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의 나라/철학 이야기

조선일보 “改憲의 추억, 개헌의 熱望”(강추!강추!강추!)

아우구스티누스 2014. 11. 10. 16:34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개헌론은 필자의 개헌론과 맥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한국 헌정사는 '변태성욕자에게 아홉 차례나 능욕당한 여인'의 일생”이라는 비유의 함축적인 표현 때문에 강추!강추!강추!한다.



필자가 지난 10월 28일 뉴미디어상에 올린 글 “개헌불가와 직접민주주의시대개막!”을 곁들여 읽으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관심있는 독자는 필자의 블로그, derbrief@naver.com을 방문해 참조하면 된다. |

그러면 아주 통쾌한 안교수의 개헌담론을 일별해보자.



4·19, 6·10처럼 國民 주도하는 대변혁 없이 개헌은 쉽지 않아국회의원 지위 강화가 아니라 地方권한 강화가 分權의 핵심개헌보다 국민 참정권 내실화할 選擧제도 개혁이 핵심 과제다



한때 많은 청년의 의분을 자산으로 시절을 호령한 '오월의 시인' 황지우는 대한민국 헌법을 일러 '가련한 운명의 여인'이라고 불렀다. 한국 헌정사를 '변태성욕자에게 아홉 차례나 능욕당한 여인'의 일생에 비유한 것이다. 시인의 비장한 수사가 단순한 허사로만 비치지 않았다. 1948년 제정된 이래 불과 40년도 못 되어 아홉 차례나 개정된 격동의 정치사였으니 말이다. 시종일관 헌법의 골간(骨幹)인 '민주공화국'의 외형은 유지했지만, 내실과 운영에는 반민주 요소가 가득했다.



전형적인 민주 헌법은 '기본권'과 '권력 구조', 양대 요소로 구성된다. 양자는 격이 다르다. 국민주권 국가에서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본권이 주(主)고 권력 구조가 종(從)이다. 전자가 목적이라면 후자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번 개헌에서 전자는 뒷전이었고 오로지 권력 구조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주권자인 국민의 열망이 아니라 정치가의 이해와 책략이 크게 작동했다.



1987년 시민항쟁의 성과인 현행 헌법은 '1987년 체제'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체제가 27년 동안 작은 성형수술 한 번 없이도 견디어 온 것은 일견 나라 정치가 안정된 증거다. 그런데 또다시 개헌 논의가 번성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 귀에 익은 타령이다. 국회의원 93%와 적어도 60% 국민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바꿀 헌법의 구체적 내용에는 합의가 없다. 얼마 전 여당 대표의 입에서 느닷없이 '오스트리아 식' 이원집정제가 거론되다 청와대의 일침에 즉시 사죄, 침묵으로 종결되었다. 대중의 주목이 애타는 한 최고위원도 개헌을 들먹이며 사퇴와 번의의 해프닝을 벌였다. 야당도 진중하지 못한 개헌 가락에 맞춤을 춘다. 제대로 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그러나 목전의 이익에 거창한 명분을 동원하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한다.



개헌 논의의 시발점은 현재 헌법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는 국민적 인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3차 개헌을 강제한 1960년 4·19 의거나 9차 개헌을 통해 현행 헌법을 탄생시킨 1987년 6·10 항쟁과 같은 국민이 주도한 대변혁이 없이는 개헌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절실하게 바라지 않는 개헌은 그야말로 권력 노름에 불과하다. 물론 대통령도 국회도 개헌안 발의권이 있다. 그러나 절대다수 국민의 동조가 따라야만 한다.



현재 여의도에서 일고 있는 분권형 개헌은 국회의원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초점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절실하게 필요한 분권은 지방 권한을 강화하는 일이다.



개헌론자들은 우리 헌법의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한다. 설득력이 없다. 미국을 비롯한 대통령제를 채택한 외국의 예를 보아도 그렇다. 대통령을 제왕으로 대접한 '유신헌법'은 죽은 지 오래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을 '유신여왕'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주인의식이 취약한 국민이다. 불과 십년 전 일을 되돌아보라. 실로 하찮은 사유로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가 아니었던가? 같은 헌법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행정 수반의 고유 권한이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견제할 여지도 있다. 만약 대통령의 인사권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으면 하위 법률로 제한하면 족하다.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선거법의 일부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가 2배를 초과하면 '1인 1표' 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헌법상 평등권 조항의 세부적 의미를 정립한 것이다. 내년 말까지 최소한 60개 지역구에 재조정이 따를 것 같다. 이 판결로 대도시의 비중이 늘어나고 지방 소외가 가속될 것이다. 문득 '산도, 나무도, 물고기도 투표권이 있다'던 한 외국 판사의 목가적 수사가 떠오른다.



어쨌든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유권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이다. 헌법 문언을 바꾸지 않아도 해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다. 현시점에서는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핵심 과제다. 중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제, 정당투표제 도입 등 국민 참정권의 내실화를 위해 개혁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66년 헌정사를 되돌아본 개헌의 추억, 결코 유쾌하지 않다. 정치권에서 일다가 사그라지기를 거듭해온 개헌의 열망, 결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이 진정 국민을 위한 개헌을 열망한다면 먼저 국민을 상대로 성의 있는 설득에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