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의 대한민국국민들은 현기증이 날만큼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시절엔 농경사회를, 중고등학교, 대학교, 청년시절엔 산업화사회를, 중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보화사회를 체험하며 존재하고 있다.
농경사회의 대가족제도, 산업사회의 소가족제도, 정보화시대의 개인주의는 각각 공존공생의 이타주의적인 공동체의 삶, 가족주의, 자유와 독립의 개체주의를 띠고 있다.
자유와 독립의 개체주의 삶은 공동체와 가족주의 삶에 편안한(익숙한) 올드 보이와 걸에는 매우 낯설고, 게다가 빈곤까지 덮치면 탈구가 없는 절망 속에 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대한민국의 올드보이와 걸의 자살률과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이 둘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어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올드 걸 댓글 대통령과 정부는 무대책은 물론 전혀 관심조차 없다.
필자가 수없이 뉴미디어상에 글을 올린 바와 같이, 올드 걸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자신의 댓글 대통령직유지와 부친의 명예회복으로만 가득 차있고, 다른 것은 거의 다 번뇌에 속할 뿐이다. 그런 사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예화가 잘 보여준다.
주인인 국민이 종에 불과한 자신을 씹으면 주객이 전도되어 뉴미디어감시의 신유신시대를 열겠다고 호들갑떨어, 주인을 매우 당황케 하여, 사이버망명을 불러일으켜 뉴미디어사업을 완전히 망쳐놓는 동시에 국격을 떨어지게 하는가 하면, 지난 26일 이휘호여사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5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추모화환을 보내자, 곧 바로 10월 28일 답례차원에서 이여사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그러면 화제를 본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65살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 당 81.9명꼴인데, 미국이나 일본의 4-5배이고, 다른 연령대에 견줘도 서너 배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빈곤 때문에 막다른 선택을 하는데, 자신들은 비극적인 생을 마쳐도 정부나 국민들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격조 높은 마음씨의 소유자라고 하는데서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실례는 불행한 개인의 운명을 맞이하면서도 정부와 국민을 배려했다는 사실에 고맙기보다는 매우 서럽다.
그러면 그 실례를 들어보자.
1. 지난 2월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 방에서 함께 마지막 길을 떠난 세 모녀는 60대 어머니가 팔을 다치면서 생계가 불가능해지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기며, 다음과 유서로 불행한 개인의 종말을 맞이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한 마디는 온몸을 전율케 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상념에 젖게 한다.
2. 지난 10월 29일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한 최모씨는 장례비 100여만 원과 전기·수도요금도 따로 남기며, 서울 장안동의 한 다가구주택 1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주검을 수습할 이들에게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는 쪽지에 억장이 무너진다.
희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아, 불행한 개인의 종말을 선택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존재와 이웃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올드 걸 댓글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모두는 소외된 자들의 아픔엔 전혀 둔감한, 탐욕에 연단된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라 희망과 번영을 약속하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기가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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