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新世紀)의 전자민주주의(電子民主主義 Electronic Democracy)
칼라 TV를 통해 미국 드라마가, 케이블 TV를 통해 일본 드라마가, 스크린을 통해 할리우드(Hollywood)가, 비디오를 통해 포로노(pornograph)가, LP판을 통해 로큰 롤(rock‘n roll)이 들어오고, 유튜브(Youtube)를 거쳐 한국대중음악(K-Pop)과 한국드라마(K-Drama)가 해외로 널리 확산되어 한류의 열기가 지구를 녹인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뉴미디어(new media)에 의한 북아프리카의 시민혁명의 민주화열기를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친미정권이 들어설지 반미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득세할지 여부에 따라 냉전해체에 버금가는 국제정치질서의 재편문제로 국제정세가 출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유가급등으로 세계의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예언대로 절대정신(Absoluter Geist), 세계정신(Weltgeist)의 자유확장의 역사가 진전되고 있다. 산업혁명의 기초로 경제대국을 이룩하여 해가 지지 않을 정도로 전 세계의 1/3를 식민지배 했던 대영제국이 존재했다가 사라졌지만, 인류의 이상향의 민주주의 태양은 지지 않고 영원히 온 세계를 비추고 있다. 이렇듯 지구적 민주주의(global democracy)와 더불어 전자민주주의(電子民主主義 Electronic Democracy)가 21세기의 화두다. 이런 역사적 현실을 감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상고하고자 한다.
I. 전자민주주의(電子民主主義 Electronic Democracy)란 무엇인가?
21세기는 인터넷 기반 매개체인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미투데이(me2DAY), 블로그(blog),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 Created Contents) 등 같은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의 사회다. 올 2월 28일 뉴스위크지(News Week)는 뉴미디어(new media)의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지금까지 소셜 미디어는 중동지역전반에 걸쳐 대중의 저항의식을 선동하고 북돋우는데 확실하게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By now, It's clear that social media has played a critical role in fomenting and sustaining public protests across the Middle East)(p. 10).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 미디어가 아니라, 지식을 소비하는 사람이 생산하기도 하고(prosumer=producer+consumer), 유명인이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기도 하는 미디어시대다. 무엇보다도 과거 파편화된 가상공간에서 고립되고 무의미하게 익명으로 존재하던 개인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사이트를 통해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전자민주주의(電子民主主義 Electronic Democracy)시대가 세계의 화제다.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네티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각국 지도자들도 동참한다. 그로 인해 트위터(Twitter)와 외교(Diplomacy)의 합성어 '트위터외교'(Twitplomacy)라는 말도 생겨난다. 작년 전 세계 60여 명의 국가 지도층이 트위터(Twitter)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트위터(Twitter)는 마이크로 블로그(Microblog)의 선구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갖고 있다. 이용자 계정수가 1억7500만 개에 달해 하나의 ‘대국’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이 ‘국가’에는 여러 명의 각국 정치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G20 국가 과반수의 지도자가 트위터(Twitter)를 개통했으며 그 중 미국 오바바(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의 팔로워는 600만 명에 달하고, 1500만 명이 넘는 페이스북(Facebook) 친구들에게 수시로 메시지를 보낸다. 그 중 가장 인기가 없는 인사는 프랑스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으로 팔로워수가 단 8000명에 그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한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올 1월 23일 AP통신에 의하면 미국국무부는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Facebook), 유튜브(YouTube) 등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를 적극 사용하며 디지털외교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국무부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를 통해 해외 팔로어들과 실시간으로 접촉하면서 해외 주요이슈와 관련한 루머를 진정시키고 미국의 정책적 입장을 알리고 있다. 특히 긴박한 이슈들을 다룬 경우 팔로어들이 미국 국무부의 메시지를 다른 팔로어들에게 전달하면서 트위터(Twitter) 내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 이러한 네트워크들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이를 적극 활용해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정책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를 선도할 수 있는가? 그러면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에 대해 생각해보자.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란 전자매체를 통한 국민과 정치지도자간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일반 국민들이 직접 정치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정보화 사회의 민주주의를 일컫는다.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와 유사한 용어로는 테크노폴리틱스(techno politics), 클리코크라시(clickocracy), 원격민주주의(teledemocracy), 인터넷민주주의(internetdemocracy), 사이버 민주주의(cybercracy), 정보민주주의(informationdemocracy)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동부유럽의 발트해 연안 끝에 있고, 구소련의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Estonia)는 2008년 기준 인구 1,307,605 명의 도시국가로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도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IT 인프라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국민 대다수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 사용에 매우 익숙해 있어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는 토론보다 몸싸움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입법전쟁'으로 국가의 품위와 존엄을 훼손하는 대한민국국회를 볼 때 매우 절실하다. 더욱이 자기들 유죄(有罪)를 무죄(無罪)로 만들기 위하여 법을 고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된 법조항은 졸속으로 처리하는 국회의 행태를 더 이상 관용의 눈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국민에 대한 사랑과 국익 보다는 사익(私益)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를 영원히 퇴출시키기 위해서라도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의 도입은 절실하다. 물론 인터넷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킹에 의한 중복투표, 기술조작, 여론조작이 가능하고,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을 악용한 흑색선전 등 기술적 문제점 등이 선결되어야 한다.
II. 뉴미디어혁명에 의한 아랍문화권의 민주주의의 도미노현상
지난 1991년 독일베를린장벽붕괴이후 최대 혁명, 튀니지(Tunisia)에서 발사된 시민혁명, 곧 튀니지(Tunisia)국화인 재스민(jasmin)에서 이름을 딴 ‘재스민(jasmin) 혁명’의 탄환이 이집트(Egypt)와 리비아(Libya)의 독재자들의 심장부를 관통하였고, 이웃국가는 물론 특히 구소련 붕괴로 상징되는 공산주의 해체에도 절대 왕정과 독재를 이어왔던 중동지역의 왕정체제인 모로코(Morocco), 요르단(Jordan), 바레인(Bahrain)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의 통치자들도 시민혁명의 유탄을 맞을까봐 안절부절 못하다고 한다. 민주화 열풍을 일으킨 튀니지(Tunisia)의 노점상 청년 부아지지(Mohamad Bu'azizi)는 아랍 민주주의의 봄을 싹틔운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1) 튀니지(Tunisia), 이집트(Egypt), 리비아(Libya)에서의 민주화 열기의 배경
첫째,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물가상승과 높은 청년 실업률 등으로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리비아(Libya)는 GDP가 1만 5천 달러이지만, 무아마르 가다피(Muammar Abu Minyar al Gaddafi)는 자기를 지지하는 부족에게만 혜택을 주고 저항하는 부족에겐 그 혜택을 주지 않아 그 부족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장기독재로 인한 부정부패와 정부의 무능으로 고통 받고 있다. 튀니지(Tunisia)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대통령은 23년간 장기독재를 했고, 이집트(Egypt)의 호스니 무바라크 (Muhammad Hosni Sayyid Mubarak) 대통령은 30년간 ‘현대판 파라오’로 지냈고, 리비아(Libya)의 가다피(Gaddafi)는 42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다른 아랍 국가 통치자 및 집권기간은 다음과 같다. 알제리(Algeria)의 압델라 지즈 부테플리카(H.E. Abdelaziz Bouteflika) 대통령은 12년, 바레인(Bahrain)의 하마드 알 칼리파(Hamad bin Isa Al Khalifa) 국왕은 12년, 요르단(Jordan)의 압둘라 2세(Abdullah Ⅱ) 국왕은 12년, 모로코(Morocco) 무하마드 5세 묘 의 시디 모하메드 6세(Sidi Mohammed VI) 국왕은 12년,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Abdullah bin Abdulaziz al-Saud) 국왕은 6년, 시리아(Syria)의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은 11년, 예멘(Yemen)의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대통령은 32년간 독재를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카르타고(라틴어 Carthago, 영어 Carthage)의 장군 한니발(Hannibal)을 배출한 땅 튀니지(Tunisia)에서 부아지지(Mohamad Bu'azizi)라는 대졸 청년이 경찰의 청과물 단속에 삶의 터전을 잃고 절망한 나머지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한다. 그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Facebook)을 타고 순식간에 튀니지(Tunisia)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1987년 무혈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철권통치를 해온 벤 알리(Ben Ali) 대통령은 올 1월 14일 밤 중앙은행에서 금괴 1.5t를 빼내 가족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로 떠나고, 23년간의 독재체재가 무너진다. 1956년 독립 이후 55년 동안 튀니지(Tunisia) 대통령은 단 두 명뿐이었다. 하비브 부르기바(Habib ibn Ali Bourguiba 1903-2000, 재임 1957-1987)와 이번 혁명으로 쫓겨난 벤 알리(Ben Ali)다.
미국의 역사정치학자, 사회운동가이며‘미국 현대사의 양심’인 하워드 진 (Howard Zinn)은 인류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사건들은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일어났다고 진단한다.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의 기초위원과 제3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김수영은 1960년 4.19혁명 뒤 ‘푸른 하늘’이라는 시로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한다.///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 ”
대한민국역사상 최초의 민주화혁명이었던 1960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동년 4월 11일 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최루탄이 눈에서 뒷머리까지 관통한 처참한 마산상고학생 ‘김주일의 주검’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불씨가 된 것은 ‘박종철 물고문치사사건’과 연세대 시위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숨진 ‘이한열의 죽음’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피를 먹고 자라듯. 많은 국가의 국민들도 생명을 바치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총기소유(gun ownership)가 합법화돼 있는 나라다. 수정헌법(the enactment of the Second Amendment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in 1791) 제2조는 모든 시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각 주는 민병대(방위군)를 무장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조항은 중앙정부에 독재정권이 들어설 경우 민병대가 무력으로 제압하라는 것이 그 취지다.
미국독립혁명(American Revolution)의 핵심부대는 민병대다. 미국은 1774년 7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775년 보스턴차사건(Boston Tea Party) 이후 영국이 군대를 파견하자 미국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민병대를 조직하여 대항하고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이후 서부개척으로 인한 치안부재, 아메리칸 인디언, 야생동물과 외국군대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고, 그리고 독재정부(a tyrannical government)가 들어설 경우 그 정부와 대항하기 위해 총기소유는 합법화된다. 총기소유는 미국의 자유, 독립, 애국심과 정의를 상징하는 미국인의 정신과 정체성의 아이콘이다(the American spirit and identity-icon of American freedom, independence, patriotism and righteousness).
이처럼 미국의 역사는 사실상 총으로 탄생하고, 유지되어온 역사이며, 또한 미국의 민주주의도 총으로 유지된다. 미국인들의 친숙한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한 총기문화(Gun Culture) 때문에 미국인에게 화약 냄새는 집과 가족 냄새처럼 친근하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범죄 기록이나 정신 장애가 없는 일반 성인이라면 적법의 절차를 거쳐 누구나 손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총기 소유 합법화를 주장하는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최대의 로비 단체로, 국가가 총기규제의 법제화를 추진하지 못하도록 막대한 자금력, 조직력, 동원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미국엔 개발도상국처럼 독재정부가 들어설 수 없다.
미국 외에도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권과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국가, 그리고 스위스 등 일부 유럽국에서 총기의 개인소유가 허용된다. ‘평화로운 중립국’의 이미지를 가진 스위스는 상비군이 없기 때문에 18세에서 32세의 남성 대부분이 예비군으로 국가에서 총과 실탄을 지급돼 집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핀란드도 15세가 되면 총기를 살 수 있고 주로 사냥을 하려고 총을 구매한다. 이처럼 민주주의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시사주간지 타임은 튀니지(Tunisia)혁명을 ‘굶주림의 혁명’(Hunger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먹고사니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애절할 만큼 중요하며 인간의 죽음과 전쟁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면 프랑스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 1789-1794)과 미국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을 통해 살펴보자.
청교도혁명(Puritan Revolution 1642-1660)과 미국혁명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이라고 불리는 미국독립전쟁(American War of Independence 1775-1783; 세계최초의 민주공화국탄생)과 더불어 근대 민주주의 3대 혁명중 하나인 프랑스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다. 프랑스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의 3대정신이 ‘자유, 평등, 박애’이기 때문에 중상주의로 부를 획득한 제3신분에 속한 시민계급(부르주아지)이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고 왕과 제1신분의 성직자계급, 제2신분의 귀족계급과 대립하여 특권폐지와 권리평등을 요구해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는 장기적인 원인이다. 프랑스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의 직접적이며 단기적인 원인은 왕실의 재정위기다. 왕실재정은 루이14세(Louis XIV) 가 사망할 무렵부터 궁핍해지기 시작해서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전함으로써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된다.
루이16세(Louis XVI)는 이를 타파하기위해 귀족들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당시 귀족들은 절대왕정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여 프랑스 전국민을 대표하는 3부회(세 신분, 곧 귀족, 가톨릭고위 성직자, 평민의 대표자가 모여 중요 의제에 관하여 토론하는 장으로서의 신분제 의회)가 열리기 전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한다. 1789년 5월 루이16세(Louis XVI)는 재정위기를 타개하고자 1614년 이래 한 번도 열리지 있었던 3부 회의를 소집한다. 베르사유(Versailles)에서 3부회가 열리자 제3신분 대표인 시민계급(다수를 이루고 있었던 법률가, 공무원, 언론인, 기업가, 은행가 등 부르주아지들)은 제1, 2계급과 동일한 투표권을 주장한다. 이에 루이16세(Louis XVI)는 베르사유(Versailles)에 군대를 동원해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탄압 하려하자 파리민중은 그간 압제와 전제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감옥(Bastille Saint-Antoine, Bastille de Paris)을 습격한다. 후에 루이16세(Louis XVI)는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나폴레옹(Napoléon)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프랑스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은 막이 내린다.
우리는 노예해방하면 190Cm의 헌칠한 키에 구레 나루가 있는 미국링컨(Abraham Lincoln)대통령이 연상된다. 1861년 4월 14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수난절 금요일 존 부스(John Wilkes Booth)라는 열렬한 남부지지자인 배우가 쏜 총에 포드극장에서 암살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링컨은 반(反)노예제적 입장을 견지한 사람이다.
1858년 링컨은 더글라스(Stephen Arnold Douglas)와 벌인 논쟁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이 내용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며 옥스퍼드대학 생물학 교수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이한음 옮김 2009. 7. 12. 김영사) 제7장 ‘선한 책과 변화하는 시대정신’ 제4부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도 백인종과 흑인종의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도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한 적도 없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흑인에게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주자고 한 적도, 공무원 임용자격을 주자고 한 적도, 백인과의 혼인을 허용하자고 한 적도 없었으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나는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는 신체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두 인종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사는 것은 영구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평등하게 살 수 없지만 함께 지내야 하므로 분명 우열관계가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남들과 마찬가지로 백인종이 우월한 지위에 놓여야 한다고 봅니다.”(p. 403)
노예해방배후에는 150cm도 채 안 되는 작은 거인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라는 여인이 있다. 그가 쓴 ‘톰 아저씨’(Uncle Tom's Cabin 1852)는 노예제도의 비인간성과 잔혹성을 고발한다. 이것으로 인해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이 여인은 여기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백악관에서 링컨(Lincoln)대통령을 만나 노예해방을 촉구한다. 그리고 노예해방선구자인 흑인 프레데릭 더글러스(Fredrick Douglass)는 남북전쟁 (American Civil War 1861-1865)중에 링컨(Lincoln)대통령에게 노예제폐지를 건의한다.
이렇듯 남북전쟁(Civil War)은 노예해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남북전쟁의 부산물이다. 남북전쟁(Civil War)은 공업을 중심으로 한 북부와 노예제 농업을 중심으로 한 남부의 경제권주도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그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방직업이 성황을 이루고 목화를 미국의 남부로부터 수입한다. 플랜테이션(plantation)과 목화산업에 의존하는 남부는 흑인노예를 부림으로써 원가절감하고 값싸게 목화를 영국에 수출하고 값싼 영국공산품을 수입한다. 그런데 연방정부는 북부지역의 산업화를 지키기 위해 유럽의 공산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기로 결정한다. 남부는 영국에서 이것에 대한 보복조치로 남부목화에 관세를 매기면 영국수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고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남부동맹군이 연방군이 주둔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 찰스턴(Charleston) 항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포격하여 남북전쟁(Civil War)이 시작한다. 그 무렵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Lincoln) 대통령은 남부의 연방탈퇴를 반란행위로 간주하고, 연방정부의 보존을 위해 전쟁을 선포한다.
링컨(Lincoln) 대통령은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서’를 발표함으로써 남북전쟁을 노예해방을 위한 인도적 목적의 전쟁으로 명분을 삼는 동시에 남부를 후원하던 흑인노예들을 선동하고 대거 이탈하도록 하여 남부의 내부를 와해시키고 전력손실을 가져오게 한다. 수많은 노예들이 남부에서 탈출하여 자유로운 북부로 가 링컨정부 밑에서 남북전쟁(Civil War)에 가담하여, 북부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남부경제는 북부산업경제에 종속되어, 미국의 산업화와 현대화가 이루어진다.
경제적인 원인과 연방분립의 반대로 시작되었던 남북전쟁(Civil War)의 결과가 노예해방이라는 도덕적 가치로 승화되자 링컨(Lincoln) 대통령은 성자로 추앙받고, 흑인의 인권은 급진파 흑인 해방운동가 말콤 X(Malcolm X)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저항정신으로 전환기를 맞는다.
그리고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행정부 는 인종평등을 위해 1986년부터 매년 1월 세 번째 주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 탄생 기념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 추모해온다. 미국에서 법정 공휴일은 10월 둘째 월요일 콜럼버스기념일(Columbus Day), 2월 세 번째 주 월요일 초대 대통령인 조지워싱턴(George Washington) 기념일,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 뿐인데,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 탄생 기념일이 법정 공휴일로 선택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전 대통령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파월(Colin Powell)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흑인 여성인 라이스 (Condoleezza Rice)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한다. 마침내 흑인 최초의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대통령이 탄생한다.
둘째, 중동지역은 대부분 60%가 30대 미만의 청년들로 구성된 국가인데, 북아프리카 튀니지(Tunisia), 이집트(Egypt), 리비아(Libya)도 이런 나라에 속한다. 독재정권의 우민화수단이었던 신문, 라디오, 방송, TV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Social Graph)확산으로, 인터넷과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Facebook)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관련정보에 아무런 제약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통치자에 대한 유용하고 진실 된 정보를 선별하여, 상대방에게 그 소식을 전함으로써 서로서로 분개하며 동력을 얻어 반정부시위에 가담하는데, 30대 미만의 청년들이 뉴미디어를 잘 다룰 줄 알아, 시위대 중심에 있다고 한다. 이들은 또한 정치적 이익이나 종교적 신념에 물들지 않아서 종파, 종교, 정파를 초월해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민주화를 이끌 지도자가 없어서 과연 민주주의로 정착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한다.
공츠(孔子)는 춘추시대에 윤리가 없음을 개탄하고 윤리의 길을 제시했고, 붓다는 인도의 사성제도(카스트)의 신분제를 타파하기 위해 평등의 길을 제시했듯이, 21세기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를 통하여 민중의 소리가 전파되어 지구촌의 지지를 이끄는 시대다. 모든 길은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로 통하기 때문에 영웅이 없는 시민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모델은 터키(Turkey)다. 터키(Turkey)는 이슬람과 민주주의,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버무린 중동의 스타이다. 그러면 터키(Turkey)에 대해 살펴보자.
터키(Turkey)지방은 그리스어로 ‘아나톨리아’(Anatolia), 곧 ‘태양이 뜨는 동쪽지방’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어 ‘아나톨레’(anatole άνατολή)는 ‘동쪽’(east), ‘새벽’(dawn)을 뜻한다. 옛날은 소아시아(Asia Minor라고) 불렸다.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Atatürk)은 케말 파샤(Kemal Pasha)라고도 한다. 파샤(Pasha)는 군사령관, 고급관료에게 보내지는 칭호이다.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해 왕족들을 모두 추방시키고, 1922년 10월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탈이슬람과 서구화를 선도한다. 1922년 11월 정치와 종교분리정책을 추진한다. 케말(Kemal)은 칼리프(caliph)제도는 유지하되 종교적 권한만 갖도록 하고, 정치적 지배자인 술탄(Sultan)은 폐지한다. 이슬람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벗고 근대적, 서구적인 국가와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률의 국교 조항을 폐지하고, 이슬람교도 국민과 비이슬람교도 국민 사이의 차별을 금지한다. 1925년에는 이슬람 전통 복장이 폐지되고, 남녀의 합동 교육이 실시되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한다. 1926년에는 새로운 민법이 제정되어 일부일처제를 비롯한 남녀평등권이 도입된다. 1928년에는 코란 언어인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대체하며, 이슬람교의 공휴일인 금요일 대신 일요일을 공휴일로 삼는다. 1930년에는 이슬람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과 의회피선거권 등의 참정권을 부여하여 여성에 대한 우대정치를 펼친다.
터키인들은 아랍인의 관습처럼 성(姓)을 사용하지 않다가 1934년 국회에서 ‘성 사용법'(姓使用法)을 통과시켰는데, 국회는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에게 ‘터키의 국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Atatürk: 아버지의 ’ata‘+터키인의 ’türk‘)’ 를 그의 성으로 증정한다. 그가 평생 조국독립과 현대화를 위해 노력한 대가이다.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은 1938년 11월 10일 목요일 아침 9시 5분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Palace)에서 운명한다. 현재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Palace) 안의 모든 시계는 9시 55분을 가리킨 채 멈춰 섰다. 터키(Turkey)에는 매년 같은 날, 그 시각에 전국적으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움직이던 차량과 사람들이 멈추고 아타튀르크(Atatürk 건국의 아버지)를 기리는 묵상을 한다. 이처럼 케말(Kemal)은 죽었지만 그가 추구했던 정신은 여전히 터키(Turkey)사회 곳곳에 살아있으며, ‘케말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터키(Turkey)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터키(Turkey)의 언론인 메틴 무니르는 이렇게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대통령을 평가한다. ”케말의 일생의 과제는 바로 500년 이상 터키를 지배해온 이슬람의 때를 벗기는 일이었고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다”
(2) 튀니지(Tunisia), 이집트(Egypt), 리비아(Libya)에서의 민주주의 정착에 대한 대책
북아프리카와 중동국가들을 민주주의로 유도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 부흥을 위해 내놨던 `마셜플랜‘(Marshall Plan)과 같은 지원책인 중동판 `마셜플랜`이 필요하다.
미국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은 1947년 3월 의회연설에서 ‘반소반공’의‘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언한다. 1823년 미국의 유럽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 유럽의 미국 대륙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건설 배격의 원칙 등 3개 원칙의 외교정책인‘먼로주의’(Monroe Doctrine), 1969년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한다' 는 아시아 자주국방 외교정책인 ‘닉슨독트린’(Nixon Doctrine) 등과 함께 미국의 중대한 외교정책이다.‘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의 내용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의 정부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 및 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무장관 마셜(George Catlett Marshal)은 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학졸업식 축하연설에서 ‘유럽부흥계획’(ERP, European Recovery Program)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정식명칭인 ‘유럽부흥계획’(ERP)은 마셜(Marshall)이 처음으로 공식 제안하였기에 ‘마셜플랜’(Marshall Plan)이라고 불린다. ’마셜플랜‘(Marshall Plan)은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이 전후의 빈곤과 실업, 사회적 혼란으로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여 서유럽의 재건과 부흥과 미국의 대 유럽 수출시장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서유럽 16개 나라와 일본에 행한 대외원조계획이다. ’마셜플랜‘(Marshall Plan)은 실제로 소련의 지원 아래 유럽 각국으로 공산주의가 파고들고 있어서 반소-반공주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민주화를 위해 체계적인 경제정책 중동판 `마셜플랜`이 이루어져야 한다.
III. 북아프리카의 민주화에 대한 중국의 대응
튀니지(Tunisia)의 시민혁명, 곧 ‘재스민 혁명’(jasmin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한 뉴미디어 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이슬람권이 출렁거리고 있고, 중국도 뉴미디어 혁명이 전염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국에 민주주의 봄바람이 분다면 최대의 수혜자는 한반도가 된다. 중국당국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의 검열과 차단에 총력전을 펼치며, 두 가지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국내적으로 중국인민을 신민화(臣民化)하기 위해 공츠(孔子)사상 을 부활시킨다.
톈안먼(天安門)광장엔 트레이드 마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쯔진청 성문에 걸린 마오쩌둥 (毛澤東)의 사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톈안먼(天安門)광장 국가 박물관 북문 앞의 공츠(孔子)동상이다. 왜 중국지도부는 공츠(孔子)사상을 부활시키고 있는가?
공츠(孔子)는 생존하는 동안 먹여 주고 돌봐 줄 주인을 잃은‘상갓집 개’에 비유할 만큼 그의 사상은 어느 군주도 채택되지 않을 만큼 천대받았다. 진시황제는 유교가 자신의 통치철학인 법가(法家)와 대립한다고 유교경전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체포해 구덩이에 파묻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한다. 공자가 죽은 지 250년 후에 한(漢)왕조(B. C. 206-A. D. 220)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의 권면으로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삼는다. 그래서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유교국제정치질서관(Confucian International Order)이 수립된다.
중국당국은 중국인민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원시노예도덕의 공츠(孔子)사상을 이용한다.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평등문화인 오륜(五倫)은 무시되고 수직문화인 삼강(三綱the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in human relations, the three bonds)만이 강조될 뿐이다. 삼강(三綱)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오륜(五倫)은 오상(五常) 또는 오전(五典)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곧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이른다.
둘째, 대외적으로 소프트 파워외교를 과시하여 비인간적인 정책을 은폐시킨다.
이전의 실크와 도자기 외교와 비교될 수 있는 '판다외교'(Panda Diplomacy)를 펼치며 문화와 인민을 사랑하는 국가임을 은연중 보여준다. 미국 닉슨(Richard Milhous Nixon) 전 대통령이 중국방문 때 1972년 2월 2일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판다(Panda)를 선물하겠다고 전하자, 닉슨(Nixon)이 흔쾌히 수락해, 1972년 4월 18일 미국워싱턴동물원에 암컷 링링과 수컷 싱싱을 보낸다. 이 외교전략은 예전에도 있었다. 장제스(蔣介石) 부인 쑹메이링이(宋美齡)은 반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국민당에 지급된 수억 달러의 군자금에 대한 감사로 뉴욕브롱스동물원에 판다(Panda) 한 쌍을 보낸다. 미국인들의 판다(Panda)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고 하며, 영어에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포옹을 ‘Panda Hug'라고 한다.
이런 ‘판다외교’(Panda Diplomacy)를 내세우면서 대내적으로 중국의 반체제인사인 중국의 류샤오보(劉曉波)가 톈안먼사건(天安門事件)이후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되지만, 중국당국은 류샤오보(劉曉波)로 하여금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하도록 한다.
미국 허드슨 연구소의 수석 연구자인 히다카 요시키는 자기의 저서‘미국의 세계전략을 모르는 일본인’에서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말을 인용한다. “만일 중국민족의 DNA가 변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DNA가 무엇인가? 그것은 정체성(identity)이다. 살인마 김정일은 신의주 프로젝트 때 중국인 실업가 어우야(歐亞) 그룹회장인 양빈(楊斌)을 행정장관으로 임명한다고 했을 때 중국당국은 그를 관세포탈자로 몰아 단 하루 만에 체포 구금한다. 마피아 대장 김정일도 중국의 중화사상인 DNA의 한방에 무너져 개혁이 물거품 된다.
중국의 민주화의 기대는 요원하다. 북한의 민주화의 기대는 말조차 담기 힘들 정도다. 그렇지만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1975)시로 이 두국가의 민주화를 기대해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통치의 상징인 '10월유신'이라 불린 비상체제를 고발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고대하겠다는 신앙적 기다림의 ‘사회참여시’, ‘저항시’다. 시의 제재는 민주주의이고, 주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며, 민주주의를 '너'로 의인화시킨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서툰 솜씨로/쓴다.///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IV. 나가는 말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등의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앙시앵레짐(ancien regime 구제도) 붕괴에 불을 댕겨 ‘아랍식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글자 그대로 국민(民)을 위한 나라(國)인가? 아니면 ‘재벌과 대기업 및 가진 자만을 위한 고장 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검찰공화국‘인가? 이제 이런 부조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식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킹에 의한 중복투표, 기술조작, 여론조작이 가능하고,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을 악용한 흑색선전 등 기술적 문제점 등이 선결되어야 하지만, 전자민주주의(electronic democracy)로 전환이다.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Egypt)의 호스니 무바라크 (Muhammad Hosni Sayyid Mubarak) 퇴진을 지켜본 뒤 이렇게 말한다. "모바일(M)혁명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리스도교 신약성서는 자유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5:1. 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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