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동아일보 [허문명의 프리킥] “朴 대통령의 남 탓”(강추!강추!강추!)

아우구스티누스 2016. 8. 19. 10:35

성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7.거만한 자를 꾸짖으면 욕을 먹고, 못된 녀석을 책망하면 해를 입게 마련이다. 8.거만한 자는 책망하지 마라. 오히려 미움을 산다.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하여라. 그는 책망을 고마워한다. 9.지혜로운 사람은 책망을 들을수록 더욱 슬기로워지고, 의로운 사람은 배울수록 학식이 더해지리라.”(공동번역. 잠언 9:7-9)


“1.바른 인생길 알려는 사람은 훈계를 달갑게 받고 미련한 사람은 책망을 싫어한다.”(공동번역. 잠언 12:1)


“15.어리석은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인다.”(공동번역. 잠언 12:5)

 

“12.거만한 사람은 책망받기 싫어하여, 슬기로운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공동번역. 잠언 15: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문화를 펼치는 자들의 통치를 비판하시고 생명의 문화를 담당한 빛의 자녀들이 실행해야 할 정치철학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십자가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밝히신다.

 

“25.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26.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66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28.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하셨다.”(공동번역. 마태복음 20:25-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짓과 생명경시는 사탄의 짓이고 당신은 진리이시고 생명존중과 풍성의 근원이시다고 선언하신다.

 

“44.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공동번역. 요한복음 8:44)

 

“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개역한글. 요한복음 10:10)

 

 허문명 논설위원의 담론은 위의 성서말씀에 대한 자세한 강해설교(?)라 강추!강추!강추!한다.

 

그러면 허논설위원의 언설을 살펴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소위 헬 조선같은 속어가 유행하는 풍조를 비판했다.

 

8·15 경축사에서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것이 참으로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난 스포츠 감독은 선수 탓하고 못난 선생은 학생 탓, 못난 어른은 애들을 탓한다. 자고(自古)로 지혜로운 부모는 자식이 잘못하면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다.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가 말하는 헬 조선류의 대한민국 비하는 나도 마뜩지 않다. 하지만 이런 풍조가 나온 상당한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더 각박해졌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 공부하는 것은 갈수록 심해지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된다. 결혼해도 집 장만은커녕 아이 낳아 기르기도 어렵다. 미래를 생각하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일부 젊은이들의 비하와 냉소가 이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정보화 사회로 세상엔 비밀이 거의 없어졌다. 미디어에는 어른들의 못된 짓과 꼴불견들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 가진 자들의 갑질과 권력 있는 자들의 부정부패, 대통령 측근들의 막말, 패거리 문화에서 성 추문까지,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추악한 모습들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뭘 배울 것인가. 아마 그들도 욕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워 가지 않을까. 그래선 안 된다.

 

어른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을 탓하기에 앞서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대통령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러니 먼저 책임을 통감하고 젊은이들에게 미안해하는 말을 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그 다음에 훈계 대신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의 남 탓은 이번만이 아니다. 정치가 잘못되는 건 야당 탓이고 남북 관계가 안 풀리는 건 북한 탓이며 한일 관계가 경색된 것은 아베 총리 탓, 새누리당 단합이 안 되는 건 비박(비박근혜)들 탓, 온통 남 탓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총선에서 국민들이 호되게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꾸짖고 쓰라린 패배를 안겨주어도 반성과 사과는커녕 이전의 방식대로 마이 웨이를 간다. 민심 앞에 이런 오만이 어디 있나.

 

권위주의형 리더들은 내외부의 적을 설정해놓고 그들 때문에 나라가 엉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고 나선 적과 싸워 이기려면 나를 믿고 따르라 열변을 토한다. 자신은 선()이고 적은 악()이다.

 

남 탓은 권위주의 리더십의 상투적 도구다. 박 대통령 리더십도 이 유형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말엔 감동과 공감이 없다. 메시지들도 모호한 개념으로 가득하다. 미사여구와 모호한 개념만 가득한 이런 정치를 정치학자들은 레토릭(rhetoric)의 정치라고 부른다. 내용이 없는 말뿐인 정치란 뜻이다.

 

레토릭 정치는 당연히 말과 행동이 다르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장관 인사를 회전문 인사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 수석에 장관까지 한 사람을 또 장관을 시키는 것이야말로 회전문 인사의 금메달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례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대통령은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