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일) 강의한 ‘천주교 예수회가 조작한 김수한 전 추기경’를 YouTube로 올렸다.
독자 여러분께서 구글의 검색에 ‘함시영 목사’를 기입하면 위의 강의를 듣고,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점은 물론 철학과 타종교와도 비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그 동안 강의한 내용도 시청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하이테크 사회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의 저서‘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1981)은 현대사회를 잘 진단하고 미래사회를 예언하고 있다. ‘사뮬라크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고, 그것은 허구면서 동시에 실재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점에서 ‘초과실재’(hyperreality)다.
바티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보다는 마술적인 지배를 지향하는 정치집단의 로마교회 또는 라틴교회이기 때문에 역사와 문서 등의 조작에 명수(名手)다.
천주교의 성직계급은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성직자들은 귀족계급, 천주교 신자들은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과 저항할 수 없는 복종이다. 이런 제도는 전체주의, 전제군주주의, 독재주의를 낳았다.
교황 바오로 6세(라틴어 Paulus PP. VI; 이탈리아어 Papa Paol VI; 영어 Pope Paul VI, 재위 1963.6.21.-1978.8.6., 1897-1978)에 의해 스테파노이며 아호가 옹기인 김수환(金壽煥, 1922-2009.2.16)은 3년의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주교, 대주교, 추기경으로 고속 승격하는데, 이것은 매우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천주교는 안정된 위치에 있었고, 김 전 추기경보다 앞선 대선배들이 즐비하였기 때문에, 천주교의 강력한 조직사회에서 선후배의 관계를 깬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이며, 거기엔 어떤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살펴보자.
1. 교황 바오로 6세와 빅토리노 윤공희(尹恭熙, 1924.11.8.-)
윤공희 사제는 33세 때인 1957년에 우르바노 대학교(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Pontificia Universita Urbaniana: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선교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와 절친인 교황 우르바노 8세; 라틴어 Urbanus PP. VIII; 이탈리아어 Papa Urbano VIII, 재위 1623-1644, 재위기간은 30년 전쟁1618-1648 중 21년 동안이었음, 1568-1644이 설립하였고, 이후 교황 요한 23세; 라틴어 Ioannes PP. XXIII;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XXIII; 영어 Pope John XXIII, 재위 1958.10.28.-1963.6.3., 1881-1963가 우르바노대를 교황청립 대학으로 승격시킴)에서 석사 학위를, 36세 때인 1960년에 그레고리오 대학교(1551년 2월 18일 예수회의 창립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프란체스코 보르지아Francesco Borgia의 봉헌금으로 로마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에 있는 한 건물에 세를 들어 문법과 인간성,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시작으로 출발)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학위 논문 주제는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의 성서 주석’에 관한 것이다.
39세 때인 1963년 새로 신설된 수원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주교 서품식은 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바오로 6세가 바티칸에서 집전하였다. 그 후 43세 때인 1967년에는 바오로 노기남(盧基南, 1902-1984: 1930.10.26.의 사제서품 , 교황 비오 12세에 의한 40세 때인 1942.12.20.의 주교서품, 교황 요한 23세에 의한 60세 때인 1962년 대주교로 임명) 대주교의 은퇴로 공석이 된 서울대교구 대주교 자리가 공석이 되자 임시 관리자로 1년 이상 봉직하였다.
이것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윤 대주교를 대한민국 천주교 추기경으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윤 대주교는 2년 선배인 김수환 전 추기경에게 밀리고, 49세에 대주교로 서품되며, 광주대교구 제7대 교구장이 된다(1973-2000)
2. 예수회와 스테파노 김수환(金壽煥, 1922-2009.2.16)
김수환 사제는 1956-1964년 박사학위 없이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다.
1966년 2월 15일(당시 43세) 김수환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마산교구장 주교로 임명되고, 1967년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바오로 노기남 대주교가 고령의 나이를 이유로 은퇴하자 1968년 4월에 바오로 6세에 의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대주교로 서임되며, 47세 때인 1969년 3월 28일 김수환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는데, 전 세계 136명의 추기경 중 연소자가 된다.
여기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예수회의 모략을 엿볼 수 있다.
(1) 김수환은 일본 도쿄의 조치대학(上智大學; Sophia University) 문학부 철학과에서 독일 예수회 사제 테오도르 게페르트(Theodore Geppert S.J., 1904-2002) 박사를 만난다. 게페르트 박사는 19세 때인 1923년 네덜란드 헤렌버그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기 때문에 예수회의 사상에 세뇌된 사람이다. 김수환은 자신의 추기경 서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게페르트 박사의 전화를 통해서였다고 고백한다.
(2) 교황 바오로 6세의 고해사제가 이탈리아 예수회 추기경인 파올로 데자(Paolo Dezza, S. J., 1901-1999: 17세 때인 1918년 12월 2일 예수회에 입문하고 1928년 3월 25일 사제서품을 받고, 199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직에 오름)다.
게페르트와 데자가 합의해 제28대 예수회의 총장 스페인의 페드로 아루페(Pedro Arrupe S. J., 재위 1965.5.22.-83.9.3, 1907-1991: 1936년 사제서품을 받고, 1938년 일본에서 사역, 1983년 중풍으로 예수회 총장 사임. 제2차 바티칸 공의회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0-1965.12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의회 정신에 비추어서 예수회를 재창설)의 허락을 받고 바오로 6세에게 조언하여 김수환을 추기경으로 만든다.
그러면 데자라는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는 또한 요한 바오로 1세(라틴어 Ioannes Paulus PP. I;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Paolo I; 영어 Pope John Paul I, 재위 1978.9.3.-1978.9.28, 1912-1978)의 고해신부였고, 요한 바오로 2세(라틴어 Sanctus Ioannes Paulus PP; 이탈리아어 Papa San Giovanni Paolo II; 그리스어 Πάπας Ιωάννης Παύλος Β; 프랑스어 Saint Jean-Paul II; 독어 Papst Johannes Paul II; 영어 Saint Pope John Paul II, 재위 1978-2005, 1920-2005)의 스승이었다.
데자 추기경은 교황 비오 12세(라틴어 P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Pio XII; 영어 Pious XII, 재위 1939-1958, 1876-1958)가 매우 신뢰한 조언자(교황 비오 12세의 개인비서를 지내고, 교황청의 고위직에 오르지 않았지만 ‘나는 베드로-교황비오 12세-가 아니라 그의 비서인 로베르트 라이베르를 두려워한다; 라틴어 Timeo non Petrum sed secretarium eius; 영어 I do not fear Peter [the Pope], but his secretary’는 말을 들을 정도로 충직한 인물)로, 그레고리 대학교 역사교수(1930-1960)를 역임한 독일 출신 예수회 사제 로베르트 라이베르(Robert Leiber, S.J., 1887-1967), 비오 12세의 고해신부(a confessor to Pope Pius XII)를 지낸 아우구스틴 베아(Augustin Bea, S. J. 1881-1968: 21세 때인 1902년 4월 18일 예수회에 가담하고, 31세 때인 1912년 8월 25일 사제서품을 받고, 1912-1917의 아헨Aachen의 예수회 지역구장, 1921-1924의 독일 예수회의 관구장을 역임), 독일 예수회관구장과 그레고리 대학교수를 역임한 신학박사이자 철학박사인 오토 팔러(Otto Faller S. J., 1889-1971: 21세 때인 1910년에 예수회에 입회하고 31세인 1918년 사제서품을 받음) 등과 함께 비오 12세를 도와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교황 무류성으로 성모(聖母) 몽소승천(라틴어 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in coelum; 영어 the Assumption of Mary)을 선언하게 할 정도로 바티칸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3) 제28대 예수회 총장 스페인의 페드로 아루페(Pedro Arrupe S. J., 재위 1965.5.22.-83.9.3, 1907-1991: 1983년 중풍으로 예수회 총장 사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0-1965.12)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의회 정신에 비추어서 예수회를 재창설하여, 해방신학을 주창한다.
3. 종합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로 새겨져 있는 사람들, 곧 가난한 자, 부자, 소외된 자, 상류층 등의 모든 인류와 우주만물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이지, 예수회가 주장하는 가난한 자만을 위해 사신 분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는 예수회가 아주 싫어하는 부자이며 권세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빌라도의 아내 프로쿨라 클라우디아(Procula Claudia)의 꿈을 통해서 예수님의 무죄를 입증하시며, 클라우디아를 통해 빌라도에게 경고하신다(마27:19). 그러자 빌라도의 주저하는 모습이 마태복음 26:21-22에 묘사되어있다.
클라우디아는 로마 제국의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디베료; 라틴어 Tiberius Claudius Nero Caesar; 재위 A. D. 14. 9. 17-37. 3. 16; 42 B. C.-A. D. 37)황제의 질녀(조카딸)인데, 3세기경 오리게네스(오리겐; 라틴어 Origenes, 영어 Origen, 185?-254?)의 저서‘마태복음설교’(Homilies on Matthew)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등장하며, 동방정교회와 에티오피아교회에는 클라우디아를 성자의 반열에 포함시킨다. 동방정교회에서는 10월 27일을 축일로 지내며, 에티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함께 6월 25일을 축일로 지낸다.
아리마대 출신 요셉(아리마타이아스 출신 요셉; 헬라어 Ioseph apo Arimathaias; 라틴어 Ioseph ab Arimathaea; 독어 Josef aus Arimathaa; 영어 Joseph of Arimathea)은 큰 바위로 입구를 막아 두는 무덤을 예비(요20:1)할 정도의 부자(마27:57)였고, 산헤드린(민 11:16의 모세가 임명한 70인의 장로회에 그 기원을 둔다. 대제사장이 의장이며 공회원은 바리새인, 제사장 계급을 독점한 사두개인, 서기관, 장로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율법에 따라 70명을 정수로 하였는데, 의장 포함 71명이다. 로마 통치하에서도 정치 문제-사형권은 로마 당국에만 있었음-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입법과 사법을 총괄하는 최고 정책 의결 기구였으며, 모든 안건은 만장일치로 의결했음)회원으로서 선하고 의로웠으며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이다(막15:43; 눅23:50). 빌라도(필라투스)총독에게 요청해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서 바위를 파서 만든 새무덤에 안치했다. 이것은 사53:9예언의 성취다.
니고데모(니코데모스; 헬라어 Nikodemos; 라틴어, 영어 Nicodemus, 독어Nikodemus)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에 대해 질문했을 정도로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이었으며(요3), 산헤드린회원으로서 예수님을 변호한 사람이다(요7:50-53). 몰약(방부제)과 침향(알로에로 만든 건조제와 방취제)섞은 것을 백 근(40kg)쯤 가지고 왔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세마포로 감았다. 세마포는 올이 아주 고운 삼베로서 이스라엘제사장들은 이 세마포로 지은 옷을 착용했다.
이런 사실에서 보면 예수회의 가난의 신학, 해방의 신학은 외눈박이 신학에 불과하고, 예수회의 사니리오에 의해 만들어진 김수환 전 추기경의 민주화운동도 비성경적임은 물론 천주교 신자 요한 장면정부를 전복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원망에서 나온 노예짓거리 동시에 전라도 김대중을 대통령 만들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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