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철학 이야기

19, 20세기의 제국주의와 21세기의 피로사회의 실상!

아우구스티누스 2014. 11. 18. 12:58

경제에 국한해서 제1, 2차 세계대전을 설명한다면, 당시구미열강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약점을 타파하기 위해서, 타국가를 식민지화하여 원료와 노동력을 싸게 구입하고,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여, 자국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형태의 국가모습을‘제국주의’라고 한다.


독일어엔 이런 유사형의 언어가 있는데, 생존에 필요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팽창은, 건강한 인종의 선천적이며 필수적인 특징이라는 의미를 담은‘생활권’(生活圈, 독어 Lebensraum, 영어 Living Space)이다. 이 단어를 근거하여 독일은 통일을 이룩했음은 물론 다른 유럽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뒤 늦게 식민지확장에 열공한다.


‘생활권’이란 말은 환경결정론(environmental determinism)으로 유명한 독일의 지리학자이면서 민족학자인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 1844-1904)이 1901년에 창안한 개발이론이며,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이 국가팽창에 적용된 논리로서, 라첼의 조교출신으로 독일의 군인·지정학자(地政學者)인 카를 하우스호퍼(Karl Ernst Haushofer, 1869-1946)가 1931년 독일 나치스당 외교고문이 되어 그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치스의 침략정책에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하우스호퍼는 티베트의 주술적인 밀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에게 소개해, 히틀러로 하여금 산스크리트어로 스와스티카(Swastika)라고 하며, ‘행운의’ 또는 ‘상서로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만’(卍: 고대 아리안족의 종교적 상징이었는데, 유럽으로 흘러든 아리안족이 지금의 독일민족이며, 다른 일파는 인도 쪽으로 흘러들어 인도계 아리안족이 되었다고 한다)자를 기울인 '하켄 크로이츠'(Hakenkreuz)를 독일 나치즘의 상징으로 사용하도록 영향을 주는 동시에 세계 정복을 위해서는 "동양으로 영토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동양으로 진출을 위해 동유럽의 폴란드를 공격하도록 유인한다.


하지만 그는 패전직전에 아들 알브레히트(Albrecht)가 반나치 당원으로 활동하며 히틀러암살미수사건으로 체포되어 처형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1946년 3월 전쟁범죄자로 조사 받던 중 아내와 동반 자살한다.


그리고 하우스호퍼는 20세기 초 일본에 머물면서 일제에게도 영향을 주어, 일제는 야마가타가리총리대신의 일본영토의 주권선(主權線)과 주권선의 안전과 긴밀히 관계하는 한반도의 이익선(利益線)을 근거한 국방외교노선과 합치시켜, ‘대동아공영권’으로 미화시키고 아시아에서 구미열강처럼 식민지쟁탈에 앞장선다.


다시 화제를 독일편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하우스호퍼사상은 그의 제자인 루돌프 헤스(Rudolf Hess,1894-1987)에 의해 히틀러에게 소개된다.


헤스는 1921년 나치 당원이 되고, 1923년 뮌헨 폭동에 참가하면서 히틀러와 함께 투옥되었는데, 이때 옥중에서 히틀러의‘나의 투쟁’(Mein Kampf)구술을 필기한다. 1925년 나치스 재건 후 히틀러의 비서가 되며, 1933년 히틀러 정권이 성립하자 총통 대리가 되어 그 해 국무장관으로 입각하고, 1934년 나치스 부당수를 거쳐 1939년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 개전연설에서 정식으로 괴링 다음가는 총통 후계자로 임명된다. 패전 후 뉘른베르크(Nürnberg) 군사 재판에서 종신 금고형(禁錮刑)의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생활권’이데올로기에서, 독일의 국수주의적 작가인 한스 그림(Hans Grimm, 1875-1959)의 ‘영토 없는 민족’(Volk ohne Raum, 1926)이 또한 히틀러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 소설은 나치스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주제는 독일민족의 가난과 사상적 불안은 그리스도교적 사회주의에 의해서만 구제되고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독일이 세계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이유는 ‘생활권’과 아울러 경제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제1차세계대전패전 후 ‘베르사유조약’(Treaty of Versailles, 1919)으로 독일은 해외식민지를 잃고, 알자스 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하였으며, 유럽 영토를 삭감당하였음(면적에 있어서 13%, 인구에 있어서 10%) 물론 전쟁배상금이 부과되었는데, 그 액수가 상상초월이다.


이처럼 ‘베르사유조약’엔 독일국민에게 가혹하며 굴욕적인 패배감을 주는 내용이 일방적으로 담겨있어 미래의 전쟁을 방지하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유발시킨 근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히틀러는 독일인이 연합국에 대해 갖는 강렬한 적개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베르사유조약을 받아들인 바이마르공화국(독어 Die Republik von Weimar, 영어 the Weimar Republic)체제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해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체제를 완전히 바꾸어‘생활권’이데올로기를 결합시켜, 제2차세계대전를 일으킨다.


이와 유사한 영토확장개념이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1845년 뉴욕 시의 한 저널리스트 존 오설리번(John O'Sullivan)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는데, 서부로 계속 팽창해 나아가 북미전역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아메리칸 원주민과 비유럽계 조상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백인 모두의 명백한 사명으로 해석했다.


아메리칸 토착민인 인디언학살과 멕시코와의 전쟁 등을 야기한 서부팽창, 영토팽창의 천명으로 오늘날 미국인들만을 위한 ‘생활공간’인 대국이 건설되었고, 이 사상이 발전되어 세계경찰국가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영토팽창개념에서 제국주의가 나왔다면, 개인팽창인 성과주의에서‘피로사회’(Muedigkeitsgesellschaft)라는 개념이 유래한다.


사실 이 단어는 독일 최고 권위지‘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극찬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저서의 제목이다. 

제국주의가 타국가와 타국민을 착취지배하였다면, 피로사회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착취지배해서 생긴 결과물이다.

둘 다 과정을 무시한 경쟁의 결과인‘성과주의’를 제일로 여긴다.


그런데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결정체인 강대국이나 강한 자가 스스로 탐욕을 버리고 타국이나 타인과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와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살겠다는 결단이 없다면, 이 둘을 치료할 약이 없다. 게다가 경쟁이 없는 사회나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결정체인 제국주의와 피로사회는 개인과 세계국가를 몰락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