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똑같이 이웃국가로부터 모진 시련과 약탈의 시기를 겪었지만, 전자는 여전히 자주국방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한반도분단의 영구화를 지향하는 미일에 의존하며 순간순간 버티기 작전의 노예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세계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국제엘리트이스라엘금융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구미선진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주국방을 완전히 갖춘 상태에서, 이스라엘에게 위험이 되는 나라는 모조리 조지며, 노예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나는데 완전히 성공하며, 오히려 독일이 두려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비교는 또한 국가정보기관운영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자가 이승만과 무신정권(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이 대한민국의 지배층과 상류층으로 만들어놓은 악질 친일세력과 일제사생아의 후손들, 일본시다바리들과 미국 스파이들, 뉴라이트 계열, 5.16세력과 그 후손들, 무신정권시절 혜택을 누린 고급공무원들과 그 후손들, 삼성을 비롯한 대재벌,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꼴통의 언론집단, 박통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쩐 챙겨 노후를 편하게 보내기 위해, 올드 보이와 올드 걸로만 구성된 위선적인 애국단체 등의 총집합체인 경상도마피아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후자는 오직 이스라엘국민사랑과 안전 그리고 국토수호를 위해서 존재한다.
남도현 DHT AGENCY 대표의 담론은 대한민국국민사랑과 안전 그리고 국토수호보다는 오직 박정희와 그의 딸 박근혜 댓글 대통령의 청와대입주 고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대한민국 국정원을 비롯한 모든 정보기관의 노예짓거리를 고발하기 때문에 강추!강추!강추!한다.
그러면 그 내용을 일별해보자.
예상하였던 금수조치
6일 전쟁의 쇼크는 실로 대단하였다. 그처럼 무참하게 아랍 제국들이 박살날 줄은 아무도 몰랐고 이스라엘이 갑자기 중동의 맹주로 등장하게 될 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자고로 강대국들은 골목대장의 등장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순식간에 강력해진 이스라엘을 견제할 필요가 생겼다. 더구나 중동 지역은 누구나 탐내는 석유의 보고였다. 비록 오일쇼크 전의 일이었지만 당시에도 석유의 중요성은 컸다.
이스라엘의 선공으로 전쟁이 벌어졌고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강제 점령하자 국제 사회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랍과의 관계를 등한시 할 수 없던 프랑스는 결국 이러한 압력에 굴복하여 1969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조치 이면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대두를 원하지 않던 강대국 주도의 국제역학관계가 크게 작용하였다.
그런데 미라주 전투기에 만족한 이스라엘은 30기의 신형 미라주 5J와 기존에 사용하던 20기의 미라주 III CJ를 개량할 부품을 다쏘에 주문한 후 대금까지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 금수조치내용을 사전에 통보 받은 이스라엘은 즉시, 람(천둥) 계획에 착수하였는데 핵심은 미라주 전투기를 복제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시련이 왔지만 이스라엘은 이처럼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앞의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라주 5의 탄생에 이스라엘의 역할이 크다 보니 최초 도입 계약을 맺었을 때 절충교역 방식으로 일부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일부 생산 설비와 도면은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고성능 전투기를 뚝딱하고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 핵심 장비들이 문제였는데 그중에서도 전투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의 확보가 난제 중의 난제였다.
사실 현재도 전투기에 착용하는 고성능 제트 엔진을 자체 설계하여 제작하는 나라는 불과 4개국에 불과하다. 그 만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인데 워낙 상황이 다급하였던 이스라엘은 자체 개발에 나설 시간이 없다보니 엔진도 복제하기로 결심하였다. 미라주 5에 장착된 엔진은 프랑스 스네크마에서 제작한 Atar 09C3이었는데 마침 이스라엘의 벹쉐메쉬가 일부 부품을 제작하여 공급하던 중이었다.
모사드의 공작으로 이룬 성과
이스라엘은 도면만 확보되면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엔진을 복제할 것이라 판단하였고 유명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도면을 확보하는 작전에 돌입하였다. 당시 동종 엔진은 스네크마 외에도 스위스의 슐처가 면허 생산하고 있었다. 1968년 4월 모사드는 이후 유태인에 호의적이었던 인물로 보도 된 슐처사의 엔지니어인 프라우엔네크를 포섭하여 무려 20만장에 이르는 도면을 빼내는 개가를 올렸다.
2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은 프라우엔네크는 24상자에 담긴 20여 만 장의 도면을 모사드 요원에게 넘겼는데 마지막 4상자를 전달하기 직전에 경찰에게 체포되어 이후 4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렇게 확보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1년도 되지 않아 엔진을 복제하는데 성공한 이스라엘은 프랑스 정부의 금수조치가 내려진 직후인 1969년에 무단 복제한 엔진을 장착한 미라주 5J 카피 전투기를 날리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이스라엘제 카피본 미라주가 바로 네셔다. 양산에 들어간 네셔는 1975년까지 4개 대대 분 총 61기가 생산되었는데,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15기가 교전 중 피격 당하였지만 대신 102기의 적기를 격추시킨 것을 포함하여 1974년까지 모두 115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후 이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아르헨티나 등에 대거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네셔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이스라엘은 무기 개조의 천재들답게 미국의 F-4 팬텀에 쓰인 강력한 J-79 엔진을 네셔에 장착하는 실험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결과 속도와 기동력 그리고 작전반경이 향상된 슈퍼 미라주인 크피르의 제작에 성공하였다. 한마디로 미라주가 이스라엘로 건너와 원판을 능가하는 최강의 미라주로 발전하였던 것이었고 제5차 중동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성능을 만천하에 입증시켰다.
이후 크피르는 25기가 미국 해군에게 훈련용 가상 적기인 어그레서기로 대여되었는데, 미군 당국이 외국에서 100퍼센트 제작하여 직도입된 전투기에게 사상 최초로 F-21 라이온이라는 별도의 단대호와 애칭을 부여하여 사용하였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한마디로 미라주 5를 뛰어넘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첩보전의 신화로 알려진 이스라엘제 전투기의 탄생 비화에는 사실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드러나지 않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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