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은 ‘뮈텔’이 아니라 ‘리슐리외’의 길을 걸어야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2017. 9. 16. 09:33

프랑스 신부로 제8대 조선교구장을 역임한 뮈텔(Gustave-Charles-Marie Mutel, 1854-1933) 주교는 이미 자생(自生)한 조선천주교신자를 자유와 독립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성삼위 하느님나라 건설을 추구하며 조선독립을 위해 사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 바티칸나라건설을 위해 조선백성을 일제의 노예로 살아가라고 했던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자다.

 

그는 19091026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독립군 조직 대한제국 의군 참모중장 겸 특파 독립대장 안중근(安重根, 1871-1910)15가지 죄목으로 헤이룽장성(흑룡강성 黑龍江省, 黑龙江省) 성도(省都) 하얼빈(합이빈哈爾濱)에서 44세에 초대 총리(1885. 12. 22-1888. 4. 30. 34개월), 51세에 25대 총리(1892. 8. 8-1896. 8. 31. 41개월), 57세에 37대 총리(1898. 1. 12-1898. 6. 30. 6개월), 59세에 410대 총리(1900. 10. 19-1901. 5. 10. 7개월) 등 도합 86개월(2720)을 총리를 지내고, 64세 때인 1905년 초대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 1841-1909)를 저격했는데, 뮈텔은 안중근 대장을 일방적으로 출교하고 그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관계를 전면 부정하였으며, 처형을 앞두고 종부성사를 위해 프랑스인 신부를 보내달라는 안중근 대장과 그 일가족의 요청을 외면하였을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안중근 대장을 찾아가 종부성사를 집행한 프랑스 선교사 니콜라조세프마리 빌렘을 징계하였음은 물론 안중근 대장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단죄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장면(張勉; 세례명요한John’/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은 다마오카 쓰토무玉岡 勉, 1899-1966) 전 총리가 뮈텔의 신앙사상을 잘 대변한다. 장 전 총리는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완전히 쫄아 대한민국과 국민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평소에 쓰고 다니던 안경마저 떨어뜨리고 자신이 머물던 반도호텔에서 황급히 도망쳐 수녀원으로 토낀, 그리스도인의 희생과 헌신을 전혀 보여주지 않은, 비그리스도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이것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한다.

 

그러면 아르망 리슐리외(Armand Jean du Plessis, cardinal et duc de Richelieu, 재상재위 1624-42, 1585-1642) 추기경에 대해 살펴보자.

 

리슐리외는 주교시절 루이 13(Louis XIII, 재위 1610-1643, 1601-1643)의 모후이자 섭정인 마리 드 메디시스(프랑스어 Marie de Médicis; 이탈리아 마리아 데 메디치Maria de' Medici, 1573-1642: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문귀족 집안인 메디치 가문 출신의 프랑스 왕비로, ‘앙리 4; 프랑스어 Henri IV; 영어 Henry IV, 나바라왕 재위 1572-1589, 프랑스왕 재위 1589-1610, 1553-1610’의 부인이자 루이 13세의 모후)의 눈에 들어, 리슐리외는 마리의 측근이 되어 파리의 궁성에 입성한다.

 

마리의 총애에 의해 리슐리외 주교는 에스파냐 왕 펠리페 3(Felipe III, 1578-1621: 스페인의 국왕 겸 포르투갈의 국왕. 포르투갈에서는 Filipe II로 불림)의 장녀(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 1601-1666)왕비의 궁중 고해사제(1615), 루이 13세의 고문관을 거치고(1616), 루이 13세와 마리아 간의 정쟁에 휘말려 잠시 실각해 아비뇽으로 도망가서 그곳에서 최초의 저서 교리문답을 쓴다.

 

루이13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그레고리오) 15(라틴어 Gregorius PP. XV; 이탈리아어 Papa Gregorio XV; 영어 Pope Gregory XV, 재위 1621-1623, 1554-1623)에게 리슐리외를 로마 가톨릭의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도록 요청하여 1622년에 추기경에 서임된다. 2년 후인 1624년 그는 궁정 복귀하여 왕의 수석국무대신(사실상의 재상)으로서 마리와 완전히 거리를 두고 루이 13세의 신용과 신뢰를 얻으며 사망할 때까지 루이13세의 재상을 맡는다.

 

리슐리외의 최고의 업적은 바티칸의 나라가 아닌 루이 13세로 대변되는 프랑스 왕권과 왕국의 영광을 위해 봉사했다는 데 있다. 다음과 실례가 이를 증언한다.

 

리슐리외는 합스부르크왕가(Habsburg Haus)가 독일전역을 장악하여 유럽을 석권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가톨릭 황제와 루터파 제후들 사이에서 독일을 무대로 덴마크와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에스파냐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참여한 30(종교)전쟁 때(T1618-1648: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으로 독일 제후국 내의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는 각각 동등한 지위를 확보) 군대를 파송하여 가톨릭신앙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과 독일 프로테스탄트를 원조하여, 신성로마제국의 주도권을 제어함으로써 프랑스를 유럽의 새로운 패권국가, 유럽의 최대강국으로 만든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1. 리슐리외 추기경은 자신을 추천하며 출세의 기를 열어준 마리가 아니라 국왕 루이 13세에게 충성을 바쳐 절대왕정을 확립한다.

 

문 대통령은 조선시대처럼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는 중국노예와 스파이들 그리고 핵무장을 비롯한 최첨단무기의 자주국방을 증오하는 아주 감상적이고 입으로만 평화 타령하는 매우 싼티 나는 노예형 인간군상들을 버리고 핵무장을 찬성하는 국민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2. 리슐리외 추기경은 자기 조국인 가톨릭국가 프랑스를 유럽의 최강으로 만들기 위해 30년 전쟁 때 프랑스와 경쟁하는 가톨릭국가 에스파냐와 협력한 것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국가들과 협조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골드만 삭스가 예언한 바와 같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리드하는 아름답고 위대한 통일한국을 만들려고 한다면 핵무장과 더불어 최첨단무기의 자주국방시대를 열어야 한다.

 

필자의 조언에 귀담지 않으면 차기 정권은 미일의 노예와 스파이에다 방산비리온상지로 부정부패부조리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전술핵재배치를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고등사기꾼의 안보장사꾼들의 집단인 박근혜우상숭배집단에게 넘어갈 것이고, 문 대통령은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7.거만한 자를 꾸짖으면 욕을 먹고, 못된 녀석을 책망하면 해를 입게 마련이다. 8.거만한 자는 책망하지 마라. 오히려 미움을 산다.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하여라. 그는 책망을 고마워한다. 9.지혜로운 사람은 책망을 들을수록 더욱 슬기로워지고, 의로운 사람은 배울수록 학식이 더해지리라.”(공동번역. 잠언 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