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엔 삶과 죽음이 동시에 내재하고, DNA엔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진화생물학자 및 대중과학 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 Clinton Richard Dawkins, 1941-)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와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Matt Ridley)의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가 공존하듯이, 인간사상에도 노자와 장자의 '무위(無爲)철학’과 공자와 맹자의 ‘유위(有爲)철학‘이 존재한다.
배영순 영남대 국사과 교수는 인간에게 내재된 ‘자연성’과 ‘반자연성’, 곧 매트 리들리(Matt Ridley)의 ’본성과 양육‘(Nature via nurture (Paperback)에서 ’본성‘을 무시하고 ’양육‘의 관점에서 언설을 늘어놓아 아쉬운 점이 있지만, 나름대로 생각해볼 틈을 주기 때문에 추천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며 배교수의 방하 한생각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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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2012-04-23)에 ‘인간성(human nature)의 6가지’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다. 이 여섯 가지는 상식적으로 추론 가능한 것들인데, 이걸 놓고 다시 생각해볼 점이 있을 것 같다. 먼저 6가지를 보자.
* 참고 : Human nature: Six things we all do 2012-04-23
(1) 놀기 좋아한다(Being playful). 다른 동물들도 장난을 치고 놀기도 하지만 인간처럼 놀기 좋아하는 동물은 없다. 노는데 아주 많은 시간을 투입할 뿐 아니라 인간처럼 가지가지의 다양한 놀이를 개발하는 동물도 없다. 인간은 스포츠, 음악, 무용, 미술, 게임, 도박 등이 개발하고 그 각각의 종류도 다 헤아리기 어렵다. 이른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산업이 될 정도다
(2) 과학적이다(Being scientific). 이리저리 사물을 뜯어보고 여러 카테고리로 나누어 분별하고 또 논리적으로 분석, 실험하고 조작하는 것이다.
(3) 법률을 조문화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Being legislative). 통치 법규나 예의 규범, 규칙을 언어로 정교하게 성문화, 조문화하는 것이다.
(4) 조리를 해먹는다는 것이다(Being epicurean). 다른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요리를 해먹는다는 것(cooking)은 아주 기묘한 습관이다. 인간사에서는 가장 위대한 발명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5) 섹스에서 은밀한 것(Being clandestine)을 좋아한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섹스라는 것이 사적(private)이란 관념이 지배한다. 은밀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섹스를 부끄러워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도덕적인 관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섹스는 사적인 것이 아닌데, 인간은 사적인 것으로 은밀한 것으로 만들었다.
(6) 인간의 말이나 커뮤니케이션에는 가십성이 있다(Being gossipy). 다른 동물들도 언어가 있고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동물은 타자에 대한 험담을 하거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조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를 교묘하게 구사하면서 가십(gossip)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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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6가지를 다시 살펴보면, 인간성(human nature)의 반자연성(反自然性)이란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지 않다. (* 의 기사는 반자연성을 도출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점 오해가 없으면 한다.)
(1) 인간은 놀아도 곱게 놀지 못한다. 갖가지 인위적 조작과 모든 기교를 다 동원한다. 인간의 놀이란 것은 반자연적 특성을 갖는다.
(2) 과학적이란 것, 자연을 연구하는 자연과학 자체도 인위적 조작에 기초한다. 이를테면 의학에서도 내과, 외과, 신경과 등 갖가지의 영역으로 나눠서 뜯어본다. 인위적 분류법과 분석법을 개입시키면서 인체를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과학이란 것은,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위적 범주에 의해서 자연을 보는, 인위적 자연을 보는 것이다.
(3) 인간의 법률을 정교하게 만든다는 것, 그 이면을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은 법률을 정교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또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짓을 잘한다.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법률이 더욱 정교하게 조문화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준법의식이 강해서 조문화하는 기술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준법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걸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조문화가 달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위적 기교와 꼼수의 발달의 결과가 법률의 발달에 다름 아니다.
(4) 인간이 요리를 해먹는다는 것, 이것을 다른 동물에 대한 우월성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인간은 먹는 거도 곱게 먹지 않는다. 회로 먹고, 구워서 먹고 삶아서 먹고 쪄서 먹고 포를 떠서 말려서 먹고, 튀겨서 먹고, 발효시켜서 먹고양념을 해서 먹고, 양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뿐만 아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먹는다. 믹싱하고 퓨전을 해서 먹는다. 철저하게 반자연적인 특성이 아닐 수 없다.
(5) 섹스에 있어서 은밀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섹스가 종의 번식이라는 본래적 기능에서 일탈해서 욕망추구의 수단으로 둔갑하면서 사적(私的)인 것으로 되고 그래서 은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섹스가 사적인 것으로 둔갑한다는 것, 이게 반자연성에 다름 아니다. 섹스의 쾌감을 증가시키지 위한 의학적 수단(?)까지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 섹스의 반자연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6) 인간의 가십성(Being gossipy)이란 것도 그렇다. 인간의 언어가 다른 생물종에 대한 우월성을 말해주는 근거로 삼기도 하지만, 인간은 정직하게 팩트를 말하지 않는다. 비꼬아서 말하거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조작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타자를 공격하거나 지배하려는 의도 때문인데, 일상에서는 항상적인 것이다.
이상의 6가지 특성의 공분모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반자연성(反自然性)이다. 인간의 문명사적 발달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곧잘 이러한 반자연성이 발달의 동력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달리 보면, 그것은 대단히 인간중심의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길게 논란을 벌일 여지는 없지만, 자연생태계의 급격한 변화, 지구 환경의 변화가 진행되는 환경에 처해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인간이 환경의 변화를 통제할 능력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는 자연계의 변화를 수용하고 그 변화에 적응하면서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그 관건이다. 달리 말하면 자연성이 그 관건이다.
그런데 현실 인간종의 반자연성이라는 것은, 6가지 중 그 어떤 것도 자연성을 담지할 수 없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들이 진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종의 위기로 내모는 특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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