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이 최악의 장군에 선정된 실상!
미국 보수성향 국제 전문지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TNI·THE NATIONAL INTEREST) 11월호는 ‘혼돈의 지휘관들(Commanders of Chaos)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악의 장군 5명을 선정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1. 미국 독립전쟁 때 활약했던 허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2.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맥클레런(George McClellan)
3.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에게 완패했던 전차부대장 로이드 프레덴덜(Lloyd Fredendall)
4.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이끌었던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
5. 2003년 이라크전을 지휘한 토미 프랭크(Tommy Franks) 전 미 중부사령관
그러면 TNI보도내용을 통해 맥아더 장군이 美 역사상 최악의 장군 5인에 뽑힌 이유에 대해 상고해보자.
1. 결정적인 판단 착오
(1)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한 후 다음 목표로 필리핀을 폭격할 것이라는 것이 거의 예측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태평양 함대를 잃은 미국이 일본 비행장을 공습해 일본군의 공세를 저지할 유일한 전력부대인 필리핀 주둔 공군을 산개시키지 않았고 그 바람에 미국은 공군력을 상실했다.
게다가 당시 맥아더는 일본군이 필리핀 코레히도르섬을 공격하자 호주로 줄행랑쳤다.
(2) 6.26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며 서울수복을 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지만, 중공군의 개입을 고려 해 평양까지만 북진했어야 했는데, 북·중 국경지대까지 진격해, 마오쩌둥으로 하여금 이를 중공침공으로 오판하도록 유도해, 중공군을 참전시켜, 결국 아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음은 물론 한반도는 분단의 비극을 맞이했다.
2. 대통령명령에 대한 항명
6.25전쟁 당시 트루먼 미 대통령은 중국에 핵폭탄을 투여할 경우 러시아참전까지 불러들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며, 핵폭탄투여를 주장하는 맥아더의 의견을 무시하자, 맥아더는 이에 불복종하고, 트루먼은 맥아더의 옷을 벗기고 만다.
그런데 필자는 필리핀에서의 맥아더의 실책을 파헤친 TNI의 보도내용엔 동의하지만, 6.25전쟁에서 맥아더의 전술전략을 비판한 것에 대해선 수긍하지 않는다.
필자가 판단 할 때 맥아더의 중국핵폭탄투여계획이 실시되었다면, 핵폭탄으로 패배한 일본이 군국주의체제에서 미국식의 자본민주주의체제로 전향하듯이, 중국도 러시아의 위성국가인 빨갱이나라에서 미국식의 자본주의민주주의국가로 변모했음은 물론 한반도도 고구마 자르듯이, 두 쪽으로 나누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구소련의 빨갱이 물들이기 작전도 대실패로 끝났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미국엔 6.25전쟁 이전인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우라늄 폭탄인 리틀 보이와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플루토늄 폭탄인 팻 맨의 성공이 있었지만, 구소련은 1949년 8월 29일 최초로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했을 뿐이고,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 성공도 6.25전쟁의 휴전협정(1953년 7월 27일) 이후인 1953년 8월 12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트루먼 미 대통령의 지나친 핵폭탄투여의 두려움 때문에, 맥아더의 결정적인 전술전략이 먹히지 않았고, 전쟁의 먹구름이 가시지 않는 불안한 동북아시아시대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