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에서 고찰한 대한민국의 정의론의 실상과 허상!(5)
IV. 정의를 실천한 한국인들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헌신의 삶을 살다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생애가 정의의 삶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고 이태석 신부의 희생적인 삶을 그린 작품, ‘울지마 톤즈’를 관람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선교영화에 가깝지만 불교에서 지향하는 이타행(利他行: 타인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풀어주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하화중생(下化衆生: 아래로 중생을 제도한다)을 신부님께서 구현했고, 종무원 몇 명이 개종하더라도 이런 스님과 불자들이 나온다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신앙이란 자신의 믿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고(故)이수현씨는 2001년 1월 26일 일본 유학 중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졌다. 살신성인과 보편적 인간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정의로운 삶이란 자기희생이다.
수현씨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2006년에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은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제작되었다. 2011년 1월 26일 수현씨의 10주기 추모 행사에 간 나오토(菅直人)일본 총리는 기쿠타 마키코(菊田眞紀子) 외무성 정무관이 대신 읽은 추모사에서 “일본 국민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인의 용기있는 행동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류가 일본에서 이렇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씨의 행동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미치코(美智子)일본 왕비가 2011년 1월 26일한국판 폴 포츠’로 불리는 팝페라 가수 휘진(본명 권휘진)의 공연에 참석하여 “한일 간에 예술가의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음악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정의’(justice),‘공정’(fairness), '평등'(equality)‘공익’(common good), ‘공정 사회’(fair society)를 이룩하려면 개인의 헌신과 희생이 따른다.
V. 나가는 말
미국의 가정교육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일본의 가정교육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살라'이다. 그런데 이것은 국내용이지, 국제용은 다르다.
두 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나라를 지배하라고 한다.
한국은 그 반대다. 국내에선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피터지게 싸우라‘고 하고, 국제관계에서는 ‘남에게 많이 양보’하며 지배받으라고 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어리석은 정의관은 두 가지 실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번‘폭설 때는 피자주문 자제’ 읍소하는 알바생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지배층에 대한 배려는 있을지언정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수직문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국익을 저버리고 미국의 이익을 위한 굴욕적인 한미FTA재협상 때문에 유럽에서도 “FTA, 미국수준 자동차 재협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구미선진국과는 반대로 가정과 신앙공동체에서 통용되는 절대윤리인 정의를 국제질서에 적용하여 국익을 해치고, 국내는 상대적인 정의를 실시하여 자신들의 불법은 관례로 합법화하고 힘없는 자들을 착취한다.
국제관계에서의 정의는 국익의 기초위에서 이루어진다. 외교현장에는 천사 같은 미소가 넘친다. 미소 뒤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전 중국 총리 겸 외교부장의 외교의 정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외교는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전쟁의 연속이다.”
그리스도교 구약성서 시편 85편 10-13절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10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11땅에서는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라. 12야훼께서 복을 내리시리니 우리 땅이 열매를 맺어주리라. 13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 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