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신학 이야기

프레시안“교회는 왜 도킨스를 증오하는가?”(추천)

아우구스티누스 2016. 3. 21. 16:46

제목이 건방지다. 교회는 도킨스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도킨스에 대해 측은지심(惻隱之心) 혹은 불인지심(不忍之心)을 갖는다.

 

고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시간과 싸워오며 인류로부터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음을 인증된 책을 말한다. 성서도 수많은 석학을 비롯해 온 인류가 읽으면서 생명의 부활이 담긴 책임을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예수님을 신앙의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성서의 말씀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 분에게 기도 올리면서, 응답받는 사람들 가운데는 유명한 과학자를 비롯해 의사들도 있는데,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도킨스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불행한 인간이다. 그에게는 우주만물을 보면서 하느님의 창조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없는 반면에,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bard de Cahardin, 1881-1955)신부는 신앙과 진화론, 성경과 과학서적, 정신과 물질을 융합하는데 일생을 바치며, 마침내 'Omega Point''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한 고생물 지질학자였다.

 

성서는 그리스도인과 자연인을 이렇게 구분한다.

 

“9.그러나 성서에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10.하느님께서는 그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십니다. 11.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마음만이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생각은 하느님의 성령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12.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13.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14.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15.영적인 사람은 무엇이나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판단받지 않습니다.”(공동번역. 고린도전서 2:9-15)


뿐만 아니라 성령 하느님이 거하는 사람만 성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한다.

 

“15.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공동번역. 로마서 8:15)

 

“3.그래서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공동번역. 고린도전서 12:3)

 

이런 사실을 감안하며 성령 하느님이 거하지 않아,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불행한 도킨스의 어리석은 고백을 들어보자.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눈먼 시계공>

 

종종 보는 현상이지만, 어느 분야나 창작자 자신이 꼽는 대표작과 대중이 열광하는 작품이 다르다. 교양 과학 분야의 대스타 반열에 오른 리처드 도킨스도 그렇다. 국내 독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꼽는다. 여러 군데에서 꼭 읽어야만 할 책을 가려 뽑을 때, 그의 책으로 당연히 <이기적 유전자>가 나온다.

 

도킨스를 2009년에 만난 최재천에 따르면, 정작 본인은 <확장된 표현형>을 가장 아낀다고 했단다. 그러니 <크로스로드>가 뽑은 과학 고전에 <눈먼 시계공>(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이 들어간 것은, 통념이나 관성에 대해 도전이라 할 만하다. 대중의 인지도와 달리, 전문가가 보기에 도킨스의 대표작은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 책이라 보았으니 말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한다. 암묵적인 합의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틈으로 한 저자의 더 깊고 넓은 사유를 솟아오르게 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도킨스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책은 장광설인 데다 독단적인 면도 있어서다. 그런데도 그는 개인적 선호를 넘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저자가 되었다. 이럴 때는 도리가 없다. 좀 과장하자면, 이를 악물고 읽어야 한다. 애쓴 만큼, 또 과장하자면 힘들었던 만큼 얻는 것이 많다.

 

, 오해하지는 말기를. 나라는 사람이 요즘 말로 하면 '문송(문과라 죄송)'이라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자주 나와 그러니, 과학에 대한 기본 교양을 충실히 닦았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터. (단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미리 귀띔해 두자면, 이 책의 3장과 8장부터 11장까지는 건너뛰어도 된다.)

 

<눈먼 시계공>은 도킨스 사상의 거대한 저수지 같다. 이 책에는 그가 주장해온 진화론의 큰 물길이 닿아 있다. 먼저, 출세작 <이기적 유전자>와 스스로 꼽은 대표작인 <확장된 표현형>의 고갱이가 기본 저수량을 확보하고 있다. 그 일례는 '6장 생명 탄생의 기적'에 나온다.

 

"DNA 복제자는 자신을 위해 '생존 기계'(자기를 담고 있는 생물의 신체)를 만들었다. 그 장비의 일부로 신체는 컴퓨터, 즉 뇌를 진화시켰다. () 하지만 뇌, , 컴퓨터가 존재하면 이 새로운 복제자들은 뇌에서 뇌로, 뇌에서 책으로, 책에서 뇌로, 뇌에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번식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유전자(gene)와 구별하기 위해 밈(meme)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이 저수지에서 흘러나올 도도한 물길의 새로운 사유는 무엇일까? 나중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들어진 신>이 바로 그것이다. 기실 <눈먼 시계공>이 유명해진 것도 윌리엄 페일리를 비판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펼쳐진 지적 설계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 덕이다. 무슨 내용인고 하니, 이렇다.

 

1802년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자연 신학 또는 자연 현상에서 수립된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증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페일리는 풀밭을 걷다가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고 한다. 그러고는 시계의 톱니바퀴나 용수철의 형태가 보여주는 정밀함을 말하면서 이것들을 조립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짐작해보라 했다. 하필이면 그 풀밭에 왜 시계가 놓여 있었느냐는 설명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했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독설가인 도킨스가 페일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꽤 부드럽다. 아마도 그가 당대 최고 수준의 생물학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나중에 다윈도 예를 들어 설명했던 눈을 근거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 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페일리는 망원경과 눈을 비교했다. 망원경은 인간이 멀리 떨어진 것을 더 잘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눈도 어떤 것을 본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망원경이 인간의 설계를 통해 만들어졌듯이 눈도 반드시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페일리의 주장에 도킨스는 당연히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 한 방 먹인다. 성미 급한 도킨스는 서둘러 결론부터 말한다. "모든 자연현상을 창조한 유일한 '시계공'은 맹목적인 물리학적 힘"이며, "자연 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 '눈먼' 시계공이라고!

 

도킨스가 흥분한 이유는 이미 파악했을 테다. 페일리가 말한 시계공이 결국에는 야훼를 가리키고 있고, 이는 지적 설계론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페일리의 지적은 파괴력이 크다.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기관이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눈처럼 극도의 완벽함과 복합성을 갖춘 기관을 사례로 들었을 적에 대중이 진화론을 불신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시간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눈은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무에서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복잡성과 완벽함을 갖춘 눈으로 진화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수억 년"인 법이란다. 도킨스는 말한다.

 

"복잡한 물건이란 그것이 너무나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물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우연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우연히 생겨날 정도로 충분히 단순한 최초의 물체가 점차, 누적적으로, 단계적으로 더 복잡한 물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확률 이론을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과 무작위성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는 관점을 비판하면서 "모든 부분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고 정리했다. 이 부분도 도킨스는 공을 들여 설명한다.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아래와 같다.

 

"단순하고 덜 발달하였으며 반만 완성된 눈이나 귀, 음향 탐지 체계, 뻐꾸기의 기생 생활 방식 등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눈이 없다면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절반만이라도 있으면 비록 초점이 맞는 정확한 영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천적이 움직이는 대강의 방향이나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른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도킨스는 전형적인 두괄식 형태의 글쓰기를 자랑한다. <눈먼 시계공>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밝혀놓고, 뒤에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사례를 늘어놓는다. 그러니, 도킨스 책을 읽을 적에는 초반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뭇 생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라는 점을 명백하고 인상 깊게 책 앞에 말해두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가 왜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신앙심을 바탕으로 창조설을 입증하기 위해 던지는 조롱 조의 질문이다. 누군가의 믿음을 굳이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도 이성이 눈먼 신앙은 곤란하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그러하듯, 진화에 걸리는 시간은 우리의 경험치를 뛰어 넘는다.

 

그 점만 염두해 두면, 빼기로서 자연 선택과 더하기로서 돌연변이로 이루어지는 진화의 역사를 동의하게 마련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소한 <눈먼 시계공>이라도 읽고 지적 설계인지 진화인지 하는 논쟁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