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국방외교정책의 실상과 교훈!
제1, 2차세계대전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제1차세계대전(1914-18)은 대화를 통한 외교적인 해결보다는 군사력호소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제2차세계대전(1939-1945)은 아돌프 히틀러의 탐욕을 읽지 못한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와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의 유화정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제1차세계대전의 사라예보의 교훈과 제2차세계대전의 뮌헨의 교훈은 매파의 강경책이나 비둘기파의 유화책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없다.
그러면 두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열강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문제는 제쳐놓고, 경제적 관점에서 국한하여 본다면 자국내의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을 해외식민지화정책에서 해결하려고 했고, 두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모두 선진국이 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압승, 8년만의 여소야대로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도력 약화와 레임덕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실패는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외교정책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매와 비둘기의 두 속성을 적절히 배합하면서 국제정세를 이끌어갔어야 했는데, 매의 속성은 무시한 채 비둘기의 속성만 보여주어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국가노릇을 할 수 없음을 전세계,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게 선언함으로써, 큰 타격을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지도자가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려면 세종대왕의 국방외교정책노선을 추종해야 한다.
그러면 세종대왕의 매와 비둘기의 균형있는 군사외교정책을 살펴보자.
세종은 당시 세계 최강 과학르네상스시대를 열었음은 물론 훈민정음창제를 비롯해 국정전반에 관한 모든 것을 중국명나라와는 달리 독창적으로 제작해 시스템화한 위대한 계몽군주로 평가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왕권과 신권을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며 운영해 조선백성을 사랑한 당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형 정치가였다.
그는 문치(文治)만을 힘쓰지 않고 군사훈련, 화약과 화기의 제조개발, 성진(城鎭)의 수축, 봉수대(烽燧臺, 봉화대)완비, 병선의 개량, 병서의 간행 등 국방정책에도 힘을 기울여 국토의 개척과 확장을 추진하는데, 전술전략은 강경책과 회유책이다.
여진(女眞)과의 관계는 무력으로 강경책을 쓰거나 회유하는 화전(和戰) 양면책을 썼는데, 최윤덕과 김종서로 하여금 여진족을 물리쳐 4군 6진을 설치하도록 하여, 압록강에서 두만강 유역까지 국경선을 확립하고, 이곳에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실시하여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였다.
일본에 대하여도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썼다. 1419년(세종 1)에는 이종무(李從茂) 등에게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대마도)를 정벌하게 하는 강경책을 써서 쓰시마 도주(島主) 소 사다모리[宗貞盛]로부터 사죄 받고, 1426년 (세종 8)에 삼포(三浦)를 개항하며, 1443년(세종 25)에는 계해조약(癸亥條約)를 맺어 이들을 회유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세종의 지혜와 배짱의 국방외교정책으로 갖춘 지도모양을, 분단현실이지만, 21세기에도 고스란히 갖고 있다.
대한민국식의 한반도통일을 위한 북한다루기, 미래 중러일과의 영토전쟁에 대비한 자주국방 등을 생각하면, 세종대왕의 국방외교정책이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