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조선일보 “스페인 정부, 독재자 프랑코 국립묘역서 퇴출”(필독!필독!필독!)

아우구스티누스 2018. 8. 27. 09:10

사회노동당이 추진하는 것이라 찝찝하지만, 본 글을 필독!필독!필독!하는 두 가지 차원에서다.

 

1. 천주교의 타락의 근본원인에 대한 실례

 

교황 비오11(라틴어 Pius PP. XI; 이탈리아어 Papa Pio XI; 영어 Pious XI, 재위 1922-1939, 1857-1939)의 정교조약(교황청과 국가 간의 조약)1929211일 이탈리아 당시 수상 베니토 무솔리니(이탈리아어 Benito Andrea Amilcare Mussolini, 재위 1922-1943, 1883-1945) 정권과의 사이에 라테라노(라테란)(이탈리아어 Palazzo Laterano; 영어 Lateran Palace)에서 라테라노(라테란)조약(이탈리아어 Patti Lateranensi; 라틴어 Pacta Lateranensia; 영어 The Lateran Treaty)을 체결하며, ‘바티칸시국’(市國; 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ae;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 영어 The Vatican City)을 설립한다.

 

교황은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인정하는 동시에 193363일에는 스페인교회의 박해’(라틴어 Dilectissima Nobis; 영어 On Oppression of the Church of Spain)의 회칙을 통해 1931년 정권을 잡은 에스파냐 공화당 정부(The Republican government)의 무자비한 반가톨릭정책(학교에서 로마 가톨릭 교육금지, 예수회 축출, 스페인 영토의 1/3를 차지한 로마 가톨릭 재산을 국가재산으로 환원 등)을 비난하고, 19367월에 발발한 에스파냐내전에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는 독재자로 자신의 독재권 행사에는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나는 정당을 미워한다, ’우리는 투표 행위 따위의 위선적인 방법이 아닌 총칼과 동지들의 피로써 정권을 쟁취했다.’고 선언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재위 1939-1975 총통, 국가원수, 정부 수반, 내각의 의장, 1892-1975)장군을 지지한다. 스페인 내전(The Battle for Spain, 1936-1939) 후 에스파냐는 팔랑헤당(Phalange)1당 독재에 의한 파시즘국가가 된다.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0),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1903-1950)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 1938), 앙드레 말로(1901-1976), ‘희망’(프랑스어 L'Espoir, 1937; 영역 Man's Hope, 1938),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게르니카’(Guernica, 1937) 등의 작품들이 에스파냐내전의 비극을 전하지만, 이와는 달리 비오 11세는 생명사랑과 평화를 주장 하지 않고 오직 천주교 신앙의 자유와 신자보호와 재산을 위해서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예고편인 에스파냐내전에서 프랑코 총통의 편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2. 194057일 에스파냐내전 때 프랑코 총통을 지원한 동시에 나치를 비밀리 협조하며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로부터 비밀경찰과 관련된 것들을 배우며 비밀경찰을 조직, 운용하고, 식민지정책(브라질, 아프리카의 모잠비크, 앙고라, 카보베르데,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잔지바르, 소말리아,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澳門오문, 동티모르 등)을 이어가며 인권탄압의 철권통치, 독재정치(포르투갈의 두 청년이 자유를 위하여 건배했다는 죄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7년을 보냄)를 휘두르며 평생 단 한 차례도 외유(外遊)하지 않음은 물론 내외기자회견도 거부한 포르투갈의 신으로 군림하면서하나님, 조국, 가족’(포르투갈어 Deus, Pátria e Familia; 영어 God, Fatherland, and Family)을 모토로 삼으면서 아이러니컬하게 3F, Futebol(축구), Fatima(종교), Fado(대중음악)의 활성화라는 우민화 정책으로 정권을 지탱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 재위 1932-1968, 1889-1970)수상과 더불어 프랑코 총통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일한 인물이다.


악질 친일세력들과 후손, 5.16, 1212 사태 등의 주범에 대한 국립묘지안장은 깊이 상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며 다음의 글을 일별해보자.

 

유족이 원하는 곳으로 이장, 우파정당 "옛 상처 헤집어"

 

스페인 집권당인 사회노동당이 40여년 전 사망한 독재자 프랑코사진의 묘역을 이장(移葬)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 24(현지 시각) "프랑코의 묘역을 이장하고 그 자리에 화해를 위한 기념 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고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가 보도했다. 스페인 정부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50떨어진 국립묘지 '전몰자 계곡'에 있는 프랑코의 유해를 파내 유족이 원하는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프랑코의 흔적을 지우고 국립묘지를 보다 중립적인 기념 시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의회 인준 절차가 남아 있지만 우파 정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파가 찬성 입장이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정부안대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군인이었던 프랑코는 1936년 총선에서 스페인에 좌파 정부가 수립된 뒤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테타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랑코 반군이 맞붙은 내전으로 이어졌다. 내전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은 프랑코 반군의 승리로 1939년 끝났다.

 

프랑코는 이후 화해를 강조하며 내전에서 희생된 양측 전사자 33000명의 유해를 '전몰자 계곡'에 묻었다.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총 36년 동안 스페인을 철권통치한 그도 '전몰자 계곡' 특별묘역에 묻혔다. 

사회노동당 소속의 산체스 총리는 지난 6월 정권을 잡은 뒤 '프랑코 지우기'를 주요 국정 과제로 삼고 추진하고 있다. 우파인 국민당은 국무회의의 프랑코 이장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파블로 카사도 국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산체스 총리에게는 국민을 미래로 이끌기보다 과거의 망령을 부활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면서 "정부가 더 나은 현재를 위해 힘을 모으지 않고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내는 데 골몰한다"고 비난했다. 국민당은 정부안이 확정되면 대법원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