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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제2의 ‘서희’다!!!

아우구스티누스 2017. 6. 23. 06:50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유능했던 외교관 서희(徐熙, 942-998)를 모델로 문재인 대통령을 잘 보좌하면 역대이래로 가장 유능한 외교부장관으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이 탁월한 서희의 외교철학에 대해 살펴보자.

 

1. 송과 외교 관계구축

 

송은 자신들에게 고분하지 않는 고려에 불만을 가졌는데, 982년에 서희가 송을 방문해 여진과 거란이 육로를 막고 있어 그간 외교 사절을 보내지 못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자 송 태조는 앙금을 풀고 고려와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는다.

 

2. ()나라

 

916년 질라부(迭刺部)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재위 916-926, 872?-926)가 여러 부족을 통합한 다음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며 거란(契丹)을 건국하고, 물자가 풍부한 중원(中原)으로 진출하기 위해 926년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渤海; 698-926: 발해의 건국으로 정식적인 남북국 시대가 열렸는데, 남국은 신라, 북국은 발해를 지칭한다. 발해는 초기에 대진국大震國/大振國이라고도 불렸으며, 당은 발해를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호칭)를 멸망시키고, 936년에 후진(後晉)의 건국을 도와준 대가로 화북의 연운(燕雲) 16()를 획득하며, 947년 국호를 요()로 개칭한다. 960년 송이 건국됨으로써 대치하는 상태로 있다가, 1004년 유리한 조건으로 화의를 맺고, 송과 무역하여 경제적, 문화적으로 발전하며 당시 동아시아의 최강대국 지위를 누리나, 1125년에 여진족의 금나라에 멸망한다.

 

거란 장수 소손녕(蕭遜寧)은 송과 국교를 맺고 거란을 멀리하는 고려를 손보기 위해 993(성종 12) 지금의 평안북도 지역인 봉산군을 격파하고 선봉에 섰던 윤서안을 포로로 잡는 등 위세를 올린 후 공문을 고려조정에 보내 다음과 같이 알린다.

 

우리 군사 80만이 도착했다.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기필코 섬멸해 버리고 말 테니 고려의 왕과 신하들은 빨리 항복하라.”

 

우리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귀순치 않는 나라는 기어코 소탕할 것이니 속히 투항하라. 잠시라도 머뭇거리지 말라.”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 재위 918-943, 877-943)은 발해를 926년에 멸망시키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거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942년에는 거란의 태종(太宗)이 파견한 사신 30명을 섬에 유배 보내고 함께 선물로 보낸 낙타 50마리는 개성에 있는 다리 만부교’(萬夫橋) 밑에 매어 놓은 채 먹이를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하는 등 반거란 정책을 펼친다.

 

왕건이 거란의 낙타를 굶겨 죽이던 942, 서희가 태어나고,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인 993년 서희는 51세의 나이로 중군사(中軍使) 자격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당대 동아시아 최강자 거란 장수의 소손녕 의 공문을 읽은 서희는 성종에게 그들과 화의할 수 있는 조짐이 보인다고 말한다.

 

고려 제6대 국왕 성종(成宗, 재위: 981-997, 961-997)은 이에 따라 이몽전(李蒙戩)을 청화사(請和使)로 하여 내침의 진의를 타진케 한다. 이몽전이 침공의 이유를 묻자 소손녕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이제 천벌을 주러 온 것이다. 만일 화의를 구하려거든 빨리 와서 항복하라.”

 

1차 협상에 성과가 없자, 고려의 조정엔 두 가지 의견이 대두된다.

 

거란의 요구대로 항복을 하자는 투항론과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주고 화의를 청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다.

 

성종은 할지론을 서경의 창고를 열어 비축해두었던 쌀을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한다. 그러고도 많은 쌀이 남자 적들의 군용으로 사용될 것을 염려하여 대동강에 버리라고 명령한다.

 

이때 서희가 나선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틈을 잘 엿보아 움직이는데 있을 뿐입니다. 먹을 것이 넉넉하면 성도 지킬 수 있고 싸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갑자기 쌀을 버리려 하십니까?”

 

지금 거란의 병세만을 보고 경솔하게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삼각산 이북 또한 모두 고구려의 옛 강토인데, 그들이 한없는 욕심으로 끝없이 강요한다면 다 내어주어야 하겠습니까? 국토를 떼어 적에게 준다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바라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적과 일전을 겨루게 한 뒤 그때 가서 다시 화친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은 실은 우리에게 공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의 숫자만 보고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합문사인 장영(張塋)을 사신으로 보냈으나 소손녕은 직급이 낮다고 상대해주지 않아 제2차 회담이 물거품이 된다.

 

그러자 현재의 국방부 대변인급에 해당하는 지위인 병관어사(兵官御事) 서희가 자원해 제3차 회담을 위해 국서(國書: 국가 원수의 문서)를 가지고 소손녕의 영문(營門: 군대가 주재駐在하는 진영陣營)을 향해 떠난다. 서희는 적진(敵陣)에서 대담하게 7일간 머물면서 소손녕과 담판을 갖는다. 그러면 서희와 소손녕과의 대화내용을 살펴보자.

 

소손녕: (서희의 기를 꺾을 기세로) 먼저 대국의 귀인에게 절을 올리는 예를 갖추어라! 뭘 꾸물거리고 있는가? 어서 절을 올려라!

 

서희: (소손녕이 전면전보다 화의를 원하고 있음을 깨닫고 크게 노하는 척하면서) 무슨 말인가?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뜰에서 절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나, 양국의 대신이 대면하는 좌석에서 절을 하는 예는 없다!

 

소 장수는 자신을 대등하게 대하는 서희에게 기가 꺾이지 않기 위해 계속 갑질하자, 서희도 고려의 대신으로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숙소로 돌아가 움직이지 않는다.

 

소 장수는 서희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고 대등하게 만나는 예식 절차를 수락하며 본격적인 담판이 시작된다.

 

소손녕: 그대의 나라가 신라 땅 위에 세워졌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 거란의 땅인데, 어째서 그대들이 침범하였는가?

 

서희: (소 장수가 고려 광종이 여진의 땅을 빼앗아 성을 쌓은 일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그래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부르고, 평양(서경)을 수도로 정한 것 아닌가. 땅의 경계를 가지고 말하자면 오히려 귀국의 동경(東京)으로 삼고 있는 요양(遼陽)이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와야 하는데 어찌 거꾸로 침범했다고 하는가?

 

소손녕: 그래? 그래도 우리 거란과 국경을 접하면서도, 바다 건너에 있는 우리의 적국인 송나라만을 섬기다니 참을 수 없어 이번에 출병이 있게 된 것이다. 만일 땅을 떼어 바치고 국교를 회복한다면 무사하리라.

 

서희: (거란은 자기네 나라와 송과의 전면전이 발생시 배후에 있는 고려의 침입이 두려워 먼저 고려가 송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실질적인 거란의 침략목적임을 깨닫고 여진이란 핑계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려와 거란 양국의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여진을 쫓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여 그곳에 성과 보를 쌓아 길을 통할 수만 있다면 어찌 귀국과 국교를 통하지 않겠소?

 

무장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진영에 와서 주눅 들지 않는 서희의 빈틈없는 논리의 지혜의 말을 듣고 소손녕은 감탄한다. 서희는 강동 6주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받음(요나라가 고려의 강동 6주 점령을 양해)과 동시에 소손녕으로부터 낙타 열 마리, 말 백 필, 양 천 마리, 비단 백 필을 선물로 받는다. 그 대신 고려는 송나라의 연호 대신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는 것에 합의한다. 994년부터 거란의 연호 통화(統和)를 쓰게 되었고, 부로(俘虜)의 교환이 실행되자 송나라와는 국교가 끊어진다. 그리고 성종 때 두 차례에 걸쳐 유학생 20명을 거란에 보내어 거란어를 배우게 한다.

 

당대 동아시아 최강인 거란과의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서희는 그 다음해 994년 평장사(平章事)로 직접 군사를 이끌고 청천강 이북의 여진족(女眞族)을 몰아낸 뒤 흥화진(의주), 용주(용천), 통주(선천), 철주(철산), 귀주(귀성), 곽주(곽산) 등의 강동 6주에 성을 쌓아 이 지역을 고려의 영토에 편입시키고, 이로써 고구려 멸망 이후 처음으로 국경이 압록강에 이른다.

 

강동 6주는 훗날 거란과의 2, 3차 전쟁(1010년의 현종 1년에 강조康兆가 목종穆宗을 시해했다는 것을 구실로 성종이 직접 침략해왔고, 101812월 소배압簫排押이 침입해왔으나 그때마다 양규楊規, 강감찬姜邯贊 등의 뛰어난 전술로 격퇴)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 낸 전략적인 요새의 역할을 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2동 외교안보연구원에 서희의 흉상이 있다

 

서희가 거란과의 외교전에서 대승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1.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파악

 

거란은 송과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고려에서 국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 고려가 송과의 동맹을 위해 참전하지 말라는 거란의 사인을 서희는 정확하게 읽는다.

 

2. 유목민 거란은 산악지대에서의 전투에 취약

 

거란군이 평안남도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했다가 실패해 전의를 잃고, 게다가 유목민이라 산악지대에서의 전투에 자신감이 없어 고려와의 화해의 손길을 보내고 있음을 서희는 꿰뚫어본다.


3. 지혜와 배짱을 갖춤

 

서희에겐 논리 정연한 언변과 쉽게 기가 꺾이지 않는 두둑한 배짱이 있었다.

 

4. 강경화 외교부장관


사드는 미국의 MD정책의 일환이다. 그것은 남북분단의 영구화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의 달인 강 장관은 여걸답게 한미정상단독회담 시 통역관자격으로 참여해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진솔하게 통일한국의 중요성과 의의를 설명하여 동의를 얻어 내야 한다.

 

그리고 강 장관은 문 대통령으로 하여금 미국이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자주국방을 갖추게 해주어 대한민국식의 통일을 이루어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리드하는 아름답고 위대한 통일한국이 형성되도록 협조해준다면, 사드, MD정책을 뛰어 넘어서서 미국의 우선주의에 앞장서겠다는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한미동맹관계가 찰떡궁합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5. 구약성서의 요엘 예언자는 자주국방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8.이제는 내가 유다 사람을 시켜서, 너희의 아들딸들을 팔겠다. 유다 사람은 너희 자녀를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9.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선포하여라. 전쟁을 준비하여라! 용사들을 무장시켜라. 군인들을 모두 소집하여 진군을 개시하여라! 10.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라. 병약한 사람도 용사라고 외치고 나서라.”(새번역. 요엘 3:8-10)

 

성서는 자유와 독립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공동번역. 갈라디아서 5:1)

 

“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개역한글. 요한복음 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