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조소앙에 대한 재해석

아우구스티누스 2012. 8. 29. 08:19

    우리는 전형적인 독서부재 우뇌형 집단으로 역사나 인물을 오해하거나 오석(誤釋)하는 경향이 많다. 예컨대, 한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하려면 구미선진국에는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식으로 말한다면, 좌파과점에서 , 우파관점에서, 제3자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집필된 책이나 논문 등을 읽고 난 후 그 인물을 비평하여야 하는데, 전혀 책 한권 읽지 않고 귀동냥에 얻은 지식이나 아니면 편향된 책이나 논문 또는 신문사설아나 주간지 또는 월간지만 읽고 나서 그 인물이나 사건을 다 알고 있는 냥 쌩구라까는 학자나 교수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머리 굴려 먹고 사는 지식인 정도 되면 자기 전공서적은 최소한도 만권이상 읽어야 하는데, 만권은커녕 수백 권도 읽지 않는 자들이 수다(數多)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오늘은 조소앙(趙素昻, 1887-1958)에 대해서 살펴보자.

 

 

    한국식의 수구꼴통의 관점에서 보면 조소앙은 빨갱이다. 그는 자진해서 월북한 것이 아니라 6ㆍ25전쟁으로 서울에서 강제납북 되어,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평양시 신미리에 있는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소앙은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최고위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김일성의 요구를 거부하고 납북인사들과 함께 독자적인 ‘중립화통일운동’을 전개하여, 국제간첩으로 몰려 숙청, 투옥되었다. 그는 1958년 9월 10일임종에 즈음하여 “삼균주의 노선의 계승자도 보지 못하고 갈 것 같아 못내 아쉽구나”, “독립과 통일의 제단에 나를 바쳤다고 후세에 전해다오”라고 유언한다.

 

 

    그런데 수구꼴통 반공주의자 노태우정부는 1989년 조소앙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왜 그랬을까?

 

 

    실상 조소앙이 없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없다. 아마 독자들은 깜짝 놀라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도 수없이 말했지만, 중요한 것이라 여기서 재탕하겠다.

 

 

    1950년 6.25전쟁 발발이전엔 구미선진국이나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 1875-1960, 재위기간 1948-1960년) 초대 대통령도 공산주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Harry Shippe Truman(1884-1972 , 재임 기간 1945-53) 정부는 공산주의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공산주의국가인 러시아로부터 독립자금을 지원받았고, 우남은 그런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다.

 

 

    Truman이나 우남은 개인적으로 러시아에게 환멸을 갖고 있다. 우남의 경우 쳥년 시절 러시아가 1년 내내 해면이 동결하지 않는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해 한반도를 침략 약탈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방어한 경험과 후에 1933년 7월 20일 러시아에게 한반도의 독립에 대한 협조를 구하려고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모스크바 역에 도착한 즉시 추방되는 모욕을 당한다.

 

 

    그래서 러시아자체에 대한 우남의 증오는 대단하다. 우남은 Karl Heinrich Marx(1818-1883)공산주의가 아니라 러시아공산주의가 그냥 싫은 것이다. 오늘날도 Marx를 제대로 이해하는 국내학자가 거의 없는 것처럼, 우남도 Marx에 대해서 무지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 우리는 조소앙에 대해 바른 견해를 갖는다. 그러면 그의 업적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첫째, 조소앙은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이 인정하지 않은 임시정부를 1919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국제사회당대회 에 참석하여 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어내, 훗날 대한민국의 기원을 갖게 한다.

 

 

    둘째, 조소앙은 임시의정원을 만들고, 10조 헌장(임시헌장)을 썼으며,‘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창안한다. 이 국호가 임시정부회의에서 신석우와 여운형의 도움으로 통과되고, 후에 우남정부는 ‘대한민국’을 국호로 채택한다. 대한민국은 우남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건국된 것이 아니라 수립된 것이다. 쪽발이의 시다바리인 뉴라이트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하지 않고 일제노예기간을 근대화의 시혜라고 씨부렁거리려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본다.

 

 

    식민지시대 쪽발이는 중국에 대해 자주적인 명칭인 대한이라는 국호를 반일의 상징으로 여겨 중국이 봉한 조선이라는 국호를 선호해, 훗날 자신들의 꼬봉인 한국의 뉴라이트들에게 자신들의 한반도노예시기를 근대화시기라는 빌미를 제공한다. 그런데 북한은 스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며, 조선이 들어있어서 그런지 중국의 시다바리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셋째, 조소앙은 1943년 Cairo Declaration과 1945년 Potsdam Declaration에서 한반도의 일제로부터 독립을 보장 받는 외교성과를 이룩한다.

 

 

    넷째, 보통 유진오(兪鎭午, 1906-1987)가 ‘ 근대 한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1945-48 기간만을 놓고 보면 타당하지만, 상해임시정부시기를 감안하여 본다면 조소앙이 ‘근대 한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려야 한다. 이는 1948년 헌법의 기본 사상이 1941년 조소앙이 기초한 건국강령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소앙의 대표적 사상은 삼균주의(三均主義)다. 삼균이란 균정권, 균이권, 균학권을 말하는데, 곧 균등한 정치, 균등한 경제, 균등한 교육이 국가 발전의 이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균등은 참여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실현되고 있고, 경제균등은 1987년에 제정된 헌법의 경제민주화조항에 들어있어, 현재 대권후보들의 공약으로 나타나고 있고, 교육균등은 공동체의식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조소앙은 빨갱이도 반공주의자도 아니고 민족주의자다. 그래서 우리는 근현대사를 한국식의 좌우파관점에서가 아니라 주체적이며 객관적인 관점에서 재서술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리드해나가는 위대한 통일한반도시대를 열수 있다. 위대한 대한민국과 통일한반도, 홧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오의 복음서 7장 1-5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교훈하신다.


    “1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2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3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하겠느냐? 5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