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천주교의 타락의 원인!!!

아우구스티누스 2018. 8. 22. 14:08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이글을 올리면 제 살 깎아 먹기식의 속담이 적용되는 줄 알면서도 올리는 이유는 마르첼리노의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 JTBC 보도 담당 사장 손석희가 어제(21) 보도한 목사의 성폭력사건은 정통기독교 목사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SNS을 통해서 이단이나 사이비의 성폭력범에 대해 말할 때 반드시 출신대학이나 신학교를 밝혀 달라고 요청했지만 손 사장이 준수하지 않아 이런 글을 올릴 수밖에 없다.

 

지금 기독교를 폄훼하는 무리들이 많은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넘어뜨리고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위성국가로 만들거나 김일성세습독재수령체제의 김정은의 김씨종교국가로 만들려는 빨갱이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천주교가 아니라 기독교가 세운 국가임을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지난번에 올린 글이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19193.1혁명은 천주교가 아니라 16명의 기독교인(천도교 15, 불교 2)이 주최가 되어 이루어졌다. 성리학사상의 그릇된 적용 때문에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선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유교단체에서는 단 한 명도 3.1혁명에 참가하지 않았음은 물론 천주교 성직자를 비롯해 신자도 보이지 않았다.

 

3.1혁명으로 인해 기독교인(천주교신자는 없음) 중심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그 이념은 대한민국수립의 근원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천주교가 아니라 기독교에 의해 수립되었다(건국은 개천절임).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정동감리교 장로였다.

 

1948510일 제헌국회의 임시국회의장 이승만 박사의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개원사와 감리교 목사 이윤형 의원의 기도로 제헌국회 개원식이 개최되었다.

 

이에 반해 천주교의 경우,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김수환(金壽煥, 1922-2009, 스테파노) 전 추기경의 민주화운동을 제외하곤 한반도에서 매국노짓거리만 한 이탈리아의 지역종교에 불과하다.

 

조선이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위성국가라고 전 세계에 선언하며 중국의 청국이 종주권(宗主權)을 행사하여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조선이 서양인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해 주기를 요청한 황사영(1775-1801)백서(黃嗣永帛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장군을 단죄하며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우긴 제8대 조선 가톨릭교구장이던 프랑스인 뮈텔(Gustave-Charles-Marie Mutel,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조선이름 민덕효閔德孝, 1880-1885, 1885 귀국, 1890-1932, 1854-1933) 대주교(1926-1933)의 조선관, 5.16쿠데타에 겁먹고 수녀원으로 도망쳐 자신의 목숨만 챙긴 천주교 신자 세례명 요한인 장면(張勉, 1899-1966: 19501123일부터 1952423일까지 제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1960819일부터 1961517일까지 제7대 국무총리를 역임) 정부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나라 미국보다 공산주의 나라 중국우호선교정책을 지향하는 바티칸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문재인 대통령 등의 실례를 들 수 있다.

 

그러면 천주교의 타락의 근본원인에 대해 살펴보자.


1. 교황 비오11(라틴어 Pius PP. XI; 이탈리아어 Papa Pio XI; 영어 Pious XI, 재위 1922-1939, 1857-1939)의 정교조약(교황청과 국가 간의 조약)

 

(1) 천주교의 타락의 배경엔바티칸시국’(市國; 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ae;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영어 The Vatican City)의 등장에 있다.

 

1860년 근대 통일 이탈리아 국가를 세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이탈리아어 Vittorio Emanuele II, 사르데냐 국왕 재위 1849-1861, 이탈리아왕 재위 1861-1878, 1820-1878) 국왕은 군대를 앞세워 교황령 대부분을 강탈한 데 이어 1870년에는 로마를 수도로 병합한 후 교황령을 모두 빼앗아 버려 교황청과 이탈리아 왕국은 대립을 계속해 오고 있었는데, 교황 비오 11세는 국무성성 장관 추기경(라틴어 Cardinalis a Secretis Status; 영어 Cardinal Secretary of State, Papal Secretary: 1914-1930년 동안 교황청의 수상 격으로 교황청의 각 성성聖省들을 주재) 피에트로 가스파리(Pietro Gasparri, 1852-1934)를 교황청 대표로 하여 1929211일 이탈리아 당시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이탈리아어 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재위 1922-1943, 1883-1945) 정권과의 사이에 라테라노(라테란)(이탈리아어 Palazzo Laterano; 영어 Lateran Palace)에서 라테라노(라테란)조약(이탈리아어 Patti Lateranensi; 라틴어 Pacta Lateranensia; 영어 The Lateran Treaty)을 체결하며, 이탈리아의 국회가 동년 67일 비준하고, 1947년 이탈리아의 헌법에 인준되어 교황청이, 오늘의 바티칸시국’(市國; 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ae;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영어 The Vatican City)으로 자리를 잡는다.

 

비오 11세는 과거 교황령 시절의 영토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는 대신 무솔리니의 파시즘정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받는 동시에 자주 중립적 독립국으로서의 바티칸 시의 지위를 보장받게 되며, 비오 11세 자신은 교황령이 몰락한 이후 주권국가의 국가원수 자리에 오른 첫 번째 교황이 되며, 가톨릭은 이탈리아의 국교로 인정받는다.

 

대중적 기반이 약했던 무솔리니는 라테라노 조약으로 파쇼권력의 국내 지지기반(대부분 가톨릭 신자들인 이탈리아국민)을 확보하고, 국제 정치무대에서도 박수를 받는다.

 

이와 같이 바티칸의 등장은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공식적인 인정에서 탄생된 것이다.

 

(2) 1933130일 독일의 총리가 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정교 협약을 맺자는 제의를 하자 비오 11세는 이를 수락하였다. 1933910일 에우제니오 파첼리(Eugenio Pacelli: 후에 교황 비오 12세라틴어 P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Pio XII; 영어 Pious XII, 재위 1939-1958, 1876-1958이 됨) 추기경과 독일 정부는 교회의 자유 보장, 가톨릭 단체와 청년 모임의 독립,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을 포함한 제국종교협약(Reichskonkordat)을 체결하였다.

 

(3) 비오 11세는 193363일에 딜렉티시마노비스(라틴어 Dilectissima Nobis; 영어 On Oppression of the Church of Spain)의 회칙을 통해 1931년 정권을 잡은 에스파냐 공화당 정부(The Republican government)의 무자비한 반가톨릭정책(학교에서 로마 가톨릭 교육금지, 예수회 축출, 스페인 영토의 1/3를 차지한 로마 가톨릭 재산을 국가재산으로 환원 등)을 비난하고, 19367월에 발발한 에스파냐내전에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는 독재자로 자신의 독재권 행사에는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나는 정당을 미워한다, ’우리는 투표 행위 따위의 위선적인 방법이 아닌 총칼과 동지들의 피로써 정권을 쟁취했다.’고 선언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재위 1939-1975 총통, 국가원수, 정부 수반, 내각의 의장, 1892-1975)장군을 지지한다. 스페인 내전(The Battle for Spain, 1936-1939) 후 에스파냐는 팔랑헤당(Phalange)1당 독재에 의한 파시즘국가가 된다.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0),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1903-1950)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 1938), 앙드레 말로(1901-1976), 희망’(프랑스어 L'Espoir, 1937; 영역 Man's Hope, 1938),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게르니카’(Guernica, 1937) 등의 작품들이 에스파냐내전의 비극을 전하지만, 이와는 달리 비오 11세는 생명사랑과 평화를 주장 하지 않고 오직 천주교 신앙의 자유와 신자보호와 재산을 위해서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인 에스파냐내전에서 프랑코 총통의 편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2. 비오 12(라틴어 Pius PP. XII; 이탈리아어 Papa Pio XII; 영어 Pious XII, 재위 1939-1958, 1876-1958)

 

(1) ()유대주의자?

 

비오 12세는 1939210일 전임 교황 비오 11세의 지시로 준비되었던, ()유대주의(antisemitism), 인종차별주의(racism), 유대인 박해(the persecution of Jews)를 단죄하는 회칙인 인류의 단일성’(라틴어 Humani generis unitas; 영어 On the Unity of the Human Race)을 발표하지 않음(이 회칙은 비밀의 회칙The Hidden Encyclical’ 또는 분실된 회칙The Lost Encyclical’이라고 불린다. 1995년에 프랑스어로 ‘L’Encyclique Cachée de Pie XI’, 1997년에 영어로 ‘The Hidden Encyclical of Pius XI’비오 11세의 비밀의 회칙으로 번역됨)은 물론 홀로코스트(히브리어 השואהShoah; 그리스어 λόκαυστοςholókaustos; 영어 Holocaust: 그리스어 ‘whole전체hólos’+‘burnt offering번제kaustós’에서 유래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에 대해 철저히 침묵해 비판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에 전시된 비오 12세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비오 12세 복자(福者라틴어 Beatus; 영어 Blessed: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믿어져 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 시복(施福: 복자福者의 반열에 올리는 것) 추진에 반발해, 20091219역대 교황 중 598년 만에, 2013년 고령 및 건강상의 이유로 들며 자진 사임하여, 퇴임 후 명예 교황’(emeritus pope)에 추대된 제265대 교황(재위 2005-2013) 베네딕토 16(라틴어 Benedictus PP. XVI; 이탈리아어 Papa Benedetto XVI; 그리스어 Πάπας Βενέδικτος ΙΣΤ; 프랑스어 Pape Benoît XVI; 독어 Papst Benedikt XVI 영어 Pope Benedict XVI, 본명 Joseph Aloisius Ratzinger, 재위 2005-2013, 1927-)는 비오 12세를 복자 전 단계의 시복 후보자인가경자’(可敬者; 라틴어 venerabilis; 영어 venerable)로 선포했어야 했다.

 

1999년 영국의 기자이자 작가(과학, 로마가톨릭과 교황 등) 존 콘웰(John Cornwell, 1940-)뉴욕 타임스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자신의 저서 히틀러의 교황’(Hitler’s Pope, 1999)에서 비오 12세를 1933년 비오 11세를 도와 나치정권과 정교조약을 맺고 나치정권의 합법화에 협조하며 1942, 1943년 초 홀로코스트가 공공연하게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켰다고 비난한다.

 

영국의 성공회 사제로 그리스도교의 역사학자인 오웬 채드윅(William Owen Chadwick, 1916-2015: 1958-1968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회사의 딕시교수Dixie Professor of Ecclesiastical History, 1968-1983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역사흠정欽定강좌담당교수Regius Professor of History, 1956-1983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셀윈 대학의 학장Chadwick was elected and served as the Master of Selwyn College, Cambridge을 역임)은 콘웰의 저서가 학문성이 있고 새롭고도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폭로한다고 비평한다.


2004년에 콘웰은 히틀러의 교황이어 히틀러의 과학자들: 과학, 전쟁 그리고 악마의 계약’(Hitler's Scientists: Science, War, and the Devil’s Pact), 동년에 겨울의 로마교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어두운 얼굴’(A Pontiff in Winter: The Dark Face of John Paul II’s Papacy)을 출간했다.

 

위에서 보았듯이 교황 비오 12세는 나치가 무신론 집단인 공산주의를 막을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이 바티칸의 성직자계급제도(Hierarchy)와 유사해 매우 매력을 느낀 동시에 천주교 신자보호 차원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입을 다문 것으로 본다.

 

(2) 정교조약

 

194057일 에스파냐내전 때 프랑코 총통을 지원한 동시에 나치를 비밀리 협조하며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로부터 비밀경찰과 관련된 것들을 배우며 비밀경찰을 조직, 운용하고, 식민지정책(브라질, 아프리카의 모잠비크, 앙고라,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잔지바르, 소말리아,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澳門오문, 동티모르 등)을 이어가며 인권탄압의 철권통치, 독재정치(포르투갈의 두 청년이 자유를 위하여 건배했다는 죄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7년을 보냄)를 휘두르며 평생 단 한 차례도 외유(外遊)하지 않음은 물론 내외기자회견도 거부한 포르투갈의 신으로 군림하면서하나님, 조국, 가족’(포르투갈어 Deus, Pátria e Familia; 영어 God, Fatherland, and Family)을 모토로 삼으면서 아이러니컬하게 3F, Futebol(축구), Fatima(종교), Fado(대중음악)의 활성화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정권을 지탱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 재위 1932-1968, 1889-1970)수상 치하의 포르투갈과 1955827일 프랑코 총통 치하의 에스파냐와 정교조약을 맺음으로써 비오 12세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과 독일 나치 정권에 협력해왔다고 비난받고 있다.

 

프랑코 총통은 위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필자는 살라자르 수상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1910년 포르투갈의 왕정(the Portuguese monarchy)이 폐지되고 최초로 공화국(the First Portuguese Republic)이 수립되지만, 계속적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1926528일 군사혁명이 일어난다. 군사정부는 1916-1928의 코임브라 대학교(the University of Coimbra)에서 정치경제학 교수 살라자르를 1928426일 제81대 재무장관에 임명한다. 그는 대공황 속에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하며, 1932년에 수상에 임명된다. 1933년 경제개발을 위해서 총리인 자신에게 권한을 집중한 1, 국민연합’(União Nacional: 1970년 카에타누가 국민대중행동Acção Nacional Popular으로 명칭변경’)을 기반으로 독재체제이자 종신체제인 극우신국가’(포루트갈어 Estado Novo; 영어New State)를 도입하여 1974년까지 유지한다. 19688, 그는 낙상사고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급히 수술을 받지만 의식 불능 상태로 진단을 받게 되며, 집권당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1944-1947 식민장관(Minister of the Colonies), 1949-1955 국민동맹의장(President of the Corporative Chamber), 1955-1958 부총리(Minister of the Presidency와 리스본 대학 제9대 총장(the 9th Rector of the University of Lisbon, 1959-1962)을 역임한 마르셀루 카에타누(Marcelo Caetano, 재위 1968-1974, 1906-1980 박사를 수상으로 선출한다. 하지만, 살라자르는 기적적으로 깨어나고 그동안 수상자리를 비웠으니, 빨리 일을 해야한다고 말을 한다. 이에 주변 측근들은 그가 충격을 받을까봐 가짜 수상으로 살게 한다. 살라자르는 가짜 집무실에서 가짜 신문을 읽고, 가짜 업무를 보며 가짜 수상노릇을 2년간 하다 사망한다. 임종 당시, 독신주의자라 40년간 시중을 들어 온 가정부와 주치의만이 그의 곁을 지킨다.

 

3. 교황 비오 11, 12세의 정교조약의 정체성

 

종신직인 성직자제도, 자유보단 통일을 강조하는 지시와 명령에 입각한 바티칸의 조직이 무솔리니의 파시즘, 히틀러의 나치, 살라자르 수상과 프랑코 총통의 종신직인 독재주의와 구조와 닮았기 때문에 교황 비오 11세와 12세는 정교조약을 자연스럽게 추진하였다. 뿐만 아니라 두 교황은 천주교 재산과 신자의 보호 차원에서 정교조약을 맺었다.

 

두 교황의 정교조약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언한다.

 

1054년의 동서교회의 분열(The Great Schism), 1517년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 1534년 성공회 Anglicanism, Episcopal Church) 등은 교리적인 면보다 주로 그리스도교의 주도권과 유럽국가와의 재산권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속적인 용어로 말하면 정치와 경제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4. 바티칸의 타락의 실상

 

교황 비오 11세와 비오 12세의 정교조약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1) 부정부패부조리의 온상

 

역대 교황 중 598년 만에, 2013년 고령 및 건강상의 이유로 들며 자진 사임하여, 퇴임 후 명예 교황’(emeritus pope)에 추대된 제265대 교황(재위 2005-2013) 베네딕토 16(라틴어 Benedictus PP. XVI; 이탈리아어 Papa Benedetto XVI; 그리스어 Πάπας Βενέδικτος ΙΣΤ; 프랑스어 Pape Benoît XVI; 독어 Papst Benedikt XVI 영어 Pope Benedict XVI, 본명 Joseph Aloisius Ratzinger, 재위 2005-2013, 1927-)의 진정한 사임배경엔 교황청의 뇌물 수수와 비리, 돈세탁 등과 관련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2) 성폭력의 온상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아르헨티나 출신이자 첫 예수회 출신 제266대 교황 프란체스코(라틴어 Franciscus PP.; 이탈리아어 Papa Francesco; 그리스어 Πάπας Φραγκίσκος; 프랑스어 Pape François; 독어 Papst Franziskus; 영어 Pope Francis; 본명은 스페인어로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시보리 Jorge Mario Bergoglio Sívori’, 재위 2013.03-, 1936-: 에스파냐어 Francisco; 프랑스어 François; 독일어 Franz)가 성직자들의 성적타락(특히 소아성애, 아동학대, 동성애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세계시민은 천주교의 존재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되며 천주교의 성당은 텅텅 빌 것이다.

 

5. 나가는 말

 

JTBC 보도 담당 사장 손석희와 경향신문 등울 비롯한 소수 매체는 성삼위 하느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천주교의 죄악엔 관대하는데 반해, 사이비나 이단의 죄를 핑계로 정통 기독교를 더 이상 조롱하지 말기를 충언한다.

 

그 이유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기독교 때문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김일성세습독재수령체제의 김정은의 김씨종교국가로 편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