상대방을 돌처럼 얼어붙게 하면, 곧 상대방의 시선을 깔게 하면 자신은 주체인 대자존재가 되고 상대방은 물체와 비슷한 객체, 곧 즉자존재로 전락하여 알아서 긴다.

 

 

    성리학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수오지심'(羞惡之心)과는 달리, 사르트르(Sartre)에 의하면 인간은 야비하고 추잡한 짓을 저질렀다하더라도 타인이 보고 있지 않으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수치심이 의식적 존재인 대자존재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이 없는 즉자존재 앞에서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는 결국 스스로를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의 눈으로 관찰했기 때문이다. 타자화된 자신의 시선이 ‘응시’(le regard)이며, 이것이 푸코(Foucault)의‘감독관시선의 노예’다.

 

 

    이처럼 감독관이 자리에 없더라도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효과를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효과라고 한다.

 

 

    ‘판옵티콘’(panopticon)에 나타난 감시의 원리가 사회전반에 스며들면서 규율사회로 탈바꿈된다.‘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 가정, 학교, 군대, 병원, 공장 등에서 행해지는데, 이것이‘프로크루테스(Προκρούστης, Procrutes)의 침대’며,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통제사회’(control society)에 해당된다. 특히 감옥과 군대와 학교의 공통점은 통일된 머리, 동일한 유니폼과 운동장이 있다는 것이다. 규율을 어기거나 저항하는 사람은 그 순간 결격자로 지적돼 처벌되고 교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다. 매일 반복되는 교정, 훈련, 감화 그리고 치료를 통해서 권력자나 사회가 원하는 인간형으로 길들인다. 그래서 한반도엔 아직도 서슬 퍼런 군홧발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예형인간들, 짓밟혀서 사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식민지형 인간들, 일제의 36년의 노예생활을 근대화시혜라고 주장하는, 자존심, 자긍심 없는 일본의 시다바리들이 현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인은 표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갖 통제와 규율에 조련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시선에 따른 권력의 작동방식을 탐구한 푸코(Foucault)의 ‘감시와 처벌’의 사회에 살고 있다. 팬옵티시즘(panopticism)이 시대정신이다.

 

 

    이런 ‘일망(一望) 감시시설’의 시선의 유형엔 세계 3대 디스토피아(dystopia)소설 가운데 하나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or Eric Arthur Blair 1903-1950) ‘1984년’(Nineteen Eighty Four)(1949)의 ‘빅 브라더’(Big-Brother)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21세기의 집단감시체제인 ‘슈퍼판옵티콘’(super panopticon), '전자판옵티콘'(electron panopticon), '정보판옵티콘‘(information panopticon)사회의 출현을 예언한다.

 

 

    현재‘빅 브라더’(Big-Brother)는 미국이다. 미국은 ‘미국연방수사국’(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 National Security Agency),‘미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미국최대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등의 협력아래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서 전세계의 핵 위치뿐만 아니라 테러국가나 반(反)미국가 등을 관찰, 감시하는 경찰국가임무를 감당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세계를 통제하는 패권국가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와서 미국과 중국은 세계‘빅 브라더’(Big-Brother)의 자리를 놓고 내면적으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데, 중국은 모든 면에서 미국의 게임 상대가 안 된다. 아니 어쩌면 중국은 영원히 미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미 필자가 “중국은 패권국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글을 썼기 때문에 그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국내적으로 전자지문, 전자건강보험증, 전자주민증, 신용카드 등에 대한 데이터 감시, 디지털첨단기기를 활용한 폐쇄회로(CC)TV, 휴대전화의 위치추적서비스, 국가기관에 의한 도청, 감청, 해킹 등으로 사생활의 안전과 보호가 무너지고 무법지대에 놓일 수 있다.

 

    그런데‘감시사회’(surveillance society)는 야누스(Janus)의 두 얼굴, 곧 유토피아(utopia)와 디스토피아(dystopia)의 두 얼굴을 가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푸코(Foucault)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계도 있지만, 범죄와 재해의 예방과 보호라는 혜택도 있다.

   

    대한민국은 U-시티(Ubiquitous City)사회다. U-시티는 언제어디서나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연결해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거리 곳곳에는 CC(폐쇄회로)TV가 설치돼 범죄를 예방하고 재해를 감시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환자의 영상이 의료기관이나 소방방재본부로 전송된다. 휴대폰은 개인 위치정보를 알려주지만 범죄자나 반국가사범을 색출하기 위해서 활용된다. 워킹맘은 직장에서도 베이비시터나 가사도우미의 역할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일명 ‘비행기록장치’(FDR, Flight Data Recorder), ‘비행영상저장장치’(AVR, Airborn Video Recoder),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 Cockpit Voice Recorder)라고 불리는 ‘블랙박스’(Black Box)는 항공기에 장착되어 사고시 원인을 밝혀낸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발적인 비영리 시민단체, 비정부기구(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들에 의한 권력 감시, 기업의 개인 정보유출에 대한 감시, 의정과 언론에 대한 감시 등으로 수직권력이 수평권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게다가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미투데이(me2DAY), 블로그(blog),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 Created Contents) 등 같은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뉴미디어’(new media)의 등장으로 ‘일망(一望) 감시체제’가 ‘상호감시체제’로 바뀌고 있다.

 

 

    이것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놉티콘’(synoticon)이라고 한다. 시놉티콘’(synoticon)은‘-와 더불어’의 그리스어 전치사 ‘쉰’(syn)과 ‘눈에 보이는’(seen, visible)의 그리스어’옵티코스‘(optikos)의 조합어로 ’서로 더불어 본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국가권력의 일방적 감시는 물론 대중도 권력을 감시하는 상호감시가 가능한 사회를 의미한다.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電文) 25만 건을 폭로한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시놉티콘’(synoticon)의 좋은 실례다. 그래서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년’(Nineteen Eighty Four)(1949)의‘빅 브라더’(Big-Brother)를 다음과 같이 패러디(parody) 할 수 있다.“우리도 빅 브라더를 보고 있다.”(We are also watching you, Big Br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