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왕제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지도자들에 의해 계획된 제도다. 당시 일제의 수준이 도시형이라면, 조선과 중국의 청나라는 시골스러웠다. 일제는 메이지 유신 이전 한반도로부터 문화와 문명을 전수받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일제는 한반도의 기원설을 부정하기 위해, 곧 조선인보다 위대한 민족임을 서구열강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중국의 천황제도를 본받아 급조하여 정치제도를 만들어 내놓았는데, 그것이 일왕제고 히트상품이 된다. 사실 일본인들은 명령과 복종에 잘 훈련된 민족일 뿐만 아니라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에 잘 순응하기 때문에 일왕제는 일본인의 기질에 잘 맞는 제도다. 그래서 일본은 민주주의국가라기보다는 중세 봉건시대유형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일본 아키히토(明仁, 1933-, 재위기간 1989-) 제125대 왕의 부친인 쇼와일왕(昭和 日王, 1901-1989, 재위기간 1926-1989)은 제124대 왕으로, 이름은 미치노미야 히로히토(迪宮裕仁)다. 그는 한반도와는 악연을 갖고 있다. 그는 1932년 1월 8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부장 김구(金九, 1876-1949)가 이봉창(李奉昌, 1900-1932)을 도쿄에 파견하여, 히로히토 일왕을 죽이려고 폭탄을 던졌으나 성공하지 못했을 만큼 한반도에 악랄하며 파렴치한 식민정책을 펼친 군국주의 최고책임자다. 국제폭력배인 낭인(浪人)들을 조선왕궁에 난입시켜 조선의 황후를 시해하고 난후 욕보이며 시신을 토막 내 불태우게 하거나 태평양전쟁 당시엔 조선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전선에 내몰고, 꽃다운 조선처녀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끌고 가게 했던 '특A급 전범(戰犯)'이다. 참회없이 죽었기 때문에 지금 매국노 이완용과 같이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Douglas MacArthur(1880-1964)는 일왕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전범인 히로히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점령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1945년 8월 15일 라디오 담화를 통해 항복과 동시에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서의 신격(神格)을 부정하고 인간선언을 발표하게 하여, 미일안보조약체제 하에서 미국정부에 종속된 일본 정부의 상징이 되게 하는 동시에, 미군에 일방적인 특혜를 제공하는 불평등 조약인 미-일안보조약을 체결케 하여, 오키나와(沖繩)에 미군을 주둔시켜 일본을 미국의 시다바리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MacArthur의 정치공작으로 일본은 영원히 친미 반공의 보루로서 미국의 꼬봉국가가 된다.
그 대신 히로히토는 Adolf Hitler(1889-1945), Benito Amilcare Andrea Mussolini(1883-1945)와 더불어 세계 2차 대전을 야기한 전범 가운데 한 명으로 군통수권을 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음은 물론 전쟁책임을 지지 않고, 당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 1948) 총리를 비롯한 ‘A급 전범’들에게 전가한다.
그래서 그는 전후 44년 간 일제의 팽창주의와 과격하며 몰지각한 군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놀아난 힘없는 꼭두각시 군주로 각색된 채, 전쟁과는 무관한 생물학자 및 평화와 민주주의 지도자로 추앙받으며 88세까지 장수하다 1989년 사망한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의 각본대로 일왕제 민주주의나라가 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Herbert P. Bix, Binghamton University의 석좌교수는 2001년에 the Pulitzer Prize를 받은 자신의 저서 ‘히로히토 평전’(Hirohito and The Making of Modern Japan, 2000/일본번역 쇼와덴노昭和天皇, 講談社 펴냄, 2002)에서 MacArthur와 Hirohito에 의해 소설화된, 곧 입헌군주제 설에 입각한 온화하고 평화적이며 비정치적인 히로히토의 허구성을 밝히며, 그는 호전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능동적 정치적 주체로서의 군주, 곧 헌법의 제약을 받는 입헌군주라기 보다는, 항상 자신을 헌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군주라고 고발한다. '평화주의자=히로히토'라는 항간의 이미지가 붕괴된다. 그래서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 정치 경제 문화 주간지 The Economist는 이 책을 가리켜 ‘역사의 폭탄’이라고 평가한다.
일본 외교사 전문가인 도요시타 나라히코(豊下楢彦, 1945-) 간사이가쿠인대학 법학부교수는 자신의 저서 ‘맥아더와 히로히토’일본의‘전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서 이렇게 밝힌다.
제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히로히토는 점령군 최고사령관 MacArthur와 1945년 9월 27일 첫 번째 회담을 시작으로, 1951년 4월 MacArthur가 해임될 때까지 총 열한 차례 회담을 가졌고, 맥아더의 뒤를 이어 부임한 Matthew Bunker Ridgway(1895-1993)와도 1951년 5월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지면서, 일본에 미군기지를 허락하며, 일본을 반공기지로 만들어 냉전 후 일왕제 타도를 방어하며, 자신도 패전 이전의 전범의 딱지를 떼어버리고, 패전 후엔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곧 히로히토는 MacArthur와의 초헌법적 외교, 곧 능동적인 전략적 거래로 전쟁책임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이와 같이 미국의 정치적 공작 때문에 일왕은 한반도에게 참회를 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The Katsura-Taft Agreement의 책임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아키히토(明仁, 1933-, 재위기간 1989-) 일왕은 헤이세이(平成)를 연호(年號)로 사용하고 있다. 사기의 '내평외성‘(內平外成)과 서경의 '지평천성’(地平天成)에서 인용한 헤이세이는 '온 세상과 일본 안팎의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키히토는 자신의 뿌리가 한반도임을 분명히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크리스천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자신의 모국인 한반도에게 진심으로 참회함으로써, 한일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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