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지도로 본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와의 관계 프랑스의 유명한 좌파 언론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낸 ‘르몽드세계사: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 지구적 이슈와 쟁점들’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지만, ‘중국입장에서 바라 본 세계’,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 본 세계’라는 지도가 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 본 세계’는 없다. 짱꼴라들에 의하면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관계는‘산수상련 격해상망’(山水相連 隔海想望)이라고 했다. 곧 산과 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이웃이라는 의미다. 한반도와 중국대륙은 이웃사촌이지만 견원지간(犬猿之間, cat-and-dog terms)이 된 적이 많았다. 최근에도 짱개는 현대사에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주장하며 서남공정(티베트 자치지구), 서북공정(신장위구르자치구), 동북공정(고조선, 고구려, 발해 무대인 만주와 조선 자치국) 등을 감행하여 주변 국가, 특히 한반도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와의 관계는 고대와 중세엔 한반도가 문명과 문화를 전수해주는 선진국역할을 했지만, 일본열도는 그것에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항상 한반도와 갈등과 투쟁을 일으켜 오다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며, 한반도를 병탄한다. 그래서 그런 비극의 역사가 미완의 상태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처럼 짱개들과 쪽발이들은 ‘원교근공’(遠郊近攻, a policy of befriending distant states and of antagonizing neighbors)외교정책을 취했다면, 조선은‘사대교린’(事大交隣)외교정책을 취해 중국 명, 청의 반식민지가 되고, 결국 일제의 36년의 노예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이웃과 더불어 선하게 지내고 이웃과 동반자로 지내라는 ‘여린위선 이린위반’(與隣爲善 以隣爲伴)은 국내용이지, 국제관계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선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국제관계는 힘의 정치인 마키아벨리(Niccolo B. Machiavelli, 1469-1527)사상을 지향한다. 그러면 한반도의 지형적 모습에서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와의 관계를 상고해보자. I. 국내인의 국토관 일반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를 노인이나 맹호로 보아왔는데, 일제시대 때 쪽발이들이 한반도가 토끼형상이라고 세뇌 교육시켜서 한동안 나약한 백성으로 살아야 했다. 여기선 이중환의 ‘택리지’에 비친 국토관과 최남선의 국토관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1) 이중환의 ‘택리지’에 비친 국토관 조선 후기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의 실학자 청담 이중환(淸潭 李重煥, 1690-1752)은 이전의 풍수지리관점에서 벗어나 지리(地理:지리적 환경), 생리(生利: 경제적 환경), 인심(人心: 문화적 환경), 산수(山水: 자연적 환경)의 관점에서 조선8도를 논하며, 조선후기의 정치부패 및 사상의 진부함에 대해 다룬, 최초의 인문지리서‘택리지’(擇里志: 八域志)에서 옛 사람들은 한반도의 모습을 노인모양지세, 곧 서쪽(중국)으로 얼굴을 들어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리는 읍(揖)하는 형상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국토관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선의 ‘사대교린’(事大交隣) 외교정책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한반도 지형론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 한반도를 인체에 비유하면. 백두대간은 등뼈,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동쪽은 등판,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서쪽은 복부에 해당된다. 인체에서 등뼈도 중요하지만, 복부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왕조들도 수도의 위치를 동쪽보다는 서쪽을 선호했다. 고구려의 평양, 백제의 한성과 공주와 부여, 고려의 개성, 조선의 한양, 대한민국의 서울이 그 유형이다. 이에 반해 중국대륙은 서쪽이 등뼈, 동쪽이 복부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반도와 중국대륙은 서해에 배를 붙이고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조선은 중국과 독립된 나라이고, 자국어도 있는 주체성있는 대문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배층 스스로가 소중화로 자처한 것이 큰 화근(禍根, source of trouble[calamity)을 불러온다.‘청일전쟁’(1894. 7-1895. ㅡ4) 직후 1895년 4월 17일에 조인하고, 5월 10일 발효된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 馬關條約) 제1조의 내용이 ‘청국은 조선국의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國ハ朝鮮國ノ完全無缺ナル獨立自主ノ國タルコトヲ確認ス因テ)는 것이다. 그래서 쪽발이와 구미선진국에서는 조선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말미암아 청나라에서 독립했다고 해석한다. 우리에겐 참으로 억울한 일이지만, 조선의 소중화정책은 타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반식민지상태로 비쳐진 것이다. (2) 최남선의 국토관 독립선언문을 기초하였지만 후에 일제의 시다바리 노릇을 한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 1890-1957)은 1908년 19세 나이로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하여,‘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어 조선근대시사에서 최초로 신체시를 선보여, 조선근대문학의 선구자의 한 사람이 된다. 그는 '소년'지 창간호에 한반도지도를,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로 바꿔 실었다. 이중환의 노인의 두 손은 발톱을 곤두세운 호랑이 발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백성들에게 무한한 자긍심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왜냐하면 맹호(猛虎)인 조선은 더 이상 나약한 나라가 아니라 앞을 향하여 포효하며 달리면서 진취적인 기상을 세계에 보여주는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남선의 '조선 맹호론'은 쪽발이가 조선을 토끼로 얕잡아본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긴데서 유래한 것이다. 도쿄대학 지질학과의 1회 졸업생으로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도쿄대학 교수가 된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 1856-1935)는 1900년 말부터 1902년 초까지 한반도를 답사한 뒤 이렇게 조선을 평가했다.“조선은 그 모습이 토끼가 발을 모으고 일어서서 중국 대륙을 향하여 뛰어가는 형국이기 때문에 조선은 늘 남의 속국이 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운명이다.”이탈리아는 외형이 장화(長靴)와 같고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것과 같아, 전라도는 뒷다리에, 충청도는 앞다리에, 황해도에서 평안도는 머리에, 함경도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귀에,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각각 해당된다는 것이다. 1898년 발간된 항일언론의 대표신문인 '황성신문'(皇城新聞)은 19세 청년 최남선의 '조선 맹호론'을 접한 얼마 뒤에 '지도의 관념'이라는 칼럼을 실어 이를 극찬한다. 동시에 조선 사람들이 조선 형국을 비하시키고 있는 당시 습속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통일한 것은 완전 통일이 아니다. 그것은환웅천황이(桓雄天皇) 3898년 신시에 세운 대제국 배달나라(培達國 BC. 3898-2333)의 땅, 곧 반도 북쪽에서부터 만주 전역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당나라에 빼앗긴 것이다. 우리 배달민족은 동북아를 호령하며 중국을 지배하였고 일본을 다스렸는데,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놈들이 우리 한반도의 지형을 관찰한 후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이 한반도의 형상이 웅크린 호랑이를 닮아 언젠가는 뒷발로 일본을 박차고 만주 대륙을 움켜쥘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짱개와 쪽발이는 한반도 조선을 경계하며 틈이 보일 때만다 침략하여 수탈하기를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쪽발이는 우리 배달민족의 웅혼을 잠재우기 위하여 임진왜란 때부터 한반도의 혈맥을 찾아, 삼십육 방위에 수백 개의 철심(쇠말뚝)을 깊숙이 막아 넣었고, 일제 식민지 시절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면 조선을 토끼 형국으로 보았던 쪽발이들은 자기 나라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들은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으로 보았다. 이것은 일본 개화기의 계몽사상가이자 교육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반영한다. 그는 1885년 3월 16일자 일본의 ‘시사신보’(時事新報)의 사설을 통해, 일본의 서구문명화와 아시아 탈피를 부르짖으며, “중국과 조선을 접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고, 당해 8월 13일자에 “조선인민을 위해서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는 한반도에게 불행을 선사했지만, 쪽발이에겐 세계경제강국이 되게 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다. 그래서 1984년-2004년의 일본은행권 D호 1만 엔권, 2004년부터의 E호 1만 엔권에 그의 초상화가 사용되어, ‘유키치’라는 말이 1만 엔권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한반도는 남성의 성기, 일본열도는 여자의 자궁을 닮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의 순환을 생각해보자. 땅의 물이 기화(氣化)하여 하늘로 올라가면 다시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땅은 이 비를 받아 지구의 생명을 잉태시킨다. 하늘의 비는 남자의 사정(射精)으로 상징되는 남성적 행위를 상징하고, 땅은 그 정액을 받아들이는 여인의 자궁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반도는 고대와 중세전기의 선진문화와 문명을 일본열도에게 전해주면 일본열도는 그대로 전수받았고, 뿐만 아니라 16세기엔 세계최강의 스페인, 포르투칼, 17세기엔 네덜란드의 선진문명, 18세기엔 프랑스, 영국, 19세기엔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최초로 구미열강과 맞먹는 근대국가로 거듭나, 미영의 협조로 청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지만, 한반도의 6.25전쟁덕분에 세계경제강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에 반해 조선은 달랑 중국하고만 교류하다가, 나중엔 청나라가 오랑캐가 세운 나라라고 무시하고, 소중화를 자처하며 청나라와 전혀 교류하지 않은 채, 지금의 북한보다 더 심한 고립상태에 있다가 쇠망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고대와 중세시대에선 일본인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근현대사에서는 일본에 대해 강한 반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다 쪽발이의 이야기에 넌덜머리(an aversion)가 나니 유머 한마당을 깔아 보겠다. 어느 날 한가로이 토끼가 길을 가고 있었다. 갑자기 난데없이 나타난 호랑이와 조우한다. 호랑이: 야 잘 걸렸다. 출출한 참에. 토끼: (여태까지 자기가 알고 있는 동물의 왕은 사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상한 놈이 자신을 위협하니 황당하며 무지 놀랐다) 야, 내 친구 중에 싸움 잘하는 애 있는데 한판 붙어볼래? 호랑이: (자신이 짱인 줄 알던 중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지 흥분하며) 누군데 빨리 데리고 와! (이리하여 호랑이와 토끼는 사자를 찾아가게 되었다. 토끼는 사자굴 입구에서 호랑이에게 기다리라고 시킨 후 사자에게 갔다) 토끼: 사자야!! 어떤 애가 너보다 싸움 잘한다구 너한데 덤비래. 사자: (경악하며) 어떤 놈인지 몰라도 죽었다...그 놈 어디 있어? (사자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사자굴을 나서다 호랑이와 마주치고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토끼: (깜짝 놀라 사자를 쫒아가며) 야, 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 사자: (숨차며 왈) 헉헉!! 야, 너도 그놈 문신 봤냐? 사자는 낯선 것 싫어하기(neophobia) 때문에, 타인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기는데 반해, 호랑이는 낯선 것 즐기기(neophilia) 때문에, 타인을 정복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공존해야 할 친구로도 생각하는 여유가 있다. 이처럼 호랑이는 야수성과 친밀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우리도 부국강병을 기초한 야수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한류를 통하여 세계인들에게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의 사상을 전하여 대문화강국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돌려보자. 서양별자리는 여든여덟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자자리, 작은여우자리, 살쾡이자리는 보이지만 정작 호랑이 자리는 없다. 하지만 동양별자리엔 호랑이 자리가 나타난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달이 한 달 동안 움직이면서 지나가는 밤하늘의 길을 스물여덟 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중하게 여겼다. 그 길을 따라서 늘어선 별들을 지역별로 나누었는데, 이를 28수라고 불렀다. 이 28수를 일곱 개씩 묶은 다음, 별자리가 시간에 따라 움직여가는 순서대로 동서남북 네 방위로 다시 나누었다. 이들을 동방칠수, 서방칠수, 남방칠수, 그리고 북방칠수라고 불렀는데, 각각의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을 두었다. 동쪽에는 뿔이 달린 청룡, 서쪽에는 하얀 털을 가진 백호가 자리잡고 있다. 남쪽에는 빨간 수탉을 닮은 주작, 그리고 북쪽에는 거북이와 뱀이 뒤얽힌 현무가 수호신으로 방위를 지키고 있다. 고구려 무덤 안 벽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다. 우리 밤하늘에는 하연 호랑이인 백호가 서방칠수가 되어 듬직하게 떠 있는 것이다. 안드로메다자리에 해당하는 규수는 호랑이의 꼬리를, 양자리, 황소자리, 플레이아데스성단을 아우르는 루/위/묘/필수는 호랑이의 몸을 나타낸다. 오리온자리 머리인 자수는 호랑이의 머리를, 오리온자리 삼태성을 포함하는 삼수는 호랑이의 앞발을 의미한다. 밤하늘의 하얀 호랑이 백호가 한반도를 지키고 있다.
II. 게오르규의 견해 메시아의 구원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시간인 ‘25시’라는 소설을 집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인 신부(희랍정교)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는 산문시‘한국찬가’에서 이렇게 한국의 미래의 영광을 묘사한다. “한국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극동 아시아의 하나의 반도이다. 그러나 평면구형도를 놓고 볼 때 그것은 반도가 아니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다. 아시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한국이라는 귀고리를 달아 놓은 것이다. 한국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깎여지고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것이다. 그 해안은 레이스로 되어 있다. 칠보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정말로 자수이다. 오직 보석만이 그러한 식으로 재단된다. 한국은 반도가 아니고 장식품이다. 하나의 보석, 하나의 귀고리이다. 레이스로 수놓은 천 8백 킬로미터의 해안에 3천 4백 개의 섬이 있다. 세공된 크고 작은 섬, 온갖 형태의 섬들이 해안을 장식하고 있다.” 그는‘25시’에서 그리스인은 인류에게 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로마인은 인류에게 정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그리스도교는 인류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가르쳐주었지만, 서양인은 이런 고귀한 가치를 상실했고, 오히려 동양인에게서 서양인보다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한다고 주장한다. 동양에 미래의 꿈을 둔 게오르규는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찬탄한다. “수난의 밤만이 조용한 아침을 창조할 수 있다. 어떤 수난을 만나든지 한국 사람들은 이것을 한줄기 아침 햇빛과 같은 아름다운 한 줄의 시로 변화시키는 지혜를 갖고 있으며, 암흑이라도 흰옷처럼 순수한 빛으로 승화시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 할 수 있는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
서정시 ‘기탄잘리’(Gītānjali, 1912)로 1913년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태로(李太魯)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송시, 주요한(朱耀翰)의 번역으로 당해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동방의 등불’도 한국의 미래상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마음에 두려움이 없고/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지식은 자유롭고/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III. 나가는 말 증산도(甑山道)에서는 한반도가 지국의 핵(核)이자 혈(穴)이라고 평가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열도는 내청룡(內靑龍)을 이루었고, 중앙아시아에서 뻗어가 내린 인도차이나반도가 내백호(內白虎)를 이루었으며, 남북아메리카대륙이 외청룡(外靑龍)을 이루었고 유럽과 아프리카대륙이 외백호(外白虎)를 이루었으며, 호주대륙이 안산(案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풍수지리설은 기복신앙을 밑바탕에 깐 견강부회(牽强附會) 또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해석이라 어딘가 사기(?)냄새를 풀풀 풍기기지만 한반도가 세계사에서 주역을 담당해야한다는 해석에는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넘었고, 국민건강도 매우 양호하며, 문맹률은 거의 제로상태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단 하나의 문화유산도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Memory of the World)에 등재하지 못했고, 중국은 5개만 등재되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훈민정음’(1997.10), ‘조선왕조실록’(1997.10),‘불조직지심체요절’(2001.09), ‘승정원일기’(2001.09), ‘조선왕조의궤’(2007.06),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06), ‘동의보감’(2009.07), ‘일성록’(2011.05),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05)이 등재되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문화강국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한류’가 증명하고 있다. 한반도 호랑이가 뒷발로 쪽발이들을 밀어 젖히고 꼬리로 내리치자 일본열도는 한방에 나가 떨어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카운트다운 하고 있고, 중국대륙을 향하여 질주하며, 포효할 때 짱꼴라는 겁먹고 질금질금 오줌을 누며 맘 졸이고 있고, 세계는 경탄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위대한 한반도! 전 세계를 포효하며 달리고 있는 한반도 호랑이! 애국가의 하느님이 축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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